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생각#10] 왼손으로 하는 일

in #kr7 years ago

잠들기 전 20분정도 피아노 연습을 했다. 쉬운 곡이어도 여러번 연습해야 악보가 손과 눈에 익어 매끄럽게 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디즈니 ost를 연습하고 있는데 디즈니 음악은 언제 들어도 참 좋다.

아직 피아노 실력이 모자라서 늘 악보집을 살 때는 '쉬운 버전'을 구입한다. 원곡의 풍성함은 없지만 익숙한 선율을 연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쉬운 악보집은 화음보다는 주멜로디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비교적 손가락도 쉬운 편이다. 특히 반주를 넣는 왼손을 간단하게 표현한다. 20분 정도 피아노 연습을 했지만 만족스럽게 처음부터 끝까지 친 적이 없다. 중간에 한 번씩은 버벅였다. 아직 연습이 부족한 탓에 손가락이 한 번에 제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짧은 피아노 연습을 마치고 잠들기 전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있다. 왼손이 저릿하다.

나는 오른손잡이다. 그리고 오른손과 왼손의 능력차이가 많이 난다. 오른손이 왼손보다 훨씬 힘이 세다. 손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오른쪽 몸을 더 잘 사용한다. 오른팔로 되는 춤 동잘을 왼팔로는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왼손은 나에게 '서툰 일'이다. 왼손으로 하면 뭐든지 서툴다. 병뚜껑을 여는 일, 물건을 집는 일처럼 간단한 일마저도 오른손처럼 능숙하지 못하다. 늘 오른손을 사용하기 때문에 내가 서툴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할 뿐이다. 피아노는 양손을 모두 사용해서 연주하는 악기이다. 그렇다보니 스스로의 서툰 점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그 증거가 저릿한 왼손이다.

익숙하면 무뎌진다.

오른손으로 하는 일은 힘들지 않다. 그렇다고 오른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잘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오른손을 사용하는 게 익숙해서 불편함을 못 느낄 뿐이다. 무뎌지다보면 뭐가 잘하는 것이고 뭐가 못하는 것인지도 금방 잊게 된다. 내가 오른손이라고 해서 피아노를 얼마나 잘 치겠는가. 이 손도 잘 못친다. 그저 건반을 누르는 게 조금 더 수월할 뿐.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서툰 왼손이 있다. 덕분에 나의 모자람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비단 피아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익숙함 속에서 무뎌지는 칼날을 날카롭게 유지하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뭐든지 서툰 왼손 덕분에 분명히 내가 서툰(그렇지만 익숙해서 잊어버린) 것들을 다시금 기억해낼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이렇게 시간 차이 없이 2개의 글을 자주 올리지 않는데 자기 전 스친 생각을 기록하고 싶어 본의 아니게 피드를 오염시켜 죄송합니다.
image

Sort:  

글은 쓰고 싶을 때 그냥 막 써야죠. 그러다 보면 좋은 글들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

ㅎㅎ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디즈니 ost중에서 알라딘 주제곡은 아직 들어도 너무 좋은것 같아요^^

서툴다는 건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거니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피아노를 치신다니 부럽네요. 저도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는데.
글 잘 읽었습니다. :)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모자란점을 알수 있는건 좋은거죠

서툰손이 있어서 모자란점을 쉽게 느낄수 있다는 점도 좋은거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8
TRX 0.16
JST 0.029
BTC 60830.20
ETH 2393.05
USDT 1.00
SBD 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