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리와 함께 떠나는 역사 여행- [대저 수문]울나라 최초

수문 위 하늘다리에서 바라보는 가깝고도 먼 동쪽 마을의 풍경은 사라진 갈대밭에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 빌딩의 숲.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가듯이 강물은 말도 없이 묵묵히 가야 할 길을 가고있다. 그리고 그 곳에 우뚝 선 수문은 역사의 흐름을 오롯이 간직한 채 꿋꿋이 서 있다.
[수문 반대쪽은 화명 신도시입니다.]-부산시 북구. [대동-화명대교]
"여기서부터 [ ]부분 객관적 해설은 펌글입니다."
[대저수문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낙동강 본류인서 낙동강 입구를 막아서 농업용수로 쓰도록 강물을 유입하는 취수문으로 만들었다. 하류에는 염도 높은 바닷물 유입을 차단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하구 둑이 된 녹산수문을 만들어 농업용수를 확보하였으며, 낙동강 삼각주를 김해평야로 변화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강폭이 50여m에 불과 하던 지류인 동 낙동강을 확장하고, 양쪽에 큰 둑을 쌓아 직선화해서 본류로 만들어, 오늘의 낙동강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것이 낙동강 하류에서 삼차 강으로 갈라져 흐르는 물을 하나의 강으로 크게 모아 흐름을 곧게 하는 일천식(一川式) 직강공사인데 동낙동강의 구포 둑과 대저 둑을 높이 쌓고 강의 주류를 동 낙동강으로 돌려 강의 폭을 넓게 해줌으로 삼랑진에서 월당진 나루까지 강폭이 좁아 높아지는 수위를 하류직강공사로 빨리 흘려보내 소화시켜 주는 것으로 홍수를 막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1934년에 강 주류 폭의 확장과 튼튼한 제방으로 일천식 직강화하고서 낙동강은 분기점에 대저수문을 만들어 강물을 유입 조절하고 바다입구 쪽엔 녹산수문을 만들어 짠 바닷물의 유입을 막아줌으로 서 낙동강을 저수 강으로 만들어 양질의 농업용수를 확보하도록 약 5년간에 걸친 치수공사로 그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수문은 1934년에 설치하였으며, 총길이=16m, 높이=7m, 수문=3련이고, 몽리면적은 10.959ha이며 수문에 연결된 접속도로는 대저~김해 대동 간 지방도로이다.
설치목적은 농업용수를 취수조절하는 수문으로 근래까지 그 역할을 다하였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자 수문이 노후 되어 1994년 12월 31일부터 1997년 11월 22일까지 3년 간에 걸친 보수공사를 거쳐서 지금의 수문으로 재설치 하였다.]

어린 시절 시메거리(옛, 대저수문 일대를 지칭하는 말) 대저수문으로 가는 소풍날의 여정은 즐거운 행군이었다. 비포장길 머나먼 길의 끝에는 따스한 어머님 품과 같은 낙동강이 어린 우리들을 품어 주었고 수문은 더 이상의 행군을 막아주는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했다.
지금은 잘 닦인 아스팔트 길을 차들이 질주한다. 대저 둑길 위의 자전거 행렬이 그나마 옛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것 같지만 학교 동무들과 함께 걸어가는 그 소풍날의 추억은 그 무엇으로도 복원할 수 없다. 단지 가슴이 기억하고 감겨진 눈 속에 그 모습이 어렴풋이 보일락 말락한다.


저런 곳이 있었군요. 부산에서 18년을 살았는데, 처음 봅니다. 안가본지 오래돼서 많이 변했더라구요. 을숙도 쪽인가요?
을숙도 반대쪽 ..서낙동강 대저 생태공원 방면입니다.
님, 글 속의 감성이 읽을 수록 장난 아닙니다. 자주 들러겠습니다
에궁! 별말씀을.. ㅎㅎ!
오~~~~~~~~~~~~~~
이런 글 기고 하셨다니요..ㄷㄷ 멋집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simtole님은 다방면으로 지식이 참 많으신듯해요^^ 부럽네요
에궁! 별말씀을.. 깊이 아는 게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죠!!! 격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