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반성(反省)

in #kr-philosophy8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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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反省)이란 돌이켜 살핀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돌이켜 본다는 행위가 무얼 뜻하는가? 지나온 길을 되새기기 위해서는 현재에 머물러야 한다. 지나온 길을 돌이켜 본다는건 과거로 돌아가서 그 길을 택한 것을 후회하고 뉘우치는 것과는 다르다. 당신은 당시에는 최선이라 생각하는 길을 택했다. 따라서, 당신이 지나온 길을 거슬러 간다면, 당신은 다시 또 같은 길을 택할 것이다. 그래서 반성을 위해서 우리는 철저히 현재에 남아야 한다. 내가 지나온 길, 지나지 않은 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현재에서야 뒤를 돌아볼 가치가 있다.

당신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격언에 따르지 않았던 것을 반성한다고 하자. 당신은 돌다리를 두들겨 보긴 커녕 성급하게 강을 건너기 위해 강에 뛰어들었다. 당신은 그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급한 결정이 나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당신의 성급한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선택 뿐만이 아니라 선택의 배경 또한 돌이켜 살펴야 한다. 당신의 등 뒤에서 야수가 어슬렁거리고 있다면 당신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 야수는 목이 말랐을 뿐일지도 모른다. 목이 너무 말라서 목을 축이기 위해 물로 가는 길에 당신과 마주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당신은 그 사실을 알지 못 한다. 그래서 당신이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한정 같은 선택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강을 건너 산을 올라서 지나온 길을 돌이켜 본다면 어떨까. 산 꼭대기에 서서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당신에게는 실수가 많을 것이다. 물을 마시고 싶었을 뿐인 야수를 피하기 위해 강을 성급하게 건넜고 그래서 옷이 젖었지만, 실은 당신은 강을 성급하게 건널 필요가 없었고 강을 따라 걸었다면 튼튼한 다리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신은 성급하게 강을 건너고 산을 올라서 험한 산세에 얼굴과 팔은 긁힌 상처로 가득하지만, 알고 보니 그 다리를 건넜다면 곧바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잘 닦인 산길이 있었다.

이는 모두 당신이 산꼭대기에 있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당신은 다음에 같은 상황을 만난다면 공격의 의지를 표현하는 야수와 목이 마를 뿐인 배부른 야수의 행동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을 따라가면 다리를 만난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다음에는 여유를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당신의 선택을 후회하는건 앞으로 나아갈 지혜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나 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잘못에도 같은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타인이 죄책감에 무너지는 모습이 보고 싶은가, 아니면 지나온 길을 돌이켜 살펴 자신이 그 선택을 한 배경에 대해 이해하고, 다음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 바라는가?

죄인에게는 긍정적인 어떤 것도 주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다. 자신은 죄인들에게 분노를 표하는게 정당하고, 죄인들은 깊은 후회만을 갖고 죄의식을 지녀야 한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람의 정신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알고 있다. 부정적 감정을 깊게 가지고 있는 사람의 눈은 어두워진다. 그리고 눈이 어두운 사람은, 강을 따라 다리를 찾을 지혜도, 야수가 배가 고픈지 목이 마른지 구분할 지혜도 얻을 수 없다. 아마 그 사람은 같은 상황에 또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야수의 어슬렁거림을 추적으로 여기고 무작정 강에 뛰어들 것이다.

나는 강한 단죄를 요구하는 이들, 죄인의 삶이 완전히 황폐화 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차라리 죽여라."
강한 단죄를 요구하는 이들은, 죄인에게는 죽음조차도 사치라곤 한다. 그들이 편히 죽게 두어서는 안 된다며, 그들은 평생 속죄하며 대중들의 분노를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눈 먼 분노를 휘두르며 죄인에게 지혜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눈이 먼 죄인은 같은 실수를 할 것이다.

그들을 용서하라는게 아니다. 죄인을 이해하고 이타심을 내비치라는게 아니다. 이솝 우화에서 태양과 바람은 내기를 했다. 태양도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나그네에게 햇살을 내리쬐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죄인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그 삶을 버릴 지혜를 얻을 기회를 주는 것과 타인에게 고통을 준 죄인에게 같은 고통을 주는 것 중 어느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일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는, 죄인이 더 이상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 이기적인 선택은 죽여서 더 이상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없게 하거나,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 것 뿐이다. 바람은 이기적인게 아니라 멍청한 선택을 한 것이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가 죄인에게 반성을 요구하며 파멸적인 후회에 몸을 맡기길 원하는 이유는, 우리부터가 과거를 통해 지혜를 얻는게 아니라 우울과 자책감만을 얻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나는 학생들의 반성문과 반성문을 대하는 교사들의 태도가 싫다. 나는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메세지를 담은 반성문은 반성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사과문이다. 반성이란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를 돌이켜보고, 자신의 실책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진정성 있는 뉘우침과 사과는 자신의 선택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담긴 반성문을 '변명만 가득한' 글이라고 하는건 옳지 않다.

나는 우리 사회가 진정 이기적인 사회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죄인에게도 지혜를 허락할 정도로 이기적인 사회가.


