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 (3/3)

in #krsuccess4 years ago

대둔산 하면 역사적으로 동학 농민군의 '대둔산 전투'가 떠오르곤 합니다.

1894년 12월 중순부터 약 석 달여간 관군 및 일본군과 치열한 항전을 벌이다가 1895년 2월 18일 포로로 붙잡힌 어린 소년 1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장렬히 전사한 대둔산 전투가 있었다고 합니다.

대둔산의 험준한 산악 지형을 보니 그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감히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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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 전투

우금치 전투가 그렇게 막을 내리고 나서 전봉준, 김개남이 체포된 후 더 이상 기반을 잃은 동학 농민군의 잔당은 동학의 접주급 이상 지도자 25명이 마지막 항쟁을 결의하고 대둔산으로 피신하여 산세가 험난한 정상부에 요새를 설치한다.

1894년 12월 중순부터 약 석 달여간 관군 및 일본군과 치열한 항전을 벌이다가 1895년 2월 18일 포로로 붙잡힌 어린 소년 1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장렬히 전사한 대둔산 전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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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1월 23일(양력 2월 17일)에 신식 무기로 무장한 강화 심영병(沁營兵)과 일본군 3개 분대가 터골에 도착하여 1895년 1월 24일(양력 2월 18일) 아침 공격을 개시하니 상황은 급박해졌다.

이 전투의 기록을 담은 대둔산 부근 전투 상보에 의하면 동학 농민군은 후방에서 기습한 관군과 일본군을 막지 못해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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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이들을 이끌던 동학의 접주인 김석순은 일본군의 포로가 되는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1세 ~ 2세가 된 그의 갓난아기를 안고 투신하여 자결을 하였고,

험난한 산중의 뒤에서 기습을 할 줄 모르고 앞을 중심으로 방어하던 농민군들도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전원이 전사하고 말았다.

출처 :대둔산_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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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경사와 더불어 각종 기암과 병풍처럼 펼쳐진 암벽 등을 보니 대둔산이 왜 충남, 전북의 금강이라 불리우는지 알것 같습니다.

202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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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 예전에 등산 해봤는데 진짜 산이 ⛰️ 험하고 힘든 기억이 납니다. 절경은 멋있었지요! 좋은 오후 보내시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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