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단상] 의리, 이해관계, 그리고 고양이 밥

in #kr5 years ago (edited)

사람들과의 관계는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반강제적(?) 관계가 아니라면 대개는 이해관계이기 마련이죠. '배신'이니 '의리'니 하는 말들도 처음에 맺어지는 관계의 조건이 바뀌어도 그 관계를 유지하자는 약속에서 나온 말일겁니다.

이득이 되는 관계이면서도 안만나게 되는건 사실 그 이득만큼의 불편함이 있기 때문일겁니다. 다시 말해서 얻을 것은 있지만 내게 편하고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거죠. 뭐랄까 생존하는데 의지가 된다는 것, 감성적으로는 끌리지 않는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이의 미묘한 갈등 말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관계가 이해관계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기만 하면 이 문제도 역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금방 느끼게 됩니다. 아울러 누군가에게 그게 의리나 배신이라는 가치를 들이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죠.

물론 사회통념상으로는 이해보다는 의리가 우선이기에 그 미묘한 차이를 아슬아슬 하지만 능숙하게 비껴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말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지만, 그들이너무 약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우리 커뮤니티에서 키우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습니다. 어느날 흰양말을 신고 반달가슴곰 처럼 가슴에 흰털, 금빛 눈동자에 털이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색으로 덮힌 길거리냥이라고는 믿기 힘든 아주 예쁜 새끼 고양이었는데요. 강아지들처럼 사람도 잘 따르곤 했습니다. 까맣다고 이름도 '담'입니다. 담은 태국어로 까만색이란 뜻이죠. 저는 사실 동물을 아주 싫어합니다. 왠만해선 만지지도 않고 생활공간에서 함께 하는건 더더욱 별로입니다. 키우는 사람들에게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내기 싫어서 한 번씩 말을 걸긴 하지만 딱 그 때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까만 담이는 너무 예뻐서 볼 때마다 만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담이가 어느날 새끼를 낳았습니다. 네 마리 중 숫컷 두 마리는 사회로 진출(?) 해 버리고 암컷 두 마리가 남았는데요. 둘 모두 엄마보다 한참 못생겼습니다. 그 둘 중 한마리는 겁이 너무 많아서 얼굴 보기가 힘들지만 한 마리는 늘 사방으로 돌아 다니는데요 자꾸 보니까 정이 들어 그런지 아주 못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담이의 새끼인 얘는 몸이 갈색이라 이름이 '남딴'입니다. 남딴은 태국어로 설탕이란 뜻도 있고 갈색이란 뜻도 있습니다. 눈동자가 너무 동그래서 눈이 타원형이 아니라 원형으로 보이는데 딱 봐도 늘 겁먹어서 놀란 표정입니다. - 물론 사람 기준입니다. - 맨날 봐도 도망가니까 안그래도 동물을 안좋아하는 저는 더 정이 안갑니다.

그런데 남딴이는 늘 아래층에서 밥을 먹는데, 키우는 분들이 위층에도 밥을 갖다 놓았습니다. 남딴이는 아랫층에서도 식사를 하시고 윗층에서도 식사를 하시는데 가끔은 윗층에 밥상이 안차려져 있을 때가 있는데요. 밥달라고 자꾸 우는 겁니다. 그래서 밥을 한 번씩 주기 시작했는데, 제가 밥을 주기도 하니까 통에 밥을 안담아놔서 매번 와서 울곤 합니다. 아무리 안좋아해도 밥은 만인(?)의 권리죠. 뭐 꺼내서 통에 부어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매번 이러고 있습니다.

근데 이 남딴이가 밥을 줄 때만 친하게 굴다가 밥먹고 나면 다시 저를 보면 도망다닙니다. 그게 꼴보기 싫어서 밥을 안준적도 한 번 있긴 합니다. 오늘도 오랜만에 아침을 먹을려고 전자렌지를 돌리고 있는데 제 옆에 와서 막 웁니다. 들여다 보니 아니나다를까 밥이 없네요. 밥을 부어주니까 먹고 또 도망갑니다. 이XX !!!

갑자기 제 생각이 났습니다. 수수라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돕는 이들을 생각하면 셀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감사함을 다 표시하지도 못하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도 이 남딴이란 고양이와 별반 다를게 없습니다. 많은 이들에겐 필요에 의해서 얼굴을 비치다가 그게 해소되고 나면 잘 안찾게 되거든요. 내가 약았다고 생각하는 그 누군가들과도, 또 고양이 남딴이와도 이런 측면에선 다르다고 말 할 수가 없겠군요. 조금은 비겁하고 의리를 못지키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인가요... 아무튼 고양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약았다고 제입으로 말하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고양이 밥을 주다가 이렇게 많은 생각들을 하는 아침입니다. 오늘도 좋은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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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해서 가족도, 친구도 이해관계에 따라 남보다 못한 경우도 많이 생기죠!! ㅎㅎ

많은 이들에겐 필요에 의해서 얼굴을 비치다가 그게 해소되고 나면 잘 안찾게 되거든요.

이게 어쩔수 없는 일 같아요!! 살아보니 저도 느낄때가 많더라구요!!
그냥 이런게 삶이구나... 그러고 살아가야죠!!

그러게 말입니다. 미안한 마음은 미안한 마음이고... 내 삶은 또 삶이고...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그렇게 또 도우면 받은 사람한테 은혜를 갚는거죠 뭐...

사람살이가 모두 이해 관계 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죠.
제 주변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서 조금 행복합니다.

고양이가 시크하네요. ㅋㅋ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jcar 토큰 보팅 요청 하고 갑니다.

“그들에게 감사함을 다 표시하지도 못하죠.”

글쎄요.
그게 ‘약아빠진‘ 의도적인 행동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 한편으로는 ‘무뚝뚝한’ 성격의 탓이거나, ‘표현을 아끼는’ 문화의 탓일 수도 있겠네요.

아내에게 “사랑해” 소리 한번 안 하는 한국의 남정네들처럼 말입니다.

이해가 먼저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의리가 먼저 인 경우가 너무 많죠.

고양이는 무척 독립적인 동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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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사람, 얌체같은 사람들이 얄밉지만 늘 진지하게 고마워한다면 힘들어서 못살 겁니다. 더러 건너 뜀도 나쁘지 않아요.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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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말씀입니다. '건너뛰다...' 딱 상황에 맞는 표현이군요 맘에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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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해관계에 따른 만남.. 깊은 신뢰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정말 소중하네요.

@banguri님의 jcar토큰 보팅선물입니다. ^^

세상을 살아가는데 모두가 겪고 있지요.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고양이의 행동이 부질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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