(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도갑사의 제1경, 시간이 지나서 진가를 알게 된 곳steemCreated with Sketch.

in #oldstone6 years ago (edited)

여행을 다니다 보면 여행지마다 다 느낌이 다릅니다. 그 느낌도 때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경우에는 가기도 전에 미리 어떤 느낌이 올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도착하자 마자 뭔지 모를 분위기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한참 있다가 돌아올때 쯤 되어서야 어떤 느낌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여행에서 돌아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 느낌이 점점 더 분명해지기도 합니다.

저에게 있어 월출산 도갑사는 여행을 마치고 한참은 지난다음에야 무엇인가 그 느낌이 천천히 다가오는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가서는 어디가 볼만했는지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도갑사에 있을때 제일 좋았던 기억은 저녁 종소리였습니다. 주로 주중에 여행을 다니는 바라 제가 도갑사에 갔을 때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해가 천천히 기울어가고 저녁종을 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범종각 앞에 아무렇게나 놓인 돌위에 앉아서 종소리를 기다렸습니다. 스님이 아니라 절에서 일하는 아저씨 한분이 나와서 종을 치러 나오셨습니다. 아저씨 뒤로 깜장 강아지 한마리가 졸래졸래 따라옵니다. 아저씨는 저를 보고 반색을 하십니다. 그래도 누군가 보고 있는 것이 좋으셨겠지요. 종을 칩니다. 천천히 하나 둘... 땡 땡 소리가 납니다. 저는 그 순간 온갖 상념을 잊어 버리고 그 단순한 종소리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종소리를 듣고 있다 보니 벌써 타종이 끝났습니다. 아저씨가 저녁이 되면 절에 개를 풀어 놓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려갈거면 빨리 가라고 그러면 개를 풀어 놓겠다고 말이지요. 그말을 듣고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머리 속에는 그 깡마른 아저씨가 범종을 치는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도갑사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그때의 범종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사리탑전 옆에 있던 여래좌상이 더 생각이 났습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여래좌상을 그냥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입구가 감추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두운 그늘에 숨어 있는 계단위에 대문이 서 있습니다. 그 대문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그 대문을 지나서 들어가보면 돌에 새겨진 부처님상이 건물안에 모셔져 있습니다. 대문과 불전은 아주 가까운 거리입니다. 너무 가까워서 카메라에 불전의 모습을 제대로 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불전에서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맞은 편에 월출산 자락이 보입니다. 그리고 햇볕이 내리고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스님의 거처가 있었습니다. 불전앞에서 제가 들어왔던 대문을 보았습니다.

대웅전에서 느꼈던 뭔지 모를 불안정했던 모습은 여기에서 모두 잊어 버린듯 합니다. 조그만 공간이지만 꽉 짜인듯한 느낌입니다. 주변에 둘러쌓인 담은 세상의 모든 번잡함을 완벽하게 차단해 버리는 듯 합니다. 도갑사에서 가장 완전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잠시 불전에 들어가서 앉았습니다. 비로소 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대웅전에서 느꼈던 뭔지 모를 들뜬 것 같은 기분은 완전하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아주 오랫동안 앉아 있고 싶었습니다.

_6140332.JPG

그리고 내려오다가 타종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타종소리와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웅전 뒷 계곡길의 사리탑전 옆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곳, 고려시대 만들어졌다는 마애불이 모셔진 불전이 더 생각이 났습니다. 마애불보다 그 불전이 더 생각이 났습니다. 아무도 없는 나만의 완벽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시다면 이곳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다녀 오시고 나서 한번 생각해보시지요. 정말 이 조그만 공간이 도갑사 제1의 자리인지를. 그러길래 스님 거처를 그 옆에 지었겠지요.

Sort:  

학창시절을 목포에서 보내서 도갑사는 몇번 다녀왔는데 오랜만에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편안한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스님이 치는게 아니군요 ㅎㅎㅎㅎ

때에 따라서는 ...

다른건 몰라도...
타종소리는 마음을 편하게 하는 묘한 구석이 있는거같아요:]

그렇지요

궁금해서 도갑사에 대해서 찾아봤는데,

도갑사는 신라의 4대 고승 가운데 한 분인 도선국사가 신라 헌강왕 6년에 창건했다.

엄청 오래된 절 이네요.. 와!

여행 한참 지난 다음에 오는 느낌은
지금 삶의 근본과 만나는 거겠지요?

그렇지요

스님의 거처가 그 곳에 있었다는 말씀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걸요.ㅋ

도갑사 다녀오섰군요. 이번 여름에 갔었습니다. 유난히 무더운 여름임에도 월출산은 시원해서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름자체도 특이해서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셨군요

Coin Marketplace

STEEM 0.30
TRX 0.12
JST 0.034
BTC 64038.60
ETH 3148.89
USDT 1.00
SBD 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