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그는 누구인가: 원령공주(1997)下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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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령공주OST-Ashitaka and San


Act4 숲의 신들

아시타카와 타타라 마을 사람들, 그리고 산. 모두 인간으로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숲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도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영화 속에서 그런 동식물을 대표하는 존재가 바로 나고, 모로, 옷코토누시로 비롯되는 숲의 신들이다.

나고신은 내가 죽였어. 마을을 습격해서 어쩔 수 없이 죽였지.

산이 부상을 입은 아시타카를 숲에 데리고 온 다음날, 멧돼지의 수장 옷코토누시가 산과 아시타카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에보시가 숲을 없애기 전에 먼저 인간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옷코토누시 앞에서, 아시타카는 자신이 나고신을 죽였음을 고백한다. 그에게는 마을을 습격해서 어쩔 수 없이 나고신을 죽여야 했던 본인만의 입장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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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옷코토누시에게는 옷코토누시의 입장이 있다. 아시타카에게 사건의 시작이 나고신의 마을 습격이었다면, 옷코토누시에게는 에보시의 자연 파괴가 문제의 발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옷코토누시는 아시타카의 입장을 숲의 신으로서 이해하면서도, 다음번에 만나면 살려두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같은 시각 타타르 마을에서는 ‘숲의 절대자 사슴신의 머리를 구해오라’는 왕명을 받은 지코보가 에보시에게 협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에보시는 에보시 나름대로 사슴신의 피가 문둥병 환자를 낫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기에 지코보의 협상에 응한다. 그러나 들개의 신 모로, 멧돼지의 신 옷코토누시에게도 절대적 존재인 사슴신의 목을 취하려는 행동을 숲이 잠자코 지켜볼 리는 만무했다. 이제 숲과 인간의 대결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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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숲과 인간이 안 싸울 수는 없어? 이제 정말 막을 수 없는 건가. 산도 끌어들일 거야? 산을 놓아줘. 걔는 인간이야.

산은 우리일족의 딸이다. 숲이 살면 산도 살고, 숲이 죽으면 같이 죽는 거다. 그 애의 불행이 쉽게 풀릴 줄 아느냐. 숲을 침범한 인간들이 내 이빨을 피하려고 내던진 아기가 산이다. 산은 인간도 들개도 될 수 없는 가엾고도 사랑스런 내 딸이다. 네가 산을 구원해 줄 거냐?

모르겠어. 하지만 함께 살아갈 순 있어.

그렇게 옷코토누시가 이끄는 멧돼지 무리의 선제공격으로 인간과 숲의 대결이 임박하기 직전에 아시타카는 모로에게 싸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묻는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아무 관계없는 산은 끌어들이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한다. 증오를 더 이상 키우지 말자고 설득한다.

그렇지만 옷코토누시와 아시타카의 대화에서 보듯, 이번에도 결국 입장 차이다. 모로에게 아시타카는 산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낯선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타카는 ‘모르겠어. 하지만 함께 살아갈 순 있어’라고 답한다.

Act5 사슴신

원래대로라면 숲과 인간 둘 중 누군가 하나는 죽어야만 끝나는 게임. 영화 [원령공주]에서 사슴신은 이 파극을 막아주는 숲의 절대자이다. 다른 신들과는 달리 사슴신은 영화 내내 말도 한마디 없고 낮과 밤의 형태가 달라지는 기이한 행동들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숲 속의 모든 존재들에게 삶과 죽음을 부여하는 신이기도 하다. 옷코토누시가 인간들과의 전쟁에서 입은 상처로 인해 재앙신이 됐을 때 그의 생명을 거둔 것이나, 아시타카의 총상을 치료해준 것이 모두 사슴신이 한 행동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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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신이 발자국을 딛고 땔 때마다 식물이 피었다가 시든다. 이는 그가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대사는 한마디 없지만 그런 일련의 행보 속에서 그가 보인 모습은 무언가 심오하다. 아시타카의 총상과 함께 오른 팔의 저주도 풀어 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주의 상처는 일부러 치료해주지 않는다. 저주에 스스로 맞서 싸워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보라는 영화적 장치였을 것이다. 또 사슴신이 자신들을 지켜주고 인간을 벌할 것이라는 옷코토누시의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재앙신이 된 그의 목숨을 거두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까지 사슴신이 인간을 해코지하는 장면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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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신의 모습. [원령공주] 제작 전, 일본의 한 공원에서 사슴을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영화 속 신으로 결정해버렸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심지어 에보시가 기어코 그의 머리를 취했을 때에도 그는 인간만을 벌하지 않는다. 동식물과 인간을 포함한 숲의 모든 존재들을 벌한다. 그조차도 산과 아시타카가 인간을 대표해 사슴신의 목을 다시 바치자, 그들을 바로 용서하고 숲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다.

Act6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답

마지막 사슴신의 희생으로 숲이 다시 되살아나면서 이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암시한다. 마을의 철을 만드는 용광로가 폐허로 변하고 에보시는 한쪽 팔을 잃은 채로 살아남게 되었지만,(영화 후반부에 모로에게 물어 뜯김)어찌된 영문인지 문둥병 환자들이 치유되는 장면이 나온다. 사슴신이 숲을 되돌리는 과정에서 함께 치유된 것으로 보인다. 에보시는 자연화가 되어버린 마을에서, 아시타카와 들개 덕분에 한쪽 팔만 잃고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며 답례를 암시한다. 처음부터 다시 더 나은 마을을 만들어보자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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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숲에서는 비록 옷코토누시와 모로가 죽게 되었지만, 전보다 더 생기 넘치는 자연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된다. 멧돼지와 들개의 남은 일족은 여전히 살아남아 숲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숲과 인간 둘의 입장을 모두 가지면서 인간을 혐오했던 원령공주 산도 아시타카라는 인간에게 마음을 열게 됨으로써 공존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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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타카는 좋아하지만 인간은 용서 못해.

그래도 좋아. 산은 숲에서, 난 타타라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자.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처럼 치밀한 구성을 통해 숲과 인간의 선악 프레임을 걷어내고 오직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메시지만을 부각시키는 것에 성공한다. 상업적인 부분에서도 대성공이었다. 그의 은퇴작이 사상최대의 규모로 제작되었다는 소식에 구름처럼 사람이 몰려들었고, 극장에는 무려 363일 동안 [원령공주]가 상영되었다.

다만 스토리 구성이 당시로써는 익숙하지 않은 불분명한 프레임, 확실하지 않은 결말로 이루어졌기에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극장에서 수작으로 꼽히고 있는 영화들이 선악의 경계가 허물어진 작품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분야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버렸다는 게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의 기원이 주로 아이들을 위한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원령공주]는 너무나 진입장벽이 높은 작품성을 가진 영화였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원령공주]의 그런 단점을 인지하고 이 무렵 10살짜리 딸아이가 감명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장편 애니메이션에서의 은퇴를 번복하고 새로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가장 큰 전성기를 열어젖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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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시리즈

미야자키 하야오, 그는 누구인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편
미야자키 하야오, 그는 누구인가: 원령공주(1997)上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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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정말 어렷을적 첫 작품으로 '이웃집 토토로'를 처음 접했던 순간을 잊을수없다.. 중학시절 친구네 집에서 처음 만난 토토로... 자막도 없이 그냥 화면만 보고 있었지만 이 이야기를 다 이해할수있었던 그 느낌.... 정말 추억 돋네요~ 감사합니다.

이웃집의 토토로도 재밌죠! 오래된만큼 추억도 되살아나구요ㅎㅎ

정말 다시보고 싶어집니다
너무 오래전이라ㅎ

그쵸 20년이나 지나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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