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의 지하철에서

in #kr2 years ago (edited)

일요일 낮에 지하철을 탔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앉아 갈 정도로 한산한 편이었습니다. 저도 앉았습니다. 맞은편에 20대 정도로 보이는 덩치 큰 수컷 사피엔스 한 개체가 앉아서 열심히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덩치에 비해 휴대폰을 잡은 손이 작고 고와서 눈에 띄었습니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설거지 한 번 안 했을 것 같은 고운 손이었습니다.

코를 내놓고 마스크를 쓴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두 자리 정도 걸쳐 다리를 벌리고 앉은 모습이었습니다.

거의 직선에 가깝게 쩍벌을 하고 앉았는데 170도 정도였습니다. (직선은 180도) 그렇게 다리를 벌리고 앉은 사피엔스는 처음 보았습니다. 곱고 부드러운 손처럼 다리 가랑이도 아주 부드럽고 유연한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이 혐오스러워 눈을 감았습니다. 내릴 때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섰습니다. 그 사피엔스도 일어나더니 내 옆에 섰습니다. 그 사피엔스가 혐오스러워 옆의 문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피엔스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내 옆으로 또 오는 것이었습니다. 한 여름의 똥파리 같았습니다. 다시 원래 서 있던 문 앞으로 옮겼습니다. 똥파리는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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