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를 끌고 지하철을 이용할 때의 어려움

in #kr6 years ago (edited)

저희 집은 차가 없습니다. 결혼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신혼이고, 달달이 주택 전세대출 이자 갚아나가는 것도 버거운 면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희 집처럼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는 집 치고 차가 없는 집이 요즘에는 드문 것 같습니다. 제가 차가 없어서 차 있는 집만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ㅎ 하지만 대중교통에서 3세 미만의 아가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물론 있겠지만 흔치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걷지 못 하는 아기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집은 대출을 받아서라도 차를 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엄마들이 아기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경험하게 되는 어려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지하철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의 가장 큰 어려움은 엘리베이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아기띠에 아기를 품은 채 외출을 하거나 유모차에 아기를 태워서 엄마가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합니다. 아기를 낳은 엄마들은 대체로 뼈가 좋지 않습니다. 골반이나 척추나 무릎이나.. 아기를 낳고 골밀도가 한 번 심하게 떨어지면 아기를 낳기 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이 어렵고 앞서 언급한 부위들에 지병 하나쯤은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희 딸은 11개월 접어들고 있고 지금 몸무게가 10kg 정도 됩니다. 좋지 않은 뼈 상태에 10kg인 아기를 앞에 메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유모차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엘리베이터가 필수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요. 역마다 엘리베이터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기다렸다가 한 번에 타는 것도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경우에는 보통 엘리베이터를 한 번 보내고 다음 것을 탈 때도 많죠.

엘리베이터 앞에서 줄을 길게 늘어선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특히 1호선이 심하죠.. 종로3가 등등..) 아기를 메거나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 배려를 많이 받습니다. 자리를 양보 받거나 유모차가 먼저 내릴 수 있도록 배려 받은 적도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유독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그야말로 전쟁입니다. 새치기 하는 사람도 은근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붐빌 때는 내가 먼저 왔다 하더라도 느긋하게 엘리베이터를 하나 보냅니다. 그 아수라장에서 스트레스 받긴 너무 싫거든요.

새치기를 하거나 배려가 부족한 사람들을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하철이라는 공공시설을 설계할 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없었는지 깨닫게 됐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엘리베이터 수가 절대적으로 적을 뿐만 아니라 환승이라도 한 번 하려고 하면 숨어 있는 엘리베이터를 찾느라 저와 제 아내는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제가 시각적 예민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찾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요.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의 방향 표시가 제대로 돼 있지 않고, 표시돼 있다 하더라도 깨알 같아서 잘 안 보입니다.

예를 들어, 2호선 대림 역에서 7호선 환승을 하려면 개찰구를 통과하여 개찰구 밖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8번 출구로 나옵니다. 그리고 300미터 정도 걸어서 9번 출구 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헤매는 사람이 많았는지 글과 지도로 자세히 설명히 돼 있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저 또한 헤맸고, 왜 이런 식으로 동선을 짜 놓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 힘든 것은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없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5호선 신길에서 내려 1호선으로 환승하려면 보통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눈 씻고 찾아봐도 엘리베이터가 안 보입니다. 아기는 엄마가 들쳐업고 유모차는 제가 들어서 수많은 계단을 올라간 기억이 나네요. 분명히 에스컬레이터에는 유모차 진입금지라고 써 있습니다. 하지만 유모차를 이용하는 엄마들이나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는 상황에서 진입금지라는 말이 어떻게 다가오겠습니까. '밖에 나다니지 마세요'로 밖에 안 들린다는 것입니다. 저는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기가 힘들 때는 그냥 아이를 엄마가 들게 하고 에스컬레이터에 유모차를 싣습니다.

저나 아이 엄마나 아웃도어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둘 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밖으로 잘 돌아다니는 편입니다. 아이와 함께 이동하기에는 그나마 버스보다 지하철이 낫다고 생각하여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데, 아이가 없을 때는 몰랐던 문제들이 눈에 보이네요. 역시 인간은 자기가 직접 경험해 봐야 미처 몰랐던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볼 수 있게 되는가 봅니다.

지하철 같은 국가 기반 시설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매우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장애를 지닌 분들의 이동권이 얼마나 심각하게 저해되고 있는지 유모차 끌고 다니면 온몸으로 체감하게 됩니다. 너다섯 계단뿐이라 작은 경사로 하나만 있으면 쉽게 올라갈 수 있음에도 그 '망할!' 경사로가 없어서 아이가 탄 유모차를 아내와 함께 낑낑거리며 들고 올랐던 기억도 있네요. 아마 부평역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선진국 후진국을 가늠하는 기준 중 하나는 공공시설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작은 배려가 스며들어 있는 정도가 아닐까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어제는 날이 좋아 저희 가족이 다같이 한강에 놀러 갔습니다. 놀러 간 것 자체는 좋았으나 지하철 이동 시 늘 스트레스를 받게 되네요. 스트레스 받느니 차를 사야 되나 고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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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를 끌고 다니면서 장애인의 보행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이 키우는데 배려를 많이 해주는 사회는 아니란 생각이 키울수록 드네요. 전 4호선 많이 이용하는데 삼각지역 엘리베이터도 암호 수준입니다.

아이가 있으시군요. 정말 배려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지하철은 수유할 만한 공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하죠. 있다고 해도 더러워서 이용을 하기가 꺼려지는 곳도 많고요. 삼각지 이용하려면 사전에 검색하고 가야겠어요.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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