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임상심리전문가의 정신장애 이야기 #13] 심상 재구성(Imagery Rescripting)의 과정

in #kr6 years ago (edited)

1880년경 프랑스인 Pierre Janet은 최면술을 통해 외상을 재체험하는 것에 대한 연구를 광범위하게 진행했으며 해리적 정신병리에 대한 종합적이고 임상적인 특징들에 대한 자료를 제공했다. (중략) 그는 단순히 외상을 찾아내고 체험하고 서사적 기억으로 전환하는 것이 증상을 없애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했다. (중략) Janet은 한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 그녀를 오랜 기간 끝에 치료했는데, 그녀는 경미한 정도의 화농성 피부감염질병에 걸린 아이와 같은 침대를 사용한 이후 이 증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Janet은 그녀와 침대를 공유한 친구가 화농성 피부감염질병에 걸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친절하기까지 한 모습을 상상하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그녀가 친구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 상상도 하게 했다. (중략) Janet이 제안했듯 외상기억이 현재 우리가 일컫는 자서전적 기억으로 통합되기 위해서는 외상사건에 대한 재체험과 연령 퇴행기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많은 최면치료가들에 의해 계속적으로 사용되었다[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네요. 원문 가져옵니다. Trauma reliving and age regression continued to be used by hypnotherapists many of whom, like Janet, realized that procedures were needed to integrate the trauma memory into what we now call autobiographical memory.]. - 심상을 활용한 인지치료, 6쪽.

1961년에 발간된 논문에서 John Watkins(1971)는 '정동 가교' 기법(이 책에서는 '정서적 가교'로 표현했다. 제6장 참조)에 대해 설명했다. 내담자는 과거의 기억으로 '건너가기' 위해 현재의 고통스러운 감정에 집중한다. 치료자는 "당신은 아주, 아주, 아주 오랜 옛날로 돌아갑니다. 이 감정을 처음 느꼈던 그때로 말입니다."라고 지시한다. Watkins는 통제하기 힘든 폭식으로 과체중이 된 사례를 예로 들면서, 충족되지 못한 유아기적 욕구들의 확인과 만족이 어떻게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지를 기술했다. 정서 가교 기법을 사용해 시간을 거슬러 가 보았고, 내담자는 아기 침대에 누워 엄지를 물고 싶었으나 '엄마가 쓴맛이 나는 검은 빛깔의 천을 엄지에 묶어 그럴 수 없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치료자는 내담자로 하여금 당시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보상하도록 아기 침대에 누워 엄지를 물게 하였고, 내담자는 15분 정도 그녀가 원치 않을 때까지 엄지를 물었다. 이런 종류의 퇴행은 그녀의 식욕 감소와 체중 감량으로 이어졌다. Mary Watkins(1984)는 재구조화를 위한 다른 기법들을 설명했는데, 가령 여성 내담자에게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아동 성추행자를 밀어내고 자신을 보호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거나 어른이 되어 아이의 손을 잡아 주며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상상을 하게 함으로써 재양육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 같은 책, 7쪽.


note. 이 책에서 심상은 "외부 자극 없이 일어나는 유사-감각적 경험(혹은 그 결과)를 통칭"한다고 정의되고 있습니다만, 일단은 '상상' 정도의 의미를 떠올리시며 읽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심상을 치료적 도구로 본격 활용한 인물은 위에 인용해 놓았듯이 20세기 초반 Janet였을 것입니다. 첫 번째로 언급한 사례가 Janet의 치료 사례입니다. 화농성 피부감염질병에 관한 부정적인 심상을 긍정적인 심상(화농성 피부감염질병에 걸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친절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대체하여 심리적 불편감을 완화시키고, 대체된 심상에 적극적으로 노출(얼굴을 쓰다듬는 상상)시킴으로써 일종의 둔감화(desensitization)를 감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게 됐는데요. 심상을 통해 전환장애를 치료한 사례라고 여겨집니다.

두 번째로 가져온 John Watkins의 사례 역시 심상을 통해 현재 고통스러운 감정과 연관되는 기억으로 건너가 충족되지 못한 무의식적 욕구를 보상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폭식증이 치료됐습니다.

매우 드라마틱하긴 하지만 이 두 사례가 심리치료에서 심상이 얼마나 파워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적절한 예 같아서 인용해 보았습니다.

Mary Watkins의 사례는 제가 관심 있어 하는 Arntz와 Weertman의 심상 재구성 프로토콜과 가장 비슷합니다. 아동기 성폭행뿐만 아니라 PTSD 생존자를 대상으로 하는 심상 재구성의 일반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듯한데요.

