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여행]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왕따가 되었다

in #kr-travel8 years ago (edited)





IMG_50771 복사.jpg




피렌체에서의 열흘










평소 감정 기복이 없는 편인데, 피렌체에서는 아침에 일어나면 설렌다.









오늘 역시 인류의 위대한 미술품, 한 시대가 이룩한 훌륭한 기념비들, 감탄스러운 역사의 건축물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정말 신나고 신난다.






IMG_4918 복사.jpg


내가 감동할 모든 예술품들이 몇백 년 전에 이미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태어나서 피렌체 땅을 처음 밟아본 나를 기준으로 세상을 보자면,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전례없던 새로운 사건이며 이것이 바로 내겐 컨템포러리 아트다.






IMG_4919 복사.jpg



어느 성당에 들어갔다가 미술사 책에서만 보던 작품을 발견했다. 1427년에 완성된 마사초의 '성삼위일체' 벽화 그림. 브루넬레스키가 고안해냈던 원근법을 그림에 최초로 적용한 사례로 유명한 그림이다.

원근법이 없었다면 지금 디지털 3D로 표현해내는 그 모든 공간감을 구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컨대 이 그림이 없었다면 지금의 어벤져스 인피니티워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VR 기기에서의 현실감도 체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원근법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mug_obj_13946811868832206.jpg



우피치 미술관에서 가장 감명깊었던 것은 미켈란젤로,다빈치,보티첼로의 그림이 아니었다. 카라바조의 Bacchus였다. 포도송이와 가지를 머리에 얹히고 왼손으로 잔을 들고 있는 미소년이 묘사된 그림인데 정녕 감히 누가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함과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다. 이토록 매혹적이고 우아한 그림은 그 이전에 본 적이 없다.






mug_obj_139468118719418049.jpg



미술관을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과도기, 14~15세기의 그림들이 참 예쁘고 좋다.

금박으로 화려하게 조각된 장식의 액자, 성인의 머리에 씌워진 금색 광배, 중세의 평면적 구성과 장식, 그리고 르네상스의 사실주의가 조금씩 결합되고 있는 장면들은 항상 내 눈을 즐겁게 한다.






IMG_4954 복사.jpg


미술관이 미술품들의 거대한 묘지라면 미술관 밖 거리에는 지금 탄생하고 있는 미술도 있다. 그림을 대하는 저 표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으리라.






IMG_5047 복사.jpg


두오모 박물관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았다. 어찌나 구성이 완벽하던지 보면 볼수록 조형적 쾌감이 느껴졌다. 참고로 '피에타'란 십자가에서 내려온 죽은 예수의 시체를 받아들고 슬퍼하는 마리아의 장면을 일컫는 용어다. 역사적으로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재구성되고 창작되었다.






IMG_5042 복사.jpg


미완성인 이 피에타를 두고 그 이유에 대해 많은 미술사학자들의 견해가 있지만 내가 믿고 싶은대로 보고 싶은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예수와 마리아가 맞닿아 있는 얼굴부분을 보면 미완성이 아니라 슬픔의 조각적 표현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또 한번 들었다.

그러고보면 전 생에에 4번이나 걸쳐 제작했을 정도로 미켈란젤로에게 피에타는 세잔의 생빅투아르 산처럼 조각가로서 그에게 주어진, 일생에 걸쳐 수완해야 할 예술적 과제였나 보다.






IMG_5147 복사.jpg


피렌체에 열흘 정도 머물렀기 때문에, 하루는 피렌체 근교에 있는 산 지미냐뇨와 시에나를 다녀오기도 했다.






IMG_5144 복사.jpg


산 지미냐뇨는 중세의 도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마치 타입캡슐을 타고 과거로 일순간 돌아간 느낌이었는데, 중세의 맨하탄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길가에 불쑥불쑥 높게 오른 고층빌딩의 존재들은 정말 흥미로웠다.






IMG_5160 복사.jpg


그리고 시에나에서 마주한 두오모 성당.
외관은 그렇게 특별한 점을 못느꼈는데 들어가보니......






IMG_5166 복사.jpg


IMG_5185 복사.jpg


너무 멋지다 엄청나다 정말. 고대에는 다 외계인들만 살았던 것일까 어떻게 이런 것을 만들었을까? 여기 이 공간에 앉아있자니 이렇게 아름답고 천상의 세계를 선사해주는 건축을 만든 집단의 개념들, 천국이고 지옥이고 창조론이고 예수 하나님 신 모두 다 의심없이 믿어버리고 싶다.






IMG_5167 복사.jpg


IMG_5196 복사.jpg



천장에는 별이 가득하다. 이 건축은 너무 완벽하게 아름답고 굉장해서 이 이후의 어떤 것도 이것을 능가할 수 없다는 예술의 종말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영화데서나 나올 법한, 하나의 문을 지나서면 완전히 다른 판타지의 세계가 펼쳐지는 듯한 경험을 훌륭한 성당 문을 들어설 때마다 느낀다.






IMG_5077 복사.jpg


IMG_5081 복사.jpg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야경을 보러 미켈란젤로 언덕을 올라갔다. 혼자 간 것은 아니었다. 한인민박에 머물고 있었는데, 하루 정도는 같이 묵고 있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과 같이(나 이때 29살이었다. 엄밀히 나도 20대 젊은이었는데..ㅋㅋ) 어울리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맥주를 사들고 올라갔다.

