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6)

in #kr7 years ago (edited)

수업협의회의 시작

수업협의회는 멀리 떨어진 영어전용 교실에서 실시되었다.
교실 가운데 서로 마주볼 수 있게 직사각형 모양의 자리가 마련되고 그 밖으로 또 안쪽을 향하여 앉을 수 있게 자리가 배치되어 있었다.
가운데 자리는 원경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앉고 타교 선생님들은 바깥쪽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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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수업공개를 하면 공개되는 수업만 보고 가고 수업협의회는 컨설턴트와 수업자 선생님만의 시간이 되는 것인데 많은 선생님들이 수업협의회까지 참석했다.
이런 광경은 좀 생소하기도 했고 가운데 앉아 있는 방금 수업을 했던 수업자 선생님은 얼마나 이 자리가 불편할까 하는 동정의 마음도 들었다.
컨설턴트와 단둘이 자리를 해도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인데 말이다.
수업공개 중에 유독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열심히 촬영하시던 머리숱없는 남자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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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사람이 바로 이 수업의 컨설턴트인 손우정 대표인 줄 알았다.
배움의 공동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석한 나로서는 손우정 대표를 알리도 만무했다.
그런데 그 남자분은 타교에서 참관하러온 선생님들이 앉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수업자 선생님 옆에 앉은, 컨설턴트로 소개된 사람은 중년의 여자 분이었다.
배움의공동체 연구회 대표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권위자 라는 생각에 남자를 떠올렸던 것이다.
처음부터 나의 편견을 와장창 깨주며 수업협의회는 시작되었다.

수업협의회, 이게 진짜구나!

수업협의회 진행은 원경고의 한 선생님이 맡으셨고 처음은 수업자 선생님의 수업관과 수업고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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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가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잘된 점을 우선 말하고 고쳐야할 부분을 조언해 주는 여태까지 내가 경험한 수업협의회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그리고 수업관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하라니!
그러고 보니 나의 수업관은 무엇이었나 생각해 봤다.
아니 수업관이라는 것을 가지긴 하고 수업을 했을까?
그냥 교과서 내용을 교과서 진도대로...
그것이 교육과정에 맞춰 가르치는 것이니 따로 수업관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있다면 열심히 수업 듣고 열심히 문제 풀어서 좋은 성적을 얻어가는 학생을 양성시키는 것 정도...
수업자 선생님의 수업관 이야기를 마치고 수업을 참관했던 원경고의 모든 교사가 돌아가며 수업에서 본 것을 이야기 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신이 수업에서 본 것을 이야기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선생님들이 말하는 내용이 더 놀라웠다.
수업을 한 교사에 대한 평가나 조언이 아니라 수업에서 관찰한 모둠과 학생들에게 어떤 배움이 일어나고 어디에서 배움이 주춤거리는지, 학생들끼리의 대화와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말하는 게 아닌가!
교사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이 수업에서 본 사실을 바탕으로 이에 대해 분석하고 그를 통해 배운 것을 이야기 하는데 모든 교사가 말하고 있는 교사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통의 경우 말을 잘하는 교사나 조직 내 영향력이 있는 교사 정도만 말을 하게 되는 게 보통의 협의회인데 말이다.
아니면 관리자의 전달식 이야기만으로 끝나버리거나...
나의 경우 학교 협의회 시간에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부류였다.
그렇게 한 명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거의 한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런데 누구하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경청하고 있는 것이 또한 놀라웠다.
작은 학교라지만 학생 하나 하나에 대해 이렇게 분석하고 이해하고 공유한다면 학생 개개인에 대한 맥락적 이해가 이루어지고 이는 수업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판단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수업자 선생님이 앞서 말한 교사들의 말에 배운 것을 정리하고 자신이 수업에서 모자랐던 부분을 이야기하며 끝났다.
굳이 수업자에게 이런 저런 것이 모자르고 고쳐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 않아도 수업자 스스로가 알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원경고 선생님들의 말이 끝나고 컨설턴트인 손우정 대표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수업 컨설팅

띄어진 PPT화면에는 방금 수업의 장면이 들어있었다.
수업을 관찰하며 사진을 찍었고 이를 원경고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PPT로 만들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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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국어교과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국어교과의 목표, 역량, 이번 수업에서 다루고 있는 성취기준...
여태 수업을 해오면서 교과교육과정 속 교과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는 펼쳐보지 않았었다.
그냥 의심없이 교과서에 다 담겨져 있거니 교과서 내용대로 수업을 했을 뿐...
나에게 교과교육과정은
대학에서 배울 때 읽어봤던 것,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외우던 것,
교무실 책상 위 책꽂이에 꽃혀 1년에 한 번 펼쳐볼까 말까 한 책자,
그 뿐이었다.

