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Shaped-Box 하트 모양 박스 3화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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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모양 박스 3화

Heart Shaped-Box

재현은 손가락을 딱딱 소리가 나게 꺾었다.
8:50 분이였다.
오늘은 매칭이 된 윤서와 만나는 날이였다.
매칭 상담가는 의자에 앉아있는 재현을 힐끔 봤다.

시간 강박증이 있는 재현은 언제부턴가 모든 일에 삼십분씩 일찍 도착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불안해졌을까.'

만날 여자의 이름은 윤서라고 했다.
'윤이 성이고 이름이 서... 그럼 친해지면 서라고 불러야 하나?'

그는 국가가 시켜주는 결혼 없이 그가 누군가와 사귈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 일만 아니었어도.


재현은 교육자 집안의 막내아들이었다.
다만 형과 누나와 달리 공부는 못했고, 노래와 악기만 잘 다뤘다.

"우리 집안의 돌연변이지."
부모님은 농담삼아 말하곤 했다.

그래, 대체 난 어디서 나온 걸까.
재현은 자문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쪽 가계를 들여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 앞에서 노래 부를 때가 제일 행복했다.
그는 학예회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기타를 쳤다.
빛나는 무대 위에서 두 팔을 벌리고 좌 우로 흔들면
저 멀리 사람들까지 모두 팔을 흔들어줬다.

'난 살아있어.'
그는 환하게 웃으며 노래를 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사랑 대신 관중의 사랑을 배웠다.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산 몇 개의 앨범 중 외국의 저항적 밴드 클레오를 접했다.
'이건 내 길이야.'

그는 소리를 지르고 저항하는 락 보컬들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밴드부 부원들 몇 명을 모은 그는 '바론' 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갓 스무살이 된 그는 인디밴드의 메카에 가서 노래를 시작했다.

그의 머리 위에 신발을 올렸다가 던지는 등의 기이한 제스쳐들,
특이한 가성과 무대 경험에서 오는,
스무살이라고 보기 힘든 자신감은 주목을 막 끌기 시작했다.

"아, 아. 도레미파솔."

재현은 마이크를 툭툭 건드리며 몇 번 헛기침을 했다.

"이번 노래는 존경하는, 우리 대통령님께 바치겠습니다."
관객들은 호기심에 고개를 돌려 그를 주목했다.

난 그를 사랑하지 않는데,
그는 나를 너무 사랑한다 하네.

아, 해는 저물고, 난 사랑에 빠져야 하네.
그와 모르는 여자와 모르는 아이와.
그렇게 우리는 우는 얼굴로 사랑을 노래하네.

노래 가사를 듣자마자 관객들은 파도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괜히 엮이기 싫다는 듯이 다들 허겁지겁 짐을 챙겼다.

재현은 그 모습에 상처를 받았다.
살아가면서 한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모습에 익숙해진 재현은 괴로워했다.

노래가 가장 진실할 때 스포트라이트는 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노래를 멈출 수는 없었다.

노래는 어느덧 절정에 오르고
재현은 자신의 노래가 세상을 구할듯이 소리쳤다.

막상 자신의 운명은 내동댕이쳐졌지만.

"미친 새끼."
자취방에서 막 나올 때 경찰 두 명이 쌍욕을 하면서
그를 길거리로 내동댕이쳤다.

몽둥이들이 재현의 몸을 두들겼다. 통증이 그의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누군가 신고를 한 걸까.
그는 고통에 신음하며 몸을 비틀었다.

몇 번 더 몽둥이 찜질을 한 이후에 경찰들은 그만뒀다.
" 한 번만 더 공연해봐. 그때는 살아남지 못할 거야. 무명이라서 이쯤하는 거지."