@zzoya님의 그림작가 & 글작가 콜라보 이벤트 투표기간입니다. 링크한 글에 모든 출품작들이 링크되어 있으니 기존에 출품작들을 살펴보지 않으셨던 분들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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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방금 친구를 만나 몇년 전에 미리미리 준비했어야 했어... 라는 무거운 후회와 반성을 하고 오는 길이었는데ㅜㅜ 글을 읽어보니 그것은 할 필요도 없는 후회고 반성도 아니군요. 다 맞는 말씀이긴 하나 그것이 제 개인의 문제로 치환될 때는, 그 죄인이 내게 해를 끼친 사람이 될 경우에는, 그럴 수 밖에 없어 한 선택이나 후회가 되고ㅜ 죄인에게 지혜를 바라기보다는 차라리 죽어라! 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이기심이 필요할 듯 보입니다. 글 잘 읽었어요. 늘 그렇지만 kmlee님의 깊은 통찰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우리는 사람이니 항상 합리적인 선택만 하고 살 수는 없고, 인간성을 넘어서는 초인성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죠. 그래도 우리 사회가 모두 노력하는 미래에 대한 한줄기 낭만은 갖고 싶네요.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겨우 두시간 자고 일어나 습관처럼
폰을 열고 처음으로 이글을 읽습니다
어쩌면 제가 오늘 올리려고 했던 글과
살짝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계셔서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과거의 선택을 돌아본다는것
결국 모든 순간의 선택과 결과는 자신의
자유와 책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돌아보고 반성할 현재가 있고요
좀더 지혜로운 자리에서 돌아보고 배워
같은 실수를 안하면 최선이라 여겨집니다
죄인의 단죄에 대한 부분은
갑자기 이런 말이 떠오르네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
부정적인 마음일때
상당히 위험한 선택을 하는 저자신을
자주 봅니다
말씀대로 좀던 현명한 눈을 갖기위한 이기심이 필요함을 느낌니다
아침부터 좋은글 읽고 갑니다~~^^

맞습니다. 감정의 해소가 목적인지, 재발의 방지인지를 명확히 해야겠죠. 감사합니다.

앗 핵심을 찌르시네요
반성~~~ㅠ

후회하신건 아니겠죠?

후회도 되지만 반성입니다
감정의 해소 도구로 쓰기도 해서요

반성문 많이 써본 1인으로서 한 말쌈
그저 복사 하구 붙어넣기 그거 잘만하면 다 용서 하든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교사들도 반성이 무엇인지 모르는거죠.

그 누구도 타인에게 단죄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반성을 요구할수 있을 뿐. 죄인에게도 반성의 지혜를 주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저는 대부분 남을 잘 용서해요. (저도 실수를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정말 가끔, 절대로 참을 수 없는 사람이 생겨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봐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출나게 다르지 않거든요.
어떤 기재가 절대로 용서할 수 없게 만드는 거 같아요.

그럴 땐 용서할 수가 없어요.. 음... 그냥 그 사람을 안 보게 되는 거 같아요.
(역시 나는... 본문의 내용을 보고 일기를 쓰고 있다 ;;)

그냥 안 보고 말면 잘 하고 계십니다. 개인 대 개인에서는 그게 최선이죠.

성인은 그렇다쳐도 청소년의 경우는 대중에게 어필하기가 쉽겠죠.

청소년범죄는 계속 늘어가고있고 소년법 개정의 목소리는 큽니다만

대부분의 대중들은 그 이면에 대해서는 생각하길 거부합니다.

본인들의 이익을 내놓아야하는데 대한민국의 경제 및 사회구조는 철저한 자본약육강식의 세계로 이루어져있고 그 세계에서 살아남기도 버겁기에 떨어져나간 사람들까지 챙기기엔 본인들의 미래도 불투명하기 때문이죠.

당장 소년교도소의 경우만 해도 전국에 딸랑 하나밖에 없습니다.

결국 사회를 주도하는 주도층의 분위기가 바뀌어야하는데

글쎄요... 아직까진 용서라는 키워드는 우리사회에 요원해 보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교정시설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하는말을 늘 되새기며 삽니다.

"살다보면 그럴 수 있어"

대중들의 이익에 부합하는게 길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길로 돌아오는 것인지, 아니면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다시는 길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좋을텐데요.


농담할 분위기는 아니지만 권진원의 살다보면을 듣는 중입니다.

와 오랜만에 듣는 노래제목ㅋㅋㅋㅋㅋㅋ

이 글을 읽고 잘못된 사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주인공을 히로인과 주변인들의 동정과 연민으로 자수하게 만든 소설 '죄와 벌'이 떠오르는군요.
마치 김리님은 히로인 소피아같습니다ㅎ 저도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특정인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때 한없이 차가워지기 때문이죠...

그게 또 참 어려운 일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죄인을 이해한다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비아냥에 시달리고, 먼 사람이 죄인을 용서한다면 당사자가 아니면 꺼지라는 말을 듣겠죠.

반성문이 아닌 사과문이라는 사실에서 한번 놀랐습니다.
진심어린 반성을 강요하는 것보다는 좀더 시간을 두고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삶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너무 바쁜 상황에서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죄라는 빠른 방법으로 선택하게 되나 봅니다.

사회가 선순환 되기 위해서는 분명 부정적 감정이 만연하게 되면 곤란하겠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부정적 감정은 별로 쓸모가 없어요.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삶을 해치니까요.

타인이 죄책감에 빠져 무너져 내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죄책감에 빠지지 않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고요.
글 중에서 이들이 파멸적인 후회에 빠지기를 원하는 이유가 자신들이 과거에서 지혜가 아닌 우울과 자책, 비난만 얻었기 때문이라는 부분에 상당히 동감합니다.
“나도 과거에서 자책으로만 빠졌는데, 너도 그래야지!” 나만 불행할 수 없다며 공격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뭐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행위라고, 이해는 할 수 있겠습니다만...

대낮부터 이상한 분노가 올라오네요ㅎㅎㅎ

분노하시면 똑같은 사람이 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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