교과서를 넘어서는 교재를 풍부하게 가져와서 수업에 활용해야 하며, 그렇게 되려면 교사들이 더 많은 교양을 쌓고,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많이 가르치려 하지 말고 깊이 파고들어가야 하며, 교사가 정리하지 말고, 학생들이 찾아내는 수업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곧 양이 아닌 질적인 수업을 해야 하는 것이므로, 필기나 빈 칸 채우기 같은 단순노동보다 학생들이 생각할 거리, 대화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아울러 학생들을 어린애 다루면 안 되고, 정중한 언어를 사용하여 학생들이 수업을 진지하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였습니다.
<원경고등학교 홈페이지에 수록된 수업협의회 기록 중>

이 후의 손우정 대표의 말은 기억이 가물가물 하고 기록했던 노트는 잃어버려 원경고 홈페이지의 기록을 가져온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수준)을 넘지 못한다

그 당시 이후 손우정 대표의 말은 분명 좋은 말임에도 귀에 잘 안들어왔다.
이에 대한 나의 인식이 가 닿아 있지 않기 때문인 듯 했다.
배움의 공동체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수업협의회가 끝나고 수업공개 일정이 모두 끝났다.
여운이 깊게 남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단순히 수업 기법을 차용해와서 수업 속에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라며 요구하던 지난 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수업의 변화는 학생들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교사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수준)을 넘지 못한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결국 아이들이 수업에서 서로 협력하게 하고 대화를 나누게 하려면 우리 교사가 먼저 서로 협력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일을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교사가 먼저 민주성을 실천했어야 하는 것이다.
새끼 게에게 똑바로 걸으라며 자신은 옆으로 걷고 있던 어미 게의 모습 이 나의 모습이었던 거 같았다.

다음에 계속

사진 자료는 원경고등학교 홈페이지에서 공개 되어 있는 것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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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로이스마켓 테그를 달아주셔야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다는 것이라 생각해서요. 이글은 어제 글인지라 ^^;;
이제 로이스마켓 테그를 달겠습니다.
로이스마켓 응원 합니다. lol!!

뭔가 바꾸기를 바라면, 많은 노력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한명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고 그걸 행동해갈때 비로서 그것을 바꿔질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한 사람의 열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 이라는 말처럼 함께 가야 지속가능한 변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모이면 시너지가 발생하고 그에 집단지성이 작용하겠죠. 미래 사회에 요구되는 핵심역량에 '의사소통'과 '협업능력'이 들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거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마지막 말이 인상깊네요.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넘지 못한다. @zaedol님의 게시물을 통해 미래 교사분들 그리고 많은 현직 교사분들이 협력하며 변화해나갔으면 좋겠네요☺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一年之計, 莫如樹穀 (일년지계 막여수곡)
한 해를 위한 계획으로는 곡식(穀食)을 심는 것 만한 것이 없고

十年之計, 莫如樹木(십년지계 막여수목)
십년을 위한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것 만한 것이 없고

百年之計, 莫如樹人(백년지계 막여수인)
백년 동안을 위한 계획으로는 사람을 심는 것 만한 것이 없다

관자라는 책에 실린 말을 보면
어찌보면 농업과 교육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미래를 바라보고 무엇인가를 성장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결국 농부든 교사든 사람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것. 많은 농업인 혹은 연구자들이 노력하시듯 교육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하고 있어요.
함께 좋은 변화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학교 현장의 노고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가즈앗!!! ㅋ

@tutorcho 님도 노고가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그럼.... 가즈앗!!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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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 a lot! lol!

글 정말 잘읽었습니다!:-D

나는 네가 이전에 쓴 글을 알고싶다! 이벤트에 당첨되신걸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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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1일부터 28일 일주일동안 쓰시는 포스팅에 풀보팅 해드리겠습니다!
당첨자확인 포스팅>
https://steemit.com/kr-event/@jeank/3ad79o

당첨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기분이 좋아요. 다만 오늘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너무 고민해 버렸지만 말입니다.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학교에 잠깐 발만 담군 사람으로서 이러한 자리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랍네요. 우리 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 될 수 있는데에는 좋은 교육자들이 있었음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우리 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데 초석을 다져주세요!

교육에 문제가 있느니 해도 결국 이러한 우리의 교육과 그 교육을 만들어낸 여러 사람들의 노고가 있어서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발전될 우리나라를 만들 원동력 또한 교육에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보이지 않고 알려지지도 않지만 현장에서 교육을 변화시키고 미래를 위한 인재를 키우기 위한 노력들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분들의 모습이 더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교육계 외의 분들도 관심과 참여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동감합니다. 결국 교육의 주체가 되는 것은 교사이니까요. 교사분들께서 이렇게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니 참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널리 퍼져나갈 때 더 밝은 미래가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교육의 주체가 교사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교육의 주체는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여야 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더 넓게는 지역사회까지 포함해서요.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육이라는 것은 어느 한 주체만으로 이뤄질 수 없으니까요. 부족한 글 읽고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교육의 주체라는 말을 제가 너무 한정적인 의미로 사용해버렸네요. 수업을 통해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고 큰 방향성을 제시하는 안내자로서의 역할이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는데, 표현력의 부족으로 저렇게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모자란 식견이 여기서 탄로나네요. 댓글로 다신 내용에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가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교사의 힘으로 모든 것이 바뀌어지면 차라리 낫겠다고 느껴질 때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기에 그 부분에 민감한 듯 합니다. @laymanstory님과 같이 관심가지시고 의견을 주시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저 또한 표현력이 부족하여 의미 전달을 잘 못하는지라...;;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당신을 응원해! 성장해온 과정을 돌이켜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홍보해

다 항상 응원해 주고 지지해주는 당신 덕이야 ^^

@zaedol님 안녕하세요. 써니 입니다. @kimssu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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