재현은 한동안 바닥에 누워있었다.
몸의 고통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다.
일어나기 싫었다. 이 추락이 얼마나 길까.
다시 날개가 돋고 빛을 받으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호의적일 줄 알았던 다른 락밴드 가수들조차도 술자리 뒷담화로만 그의 이야기를 할 뿐이였다.
"야, 지가 섹스 피스톨즈인 줄 아나 봐."
보컬이 말하자 테이블에 앉은 나머지 멤버들이 낄낄댔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그들은 재현과 친했지만,
그의 지나친 열정이나 순수함은 그들을 불편하게 했었다.

"하여튼 그 새끼 나대는 거 마음에 안 들었어.
이 바닥에서 지가 그러고도 먹고 살 줄 아나?"

그의 패기에 대한 질투심 반에 실패한 인생에 대한 경멸 반.
그들은 노가리를 까며 술을 들이켰다.

재현은 그 뒤로 익명의 이름으로 작곡한 곡들을 가수들에게 팔며 근근히 생활해 나갔다.
인디밴드 클럽 공연을 하려고 시도는 해봤지만 번번히 거절당할 뿐이였다.

가끔 바론의 기타리스트와 길거리 공연을 통해서 받는 돈도 있었다.
나머지 멤버들은 팀을 나갔다.
남으려 하던 드러머마저도 이젠 잡다한 불법 상품들을 팔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는 형의 스튜디오에서 자고 아침에는 곡을 쓰고,
하루하루가 고단함의 연속이였다.

'푹신한 침대에서 한 번 자봤으면..'

재현은 한숨을 쉬었다. 그 때 그 노래를 부른 게 잘한 일이였나?
너무 고단해지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무대 위에서 밝았던 그는 날이 갈수록 점점 시니컬해졌다.


어느덧 9시 10분이였다.
윤서는 아직 오지 않았다.

매칭 상담가는 초조하다는 듯이 재현을 쳐다봤다.

그는 '나는 몰라요' 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한 번 전화해 볼까요?"
상담가는 동의를 구하듯이 말했다.

"그러던가요."

그 순간, 뒤에서 문이 열렸다.
빨간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긴 머리 여자가 들어왔다.

"윤서님?"
상담가가 물었다.

"네, 윤서입니다."


1화: https://steemit.com/kr/@zoethehedgehog/heart-shaped-box-1
2화: https://steemit.com/kr/@zoethehedgehog/heart-shaped-box-2

섹스 피스톨즈: 영국의 락밴드. 'God save the queen' 이라고 영국의 상황과 왕실을 비꼬는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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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둘이 사랑에 빠질 것 같다는...
제 희망이 무시되는 걸까요?

ㅎㅎ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D

오오 흥미진진 합니다 !! 저도 사랑에 빠진다에 한표 걸어요 !! 글을 너무 잘쓰세요 ^^

감사합니다 옥자님! ㅎㅎ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가는 이야기일까요~??
다음편이 궁금합니다ㅋㅋㅋ
그리고 미리써두신건지...연재 속도가 장난이 아니시네요ㄷㄷㄷ

앗 쓰고 싶을 때마다 조금씩 써두고 있습니다! 구상은 이미 다 했고요 :) 상처를 보듬어가는 내용인지는 읽어가시면서 알 수 있습니다! ㅋㅋ 자주 와주세요

오우!! 기다리던 3화다!!!
남주 등장~~
각박한 시대에 진실한 사랑이 싹트나요??😍

ㅋㅋ 다음 화에 계속~

러브라인의 시작전초전인가요? ㅎㅎ

ㅎㅎ 다들 러브라인을 기대하시는군요!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둘다 근성이 있군요. 비슷하면 끌린다던데. ^^

둘 다 좀 비슷한 성향이 있죠! 모두가 예스라 할 때 노라 할 수 있는 사람들 :D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_^
연재가 빨라서 놀랐네요.ㅎㅎ

감사해요 울곰님! ㅎㅎ

드디어 마주치나요!!두둥~!!

ㅋㅋㅋ두두둥 !! ( 드럼 소리)

Cheer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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