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닝> 해석 및 후기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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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이후의 한국영화 문제작들이 수많은 캐릭터를 생산해냈지만 그 인물들 가운데 대다수는 그야말로 트렌드로 왔다가 트렌드를 타고 사라졌다. 그런데 유독 이창동의 인물들은 다들 주민등록번호와 주소가 정확히 찍힌 주민등록증 하나씩 지갑 안에 넣고 우리 주위에 섞여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ㅡ 씨네 21 前편집장 조선희

저는 이 말이 가장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잘 표현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의 캐릭터들은 저마다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이번 영화 <버닝>도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유통알바생인 종수(유아인)도, 미스테리한 인물인 벤(스티븐 연), 그리고 해미(전종서)도 모두 저마다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버닝은 71회 칸영화제에 경쟁부문에 진출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8년만의 복귀작이자 칸 영화제를 노리고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현재까지는 굉장히 성공적이라 생각합니다 칸영화제 후반부 스크리닝으로 어제 5월 17일에 첫 공개가 되었고, 많은 영화지나 평론가들이 호평을 보내며 수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항상 수상을 이어왔던 이창동 감독을 빈손으로 보낼지, 수상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중반이 넘어가기까지 고레다와 히로카즈 감독의 <만비키 가족> 이외에 호평이 없어서 수상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지에서도 가장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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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토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인 <헛간을 태우다>를 기반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 소설의 이야기 구조는 그대로 가져가면서 각색이 약간 가미되었습니다. 영화를 보시기전에 <헛간을 태우다>를 먼저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먼저 보고 봤는데 짧고 인상깊었습니다. 영화와 비교하자면 소설의 해석으로 더 확장된 느낌입니다.

영화가 난해하고 누군가는 지루해할수도 있겠습니다. 연기 부분을 짚어보면 유아인이 가장 돋보입니다. 전종서는 이번에 첫 데뷔한 신인인데 아직은 부족해보입니다. 첫 씬에서 바로 한 눈에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마스크는 확실히 개성이 있어보입니다. 스티븐 연의 한국어 연기는 부족해보입니다. 차라리 완전한 한국어 연기보다 <옥자>에서처럼 그런 캐릭터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했지만, 본인이 그런 캐릭터는 그동안 많이 맡았기에 원치 않았다고 하네요.

영화의 장면이 아름다운게 많습니다. 대한민국의 농촌을 이렇게 이쁘게 찍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롱테이크 씬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 이후로 최고입니다. (당연히 최고인 이유는 같은 촬영감독 입니다. ^^) 음악의 사용도 좋았구요. 롱테이크 씬에서의 음악이 참 좋았습니다. 그 씬과 제일 어우러지는 음악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래부터는 영화에 대한 해석입니다. 영화를 아직 안보신 분들이라면 다 보신 뒤에 읽는게 좋을 것 같네요.
여기부터 읽으시는 분들은 줄거리는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적겠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니 참고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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젋은이를 나타내는 세 인물들

저는 세 인물을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각각의 캐릭터로 봤습니다. 종수는 꿈은 있지만, 타의에 의해 좌절되는 젊은이들을 나타내고,벤은 가진게 넉넉하여 삶의 목표 없이 살아가는 젊은이들 그리고 해미는 현실은 고되지만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젊은이들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종수와 벤은 서로 대척점에 놓인 두 인물이고 그 가운데에 해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극중에서 해미와 벤이 종수집에 방문했을 때 잘 드러납니다. 해미는 가운데에 있고, 종수는 왼쪽에 벤은 오른쪽에 있습니다. 가장 극단의 사이에 해미가 있기에 종수와 벤은 서로 해미가 자신에게 오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종수는 현실적인 문제로 해미와 가까이 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 (벤과의 경제적 차이에서 오는 열등감). 반면 벤은 해미를 얻어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 그저 하나의 도구로 활용되기를 원합니다.

해미는 종수의 집 방문을 하면서 자신이 살았던 집을 살펴보고 우물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내게 됩니다. 우물에 빠졌던 자신을 구해준건 종수였다고 하지만 종수는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우물 이야기는 극중에서 과거에 진짜 있었던 일 이었을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물에 대한 기억이 다른 인물마다 다릅니다.) 저는 우물 이야기는 극중에서 현재 종수와 해미의 관계를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 하는 것이죠. 해미라는 인물은 돈도 없고, 친구도 없으며 벤이라는 감정도 못느끼는 인간에게 질투라는 것을 느끼게 해줄만큼 종수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미는 종수(꿈)를 찾게 됨으로써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종수는 해미를 사랑하지만, 아버지의 영항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떠안고 있습니다. 이 둘 사이를 꿰뚫어보고 있는 벤은 그저 웃음만 나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벤은 목표도 없고 쉽게말하면 그냥 노는 인물입니다. 뭘 먹어도 맛이 없고, 누굴 만나도 좋아하는게 안느껴지는 것은 해미가 아닌 바로 벤입니다. 그런 벤에게도 취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헛간,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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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는 왜 사라졌을까?

