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 층간소음의 가장 큰 문제는 아파트 건설사의 문제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in #kr7 years ago

스팀잇에 올라온 층간소음을 둘러싼 두 가지 시선에 대한 글을 읽고 여러 생각을 해봅니다.

일단 저는 현재 층간소음에 극심히 시달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희 윗집에 사시는 분께서는 새벽 5시 무렵 진공청소기를 돌리며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십니다.

게다가 제방 위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윗집 고등학생 아들은 밤 11시 무렵만 되면 방에서 헬스를 하는듯 뜀을 뛰고 덤벨을 떨어뜨리는 듯한 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새벽 3시까지 잠도 자지 않고 책상의자를 끄는 소리를 냅니다. (아마 게임을 하는 것이겠죠.)

무엇보다 일주일에 2~3번 마치 목공소를 방불케하는 것처럼 망치질 소리가 납니다. (못을 박는 수준을 넘어 정말 때려부수는 소리가 납니다.)

이 집에 이사온 지는 2년 정도 돼가는데 그 전에 이 집에 사시던 분이 저희에게 집을 넘기며 "시댁이 마련해준 집에 가느라 판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엔 정말 그 이유 때문인 줄 알았죠. 그런데 이사온 지 석달 정도가 지나면서 이런 괜찮은 집(객관적으로 집구조와 주변시설이 정말 좋습니다)을 구태여 나갈까 했던 의심이 해소됐습니다.

밤마다 집안을 울리는 각종 소음 때문에 갓난아기를 키울 수 없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어른도 깨는 마당에 갓난아기가 잠이 제대로 들 수 있었을까요?

결국 참다못한 우리 가족은 지난해 아파트 관리소와 경비원분들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윗집의 행동은 가관도 아니었습니다. 경비원이 초인종을 누르자 갑자기 집안 불을 끄고 없는 척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곤 얼마 지나지않아 보란듯이 소음이 시작됩니다. (이걸 어떻게 알았냐면 한 분은 아파트 밖에 또 한 분은 그 집 현관 앞에 계셨습니다.)

한 번은 새벽 4시가 넘었는데도 위층을 소음이 너무 심각해 화가 머리 끝까지 났습니다. 그래서 포털사이트에 나와있는 층간소음 민원신청 방법을 등을 찾아 녹음도 하고 그랬는데 사실상 처벌이 힘들다고 해서 포기했습니다.

윗집에 올라가 따질까도 했지만 뉴스에 나온 층간소음 칼부림 때문에 그냥 참고 삽니다. 분을 이기지 못한 제 동생은 밤마다 층간소음 복수하는 법을 폭풍검색하며 씩씩댑니다. 결국 이어폰을 꽂고 자느라 청력이 손상돼 병원도 다녔습니다.

이런 얘기를 주변에 하면 100명 중 99명은 윗집이 무개념이라며 그냥 이사가라고 하십니다. 사실 층간소음만 떼서 보면 정말 좋은 집인데요. 어렸을 때 아버지 회사 때문에 이사를 5~6번 다닌 저로서는 이 집에 정착하고픈 마음이 큽니다.

이와 관련 층간소음 문제에 대해 개인의 탓을 하기에 앞서 아파트 건설사 비리 문제부터 뿌리뽑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정말 공감하는 바입니다.

애초에 방에서 냉장고와 티비를 떨어뜨려도 아랫집에 아무 느낌도 안나게 지었더라면 층간소음 따윈 문제로 부상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보다 더 후지고 낡은 아파트와 빌라에서 살았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윗집에 초등학생 아들만 3명인 집 밑에 살았을 때도 지금보다 괴롭거나 화가 나진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분께선 바닥에 매트릭스를 까는 등 최선의 노력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뛰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불가항력적인 일입니다. 요즘 같은 흉흉한 세상에 놀이터 나가라는 것도 솔직히 그렇잖아요? 놀곳이 집밖에 없는 아이들을 이해 못하는 게 아닙니다.

애초에 집을 잘 지으면 좋죠. 건설비리 해결되면 바랄 게 없습니다. 실제로 최근에 지어지는 신형 아파트나 빌라는 층간소음 방지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도 관련법을 발의한 것으로 알고 있구요.

문제는 이미 지어진 건물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건설비리 고발하고 시정조치 취하면 좋죠. 이는 장기적으로 꼭 이뤄져야 할 부분이지만 당장 해결되기엔 조금 먼 미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지난한 싸움이 이어질 것이고 그 순간에도 층간소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겠죠.

구조적 문제는 그것대로 개인적 문제는 또 그것대로 함께 투트랙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불가항력적 소음에 화를 내는 게 아닙니다. 충분히 조심할 수 있는 부분인데도 '그냥 내집에서 내맘대로 하지도 못하나?'하며 아무런 의식없이 내는 소음, 타인의 불편함에 무감각한 태도에 화가 나는 것이지요.

새벽에 집에 들어오면 가족들 깰까봐 불도 안켜고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들어온 경험 혹시 있으신가요? 가족끼리도 이렇게 조심하며 예의를 차리는 데 하물며 모르는 남한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제 사연은 매우 극단적인 층간소음의 예시일 수 있습니다. 진짜 조심하는 데도, 이 정도 움직임에도 소음이 나나? 싶은 수준 때문에 층간소음으로 오해를 받으시는 분들은 충분히 억울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 윗집은 솔직히 그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층간소음 때문에 하루하루 피가 말라가는 입장에서 구조적 문제만 탓하기엔 조금 울컥한 부분이 있어 막 적다보니 길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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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커다란 복중에 하나입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만드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군요. 음.....
좋은 하루 보내세요.

위로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정말 윗집분들만 아니면 아주 살기 좋은 집과 동네인데,, 저분들 때문에 이사가자니 괜히 지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하고 그러네요.. 대개의 경우 저 수준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ㅠㅠ

하루하루가 스트레스받으시겠어요 동생분귀는 다 나으셨나요?? 층간소음문제가 얼른 좋은방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네요. 이사가라 윗층사람들이여!!!!!

감사합니다. 제 동생은 심히 진지하게 천장에 스피커를 대고 '끝까지 들으면 죽는 음악'이라고 불리는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의 '미궁'을 24시간 틀어놓을까 고민하더라구요..그러다 네가 죽으면 어떡하냐고 말렸습니다....ㅠㅠ

그분들고 알고 있으면서 그러니까 더 얄밉네요ㅜㅜ

사실 층간소음 자체보다 그게 더 화가 나는 부분이죠. 아랫집이 고통받는다는 사실 자체를 아예 신경 안쓰는 무신경함... 아랫집이라고 무조건 화만 내는 건 아니거든요. 상황 봐가면서 서로 타협하고 그러면 대개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좋은 게 좋은거니까요. 근데 아예 모르는 척하니까 더 화가 나는 거죠ㅠㅠ

집 마련할때 미리 지내 보고 갈 수도 없고 참 이웃 잘 못만나 고생이 많으십니다~ 어른도 어른이지만 아이가 많이 걱정이 됩니다~좋은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길 바랍니다~

아예 소통을 안하려고 하셔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요샌 거의 반포기 상태로 지내거든요. 그냥 신경 끄려고 하는데 한번씩 욱할 때가 있네요ㅠㅠ

날이 춥네요^^
그래도 맘은 따뜻한 하루가 되시길~

늘 감사드립니다ㅎ 오늘 코인 분석글 잘 읽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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