Arntz와 Weertman의 심상 재구성 절차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 단계에서 내담자는 아동의 관점에서 그 기억을 재경험한다.
  2. 다음 단계에서는 성인의 관점에서 그 기억을 재경험하는데, 성인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고 개입할 수 있다. 사건이 극단적으로 외상적이면 내담자는 재구성에 들어가기 전에 외상 경험의 아주 작은 부분만 재경험하도록 요청받는다.
  3. 세 번째 단계에서는 내담자가 다시 아동기 관점에서 그 사건을 재경험한다(성인기 자기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개입을 경험). 이때 아동기 자기는 어떤 일이 더 일어났으면 좋겠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받고 원하는 것을 말한다. - 이상의 절차는 같은책, 193쪽에서 발췌함.

Mary Watkins의 사례의 경우, 심상을 통해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비롯한 과거 외상 사건을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게 합니다. 이후 심상 안에서 '현재의 내(즉 성인인 나)'가 아동 성추행자의 행동을 저지한다거나, '과거의 나(즉 아동인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바라보며 '과거의 나'에게 필요해 보이는 어떤 도움(아이의 손을 잡아주며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말함)이라도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심상 재구성 과정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치료효과를 낳게 되는데, 그 중 한 가지 경로가 외상 경험 이후 부정적인 방향으로 뒤틀려진 자기이미지를 재평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이 때의 '외상'은 DSM-5에서 규정하고 있는 PTSD의 '외상' 경험보다 포괄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폭력 생존자들은 자신이 더렵혀졌을 뿐만 아니라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이미지를 갖기 쉬운데요. 심상 재구성 후 이러한 부정적 자기이미지가 보다 온건하고 현실적인 자기이미지로 변화될 수 있음이 많은 연구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입증돼 왔습니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살펴보면 이해가 더 잘 되실 것입니다. 심상 재구성의 3단계를 따르고 있진 않지만 최신화된 관점으로 기억을 업데이트한다는 점에서, 이 사례 역시 심상 재구성에 포함된다 할 수 있겠습니다.

사회공포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존은 자신은 흉칙하고 다른 사람이 좋아할 만하지 않으며, 미성숙해 보인다고 믿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늘 그에게 따지고, 어느 누구도 그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다. 이러한 신념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는 그가 10대였을 때 친구들이 마약을 하도록 강요했지만, 압박에 넘어가지 않아서 친구들로부터 왕따당한 경험과 관련이 있었다. 소크라테스식 질문을 해본 결과, 그를 왕따시킨 소년들은 성인이 된 후 '실패자'가 되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판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존은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배우자도 있었으며, 가족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 최신화된 관점을 그가 성인이 돼서 다시 옛 친구들을 만나는 이미지 속에 통합시켰다. 그들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은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결정해야만 했다. 내담자가 이것을 심상으로 탐색했을 때, 자신이 바로 모든 사람들이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들의 가족조차도 친구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존재였다. - 같은 책, 195쪽.

기억은 일종의 서사입니다. 이야기죠.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에서 사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죠. 허구이고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적응적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면 그걸로 족합니다.

심상 재구성은 어떻게 보면 기억이라는 이야기를 새롭게 고쳐 쓰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동인 나(혹은 과거의 나)와 성인인 나(혹은 현재의 나)를 주인공으로 하여 다양한 상황, 행동, 등장인물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미 발생한 일은 바꿀 수 없지만 발생한 일에 관한 이야기는 새롭게 고쳐쓸 수가 있으니 가급적 상황이나 행동이나 등장인물들을 내게 이로운 방향으로 잘 활용하여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재구성(rescript)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야기가 재구성되면 그간 나를 괴롭혀 왔던 기억들, 감정들, 생각들, 이미지들, 꿈들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죠. 이러한 메커니즘은 PTSD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애에 걸쳐 통용됩니다. 정신장애를 지니지 않은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활용가능성이 높죠. 제가 심상 재구성에 주목해 온 이유입니다.

2018.06.28 13:04 최종 수정

Sort:  

아마 내용이 어려워서 쉽사리 다들 답변 못 다는 듯요~ 이해하세요 ㅋ

무플방지 감사합니다 ㅋ

안녕하세요. 이번에 스팀잇 시작하게 된 초보 스티머 @Heeingu 입니다~! 댓글에서 보고 들어왔어요 ^^

저는 책과 강아지와 일상을 블로깅하려고 하는 뉴비입니다.. ㅎㅎ

팔로우와 보팅할게요!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책 좋아하시는군요. 반갑습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8
TRX 0.13
JST 0.029
BTC 57946.22
ETH 3059.94
USDT 1.00
SBD 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