해미는 종수 집 방문 이후로 사라집니다. 종수는 벤에게서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를 듣고나서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비닐하우스를 살핍니다. 자신의 집 주변에서 비닐하우스를 살피면서 해미에게 연락을 하게 되는데 해미와의 연락은 닿지 않습니다. 취업도 마다하고 비닐하우스가 타지 않을지 걱정하며 매일 달리기를 하면서 살핍니다. 여기서 비닐하우스를 해미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종수는 꿈을 꾸는데 어린 종수가 비닐하우스가 타는 것을 보는 꿈을 꾸게 됩니다. 이러한 불길의 장면은 어렸을 적 아버지가 엄마 옷을 태우라고 시켰던 그 모습과 대비되어 나타나고, 소중한 것이 활활타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무력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종수는 벤을 쫓게 되고, 카페에서 만난 벤은 이미 비닐하우스를 태워버렸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아주 집 근처에서 가까이 태웠다고 하는데 종수는 믿지를 못합니다. 벤은 아주 가까이 있으면 못볼 수도 있다며 종수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며 질투를 못느끼는 사람인데 질투를 느꼈다고 벤은 말합니다.

해미는 모든 것을 두고 홀연히 사라질법한 인물입니다. 아프리카에 다녀와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했고, 노을처럼 사라지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이 배웠던 팬터마임처럼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없다는 것을 잊는다고 했습니다. 해미가 키운다던 고양이도 그렇고 해미 자신도 그렇고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해미가 고양이에 대해서 언급한 것처럼 없다는 것을 잊게하면서 존재를 각인시키고, 자기 자신 또한 종수에게 완벽하게 사라짐으로써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게끔 하면서) 존재를 각인시킵니다. 사실 종수는 해미를 처음에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해미가 성형을 한 탓도 있지만, 어렸을 때 못생겼다고 놀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미는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다가갈만큼 종수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종수에게 실망을 하게됩니다.

해미는 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을수도 있습니다. 모든 정황은 종수의 시선으로 보면 마치 벤은 표정 변화 없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입니다. 자신의 현실에 대한 무력감과 분노, 좌절이 모두 폭발하여 종수는 벤을 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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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의 시선에 따른 해석의 차이

영화에 나오는 각각의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가면 해석은 열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수는 유통알바를 하다가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파주로 가게됩니다. 종수의 아버지는 공무원 공무방해외 폭행죄로 징역살이를 하게됩니다. 종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습니다. 분노조절장애가 있어서 엄마가 떠나게된 그런 인물입니다. 주변 이웃들도 종수의 아버지를 좋게 보진 않습니다. 하지만 종수는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려고 합니다. 암놈인 소를 돌보고 파주에서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환경의 대척점에 벤이 있습니다. 벤은 좋은 집, 좋은 차 그리고 평화로운 가족 등 부족한게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벤에게서 알 수 없는 열등감과 자괴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감정이 폭발하여 파국을 일으키지만, 벤의 시선에서 보면 여유가 넘치는 사람입니다. 삶의 지향성은 없지만 자신이 무엇이든 생각하는대로 되게끔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입니다. 해미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자유분방하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 같지만, 속은 굉장히 외롭고 거짓으로 둘러쌓인 인물입니다.

이 각각의 시선에 따라 영화의 장면을 곱씹어 보면 벤이 해미를 죽였다는 정황만 있지 꼭 죽였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실인 것은 종수가 죽였다는 사실만이 진실일 뿐, 진실을 위한 근거는 정황만 있습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미를 죽였을 수도 있고, 해미는 홀연히 사라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해미는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해미는 아마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리고 만약 제가 종수라면 마지막 장면에서 소설을 쓸 때 해미에 대한 이야기를 쓸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로 다른 의견들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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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 영화보고 리뷰 찾아보고 있네요. :)
흥미로운 리뷰입니다.. 감사합니다 :)

@therealwolf 's created platform smartsteem scammed my post this morning (mothersday) that was supposed to be for an Abused Childrens Charity. Dude literally stole from abused children that don't have mothers ... on mothersday.

https://steemit.com/steemit/@prometheusrisen/beware-of-smartsteem-sc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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