낭패였다. 나를 제외한 대학생들은 남자 둘, 여자 둘 이렇게 이미 눈이 맞아 있었다. 술을 먹는 도중에서야 내가 들러리 역할이란 것을 알아챘다. 제기랄. 남자는 이렇다느니 원래 여자는 이렇다느니... 난 사실 별로 관심없는 연애 관련 화제가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지루하게 지속되었다.

술이나 퍼먹자. 하고 말없이 들이켜부었다. 취했다. 꽤 취했다. 비틀비틀거리며 언덕을 내려가는데 대학생들 눈에는 내가 보일 리 없었다. 나는 괜시리 더 과장되게 비틀비틀거려봤지만 이미 그들 눈에 나는 투명인간이었다. 아마 내가 이 낭떠러지에서 굴러떨어지고 갑자기 번개를 맞아 온 몸이 불탄다 하더라도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아니 피렌체 전체가 불타고 두오모 돔이 UFO에게 납치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아!! 그들과 딱히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진심이다. 하지만 무리에서의 소외감은 짜증나기에 충분했다. 니들은 나에게 소외감을 줬어.. 부들부들..

그들은 그날 이후부터 밤마다 숙소 앞 광장에서 술판을 벌이며 비포선라이즈를 찍고 있었다. 그런데 니들, 비포선라이즈에 악당 조커가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줄 알어? 어느 날은 괜히 심술이 난 나머지 그들이 앉아있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준비해놓았던 차디찬 물 한바가지를 그들 위로 부어버리는 상상..을 하다가 갑자기 심술이 풀리고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내가 피렌체까지 와서 엄한 곳에다 왜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 다시금 정신을 수양하고, 내 갈 길을 갔다.




@thelump




Sort:  

아 이래서 다들 유럽유럽 하는 건가요?
오랜 시간동안 쌓여진 문화라는게 참 대단하네요.

그리고, 원근법! 브루넬리스키 덕에 저도 밥 먹고 사네요 ㅎㅎ

아. 그렇네요! ㅎㅎㅎㅎ 천재 한 명이 여러사람 후대까지 먹여살리네요.

20대 대학생들ㅋㅋㅋ 사실 저도 할말이 없네요....

비포선라이즈 찍으셨군요....ㅎㅎ

쉿! 지금 여자친구한테 혼납니다.

진지하게 읽다 막판에 뿜었습니다 ㅋㅋ 피렌체 저도 예전에 다녀왔는데 오랜만에 사진들보니 정말 반갑네요. 제 넘버1은 데이빗 동상이었죠.

데이빗이라고 하니 더 친근한 느낌이네요. 저도 피렌체에서 다비드 보고 왔다고 하지 않고 우리 데이빗~ 보고 왔다고 해야 더 있어보이겠어요 ㅋㅋ

아 ㅋㅋ 다윗이죠. 영어로는 데이빗이어서 헷갈렸습니다. 미국에 너무 오래 살았나 봅니다...

예술작품들, 건축물들 잘 보다 나중에 느껴지는 이 씁쓸함은 뭘까요:ㅇ 부들부들 이 느낌 왠지 알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

그럴거면 홍대나 신촌 가지 왜 피렌체까지 와서 그러는줄 당췌 정말 아우 정말 이해가.. 부들부들..

어휴, 로맨틱한 도시에서 들러리라니 ㅠㅠ 역시 인생은 독고다이인가요 ㅎㅎㅎㅎ

여행지에서 낯선 동행과의 만남은 진짜 복불복이에요. 눈치를 더 키워야할텐데 말이죠..ㅎㅎ

다비드상 뒷모습은 처음 봤네요...
멋진 풍경..
역시 시선에 감각이 있으세요 ㅎㅎ
다비드상 모작은 베끼오 광장 앞에 만 있는게 아닌가 보군요...

네 아무래도 미켈란젤로의 초창기 상징같은 작품이니 요기조기 있는것 같아요. 뒷태도 참 멋지죠?

피렌체를 두 번, 총 열흘 정도는 있었던 것 같은데 미켈란젤로 언덕을 한 번도 안 갔습니다. 저런 꼴은 안 봤으면 하지만 세 번째에는 가 보려구요.

저런 꼴을 당할 위기에 처할 것을 대비해서... 언제든지 빠져나갈 궁리를 마련해두고 가시길요..ㅎㅎ

앞부분에서 예술작품에 대한 소개를 따라가다가...치정극이 될뻔하다가.... 잘 참고 마무리하신거 같아요.ㅎㅎㅎ

ㅎㅎㅎ 로맨스와는 상관 없기에 치정극까진 아니구요.. 일종의 심술극..이 될 뻔 했지요 ㅎㅎ

피렌체. 저도 꼭 오랜 기간 가보고 싶은 곳이라
가게 된다면 매일 아침이 기대감에 가득차지 않을까.
그리고 역시나 숙소는 혼자 지내는 걸로.

맞아요. 사람 만나는거 막 즐기고 파이팅 넘치는 성격 아니면 1인실이 최곱니다.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어요.

카메라만 들이대도 예술이 되는군요. ㅎㅎㅎ

피사체 빨이죠 ㅎㅎ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3
JST 0.077
BTC 62136.92
ETH 1631.41
USDT 1.00
SBD 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