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새벽 세시
나는 오랫동안 내 고민을 소외시켜왔다.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주위 사람들에 비하면 내 고민 따위는 언제나 하찮기 때문이다. (몇해 전 유행했던) 이삼십대가 표상하는 헬조선이니 칠포세대니 하는 세계는 적어도 나를 둘러싼 환경에는 직접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노력과는 별개로 선천적으로 주어진 조건이 이미 존재한다. 자립은 여전히 내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현재 나는 '생존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다. 또 나는 매년 작업실을 옮겨다녀야 하는 대부분의 젊은 예술가들과는 달리 안정적인 공간이 주어져 있다. 물론 내가 노력해서 얻어낸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나는 꽤 괜찮은 수저를 물고 태어난 배부른 놈인 것이다. 이런 내가 고민이라니?
이런 환경에 놓인 나는 감히 괴롭거나 고민하거나 우울해서는 안 된다, 아니 적어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만한 것은 절대로 못 된다, 라는 생각이 최근 몇년동안 나를 지배해왔다. 말이 좋아서 화가니 감독이니 흉내내고 있는 것이지, 솔직히 이런 환경이 아니었으면 진즉 때려쳤을지도 모른다. '팔자좋게 예술이나 하고 있네', 라는 말이 삶을 담보로 치열하게 작업하는 다른 작가들에게는 무례한 표현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스스로도 반박할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한다. 낯선 자리에서 창작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 생계유지의 힘듦을 다 아는듯이 바라보는 상대방의 시선에, 그에 상응하는 표정과 태도를 연기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가증스러웠던가.
냉정하게 말하자면 내 고민, 입장같은 것은 사회적 발언권이 없는 것이다. 항상 부채의식과 일종의 죄책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것, 이라는 불가능한 명제를 스스로 각인시킬수록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를 점점 소외시켜왔던 것 같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다
이게 요즘 내 하찮고 배부른 고민이다. 아니 그냥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거지 누군 매일 재미있고 내일이 기대되나? 라는 반문이 메아리처럼 귓속에 울린다. 그럼 나는 또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게 된다. 오지은의 에세이집, <익숙한 새벽 세시>를 읽고 그녀의 글에 상당부분 공감했고, 아니 그럼 나도 내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 라는 뽕을 맞지 않았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다. 이십대에는 가슴 속에 항상 뜨거운 것이 있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긍정이 있었다. 지금은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최승자 시인의 표현대로 '개 같은 가을'이 잠시 왔을 뿐인가.
꿈을 꾸었다. 오락실 농구게임기가 눈 앞에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사방이 검은 천으로 가로막혀 있다. 오백원을 넣자 농구공들이 흘러내려온다. 골대를 향해 슛을 쏘는데 골대가 부러져버렸다. 당황한 나머지 부러진 골대를 한 손에 감싸안고 나머지 손으로 농구공들을 허겁지겁 쳐 넣었다. 깜깜한 방 안에서 한참을 그렇게 땀을 흘리다가 끝나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점수판을 올려다보았다. 0점이었다.
오지은 말대로 어느순간 청춘이 빠져나가버린 것일까? 무엇에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누구나 결국에는 도착하게 될 회색 대륙에 나도 가까워지고 있는 것일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야하는 시기가 온 것일까? 루시드 폴의 '사람들은 즐겁다' 가 자꾸 생각나는 계절이다. 요즘 새롭게 시작한 일들이 있다. 14년만에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고, 새로운 독서모임에 가입했다. 또 내년 초에 소소한 개인전을 하나 잡았다. 새로운 일들에서 새로운 마음들이 태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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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도 어느새 그 대륙에 도착해버렸다. '야 뭐 재미있는 거 없냐'의 세계. 운이 좋다면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다다르게 된다. 이 회색 대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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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떨어져 있으면 이런저런 것들도 떨어져서 볼 수 있다. 작년을 되돌아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진짜 섭섭했다, 싶은 것들이 있다. 용기를 내어 와, 섭섭했다! 하고 생각하기로 한다. 괜찮은 척하지 않고 그쪽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쪽이 발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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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많은 여행책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분명 당신도 나처럼 다시 허우적거리고 있을 텐데, 거기에 대해 써준다면 정말 열심히 읽을 텐데. 사람들은 듣기 싫은 걸까. 애당초 우리에게 허우적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누가 어른 세계의 기밀을 좀 폭로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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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취한 사람이 좋다. 모두가 항상 취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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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음악을 듣는 당신께 - 당신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잊고 받아들이고 때로는 기억을 왜곡하고, 묻고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음악을 어쩌면 나의 음악을 사용할 것이다. / 당신은 달라질 것이다. 그래야 하니까. 음악도 언젠가부터 다르게 들릴 것이다. 가장 당신을 뜨겁게 위로해줬던 노래가 말도 안 되게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다. 당신은 다음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 그때가 온다면 나를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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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내가 한계를 넘을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다. 그런 시도는 내 어딘가를 부수고 지나갔다. 대신 작업의 최상급은 한계 근처에 닿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추측은 이렇다. 일단 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지름의 평균 길이를 파악해두는 것도 중요하다. 원을 넓히는 것보다 모양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이 끝나면 파고들어가야 한다. 내 모양대로. 물론 쥐뿔 재미없고 절망의 연속이지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에 꾸역꾸역 하고 있다. 남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지은의 익숙한 새벽 3시는 노래는 들어보았지만 읽어보진 않았네요. 저도 새벽 3시가 익숙한 사람이니 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담백하고 담담한 내용이 들어있어서 부담없이 읽기 좋습니다.
청춘이라고 생각하면 아직 청춘입니다. ㅎㅎㅎ
어떤 개인전일지 궁금하네요. ^^
네 청춘 중에 청춘의 시기죠 밖에서 바라보면요 ㅎㅎ 개인전은 사진과 영상 전시가 될 것 같습니다.
와~~~ 사진과 영상이라니... 멋지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