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사이공 억류기) 15 하이탑 장군의 전향

9월 13일 아침 8시경 경비원 한명이 감방 쪽문을 열고 방안을 잠깐 열고 보더니, 계란 크기만하게 신문으로 싼 것을 던졌다. 거무틱틱하고 굵은 소금이 들어있었다. 제대로 먹지못해 휘청거리는 이대용과 하이탑 장군 보기가 딱해서 반찬으로 먹으라고 가져다 준 것이었다. 이대용과 하이탑 장군은 고맙다고 했다. 경비원은 동정의 눈길로 두사람을 보더니 저쪽으로 가버렸다. 소금이 그렇게 귀한 것인지는 몰랐었다. 이틀마다 소금 다섯 알씩을 나누어 먹었다.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9월 14일 하이탑 장군이 불려나갔다가 2시간 정도 있다가 돌아왔다. 안닝노이찡의 경찰 대좌를 만났는데 그로부터 전향권로를 받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하이탑 장군이외에도 아화우교 제일의 실력자인 70세가 넘은 교주와 와하우교 간부급 수감자 몇명이 같이 나와 있었다. 15개월의 옥고로인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의 폐인으로 변해 있었다.

50세 가량의 안닝노이찡 경찰대좌는 그들에게 인민편에 서서 아직까지 정글속에 남아서 반정부활동을 하고 있는 와하우교 무장 반공게릴라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지 않으면 인간개조가 될때가지 감옥에 붙들어 놓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9월 16일에 다시 올테니 그때까지 인민의 편에 설 것을 결심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이탑 장군은 고민하고 있었다. 이대용이 보기에 길은 분명했으나 하이탑 장군은 망설이고 있었다. 하이탑 장군은 그대로 있으면 자신은 옥사할 것이라고 했다. 이대용은 그렇게 되더라도 하이탑 장군이나 와하우교 교주는 순교자가 되어 와하우교 역사의 한페이지를 기록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하이탑 장군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여우바이사우로 점을 쳤다. 시간이 갈수록 하이탑 장군의 마음은 자꾸 어지러워졌다. 이대용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이탑 장군은 전향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자신의 딸이 불란서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데 가족을 이끌고 그곳으로 가서 자유롭게 생활하고 싶다는 것이다.
지금 만 한살이 조금 넘는 아들도 보고싶다고 했다.

9월 16일 하이탑 장군은 경찰대좌의 소환을 받아 나가더니 편지봉투, 백지 5매, 볼펜 1개를 얻어 왔다. 가족에게 먼저 안부편지를 쓰라고 준 것이라고 했다. 하이탑 장군은 투옥되어 있는 15개월 동안 한번도 차입을 받아 본 적이 없고 가족과 면회를 한적도 없었다. 타의로 전향한 것에 대해 괴로워했으나 가족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9월 24일 오전 8시 30분경, 하이탑 장군이 다시 불려갔다. 2시간 쯤 후에 돌아왔다. 그의 오른 손에는 풀잎으로 엮은 망태, 왼손에는 플라스틱 물통이 매달려 있었다. 차입을 받았다는 것이다.

닭세마리를 토막내에 양념에 조린 것, 덩어리설탕 약 2kg, 세탁비누 한개, 치약한개, 치솔한개, 수건한장, 플라스틱 통에 들은 간장 약 3리터, 찹쌀밥 2kg 정도, 각종 용도로 사용하는 물약 한병, 각종 과일 4kg 정도였다. 하이탑 장군과 스푼으로 닭고기 조린 것 한토막을 입에 넣고 씹었다.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천상의 진미였다.

하이탑 장군은 감방밖으로 나가서 부인과 장인 그리고 어린 아들을 만났다고 한다. 부인은 남편이 폐인이나 다름없이 된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고, 70이 넘은 장인은 울지말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하이탑 장군은 이대용에게 아하우교 교주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전향을 했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 4개월 후에 이대용은 와하우교 군총사령관인 하이탑 장군과 아하우교 교주만 전향을 하고 와하우교 부교주와 부사령관은 완강하게 거부하고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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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가족 앞에서 하이탑 장군도 결국 전향을 하게 되었군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마음이 약해지는게 사람인데,
이대용장군님은 끝까지 형무소에서 버티신게 정말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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