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생각#5] 무엇이 사람을 일하게 하는가

in #kr7 years ago (edited)

사람은 일을 하며 산다. 돈을 버는 일도 하고 돈을 쓰는 일도 한다. 극도의 금수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 살아간다. 대개의 경우 돈을 버는 일이 쓰는 일보다 어렵기 때문에, 오늘은 좀 어려운 것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돈을 버는 건 어렵다. 땅 파서 돈이 나오면 참 좋으련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돈을 벌었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서 돈을 가져왔다는 뜻이다. 도둑질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번 돈은 다른 사람의 지불로 인해 얻어진다는 얘기다. 일에 따라 정말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서 돈을 가져오는 게' 직접적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러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이런 연결고리를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내가 처음 돈을 번 일은 과외였다. 그 전에 대회에서 받은 자잘항 상금이나 상품들도 있었지만 그건 노동을 해서 번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니 논외로 둔다. 과외를 하면서 참 돈을 번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과외는 정말 쉽게 돈을 버는 일 중 하나가 분명하다. 그렇지만 한참 어린 학생이 순 억지인 떼를 쓰고(그 아이는 본인 집에 돈이 많고 자신이 나를 고용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거기에 내가 큰 소리 칠 수 없는 상황을 느끼며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가져오는 건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로 과외 말고 다른 일들을 많이 경험했고, 지금도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일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어서, 지금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 이게 나중에 큰 도움이 될 지도 모르니까, 일을 하면서 내가 얻는 게 많아서 등. 지금 언급히지 않은 수 많은 이유들이 더 존재한다. 즉, 사람은 돈만을 위해 일하는 건 아니다.

돈을 더 많이 주면 과연 더 열심히 일할까? 영향이 없진 않겠지만 돈을 더 많이 준만큼 비례해서 더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건 환상이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일하는 데는 돈 말고 다른 이유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최저임금 인상으로 한창 얘기가 많은데, 사실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 생산성 향상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보상을 보장해주자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하한을 법적으로 정해버리면, 누가 그만한 가치를 제공하려고 할까? 자기가 받는 돈보다 덜 일해도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을텐데. 게다가 사실 기업입장에서 해고도 어려우니 최저임금 근처의 급여를 받는 사람들은 생산성을 올릴 동기부여가 부족하다. 최저임금은 장기적으로 계속 오를 것이고, 현실성 있는 수준에서 인상해나가는 것에 동의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시 무엇이 일을 하게 만드는지로 돌아가보자.

최저의 급여를 유지해주는, 한 번 고용되면 해고도 잘 되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 일을 하는 이유를 여전히 '돈'으로 제시하려고 하면 안된다. 아까 봤든 돈은 사람을 조금밖에 움직이지 못한다.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배부르고 등 따시게, 건강하게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은 것 아닌가? 일을 하면서 돈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거기서 번 돈으로 남은 시간에 즐기며 살겠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런 얘기는 고등학생들이 자주 듣는 얘기인 '대학가면 살도 빠지고 이성친구도 다 생기니까 지금은 공부만 해! 대학 가기 전까지는 다 참아. 대학가면 다 할 수 있으니까!'와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대학에 가본 사람들은 고3때 들었던 저 말이 얼마나 허상이었는지 알 것이다.

지금 일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그 얘기는 맞는 말이다. 나중으로 미룰지 말지를 결정하는 내 나름의 규칙이 있다. '할인율'이다. 미래의 가치는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할인된다. 지금 은행에 돈을 넣으면 미래에 이자가 붙는 것을 거꾸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모든 미래 가치는 할인되기 때문에 지금 즐거운 일을 미루는 것이 진짜 옳은지 고민해봐야 한다. 나는 할인율을 꽤 크게 잡기 때문에 오늘의 행복과 즐거움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일을 하면 돈을 받는 사람이 있고 주는 사람이 있다. 돈을 주는 사람은 직원에게 돈을 많이 줄 궁리를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직원이 일할 맛이 날 수 있을지 궁리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직원이 일하기 좋은, 일하면서 즐거운 회사가 될 지 고민해야 한다. 돈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그만큼의 가치있는 일을 해주고 있는지 늘 생각해야 한다. 법으로 정해진 임금라고 해도 그만큼의 가치를 돌려주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돈을 벌 수 없다. 자신을 고용했던 회사가 망해버릴테니 말이다.

가끔 돈이면 다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세상엔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참 많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도 돈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 중 하나이다. 일을 하다는 것은 나를 움직인다는 뜻이고, 따라서 일하게 만든다는 건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일이다.

image

Sort:  

Looks great and looks like a lot of fun.

@tangerine

맞습니다. 근시안적인 태도를 버리고 미래를 보아야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동에 대한 인식을 고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 시점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일의 본질에 대해 멋지게 잘 쓰셨네요... 잘 읽고 갑니다~~

람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 역시 동감합니다. 오히려 연봉의 높고 낮음이 정말 내 업무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ㅎㅎ

읽어주셔서

Coin Marketplace

STEEM 0.21
TRX 0.20
JST 0.033
BTC 94090.69
ETH 3092.78
USDT 1.00
SBD 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