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그는 누구인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편

in #kr7 years ago (edited)

주의: 본 포스팅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음악과 함께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1984년은 일본에게 있어서 이보다는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최대의 호황이 진행되던 때였다. 그런데 이런 역대급 호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 인물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다. 당시 그는 전작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의 흥행에 참패하게 되면서 애니메이션 만드는 일을 그만둘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또한 기존의 회사와 의견도 맞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무렵쯤 지금의 지브리 스튜디오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스즈키 토시오(1984년에는 아니메쥬 편집장)가 애니메이션영화에 필요한 원작을 그려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제안을 수락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영화 제작에 필요한 단행본을 그려나가기 시작했고, 단행본이 어느정도 인기를 끌게 되자 1984년에 장편 애니메이션 한 편을 비로소 극장에 내놓을 수 있었다. 이 영화가 바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전신이 되는 톱크래프트가 내놓은 최초의 애니메이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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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동안 담아왔던 자신의 생각 가운데 중요한 한 축이었던 환경문제를 털어놓는다. 그는 청년시절부터 60년대 일본의 대학가에 불어온 진보적 물결에 힘입어 각종 진보운동을 지지했던 인물이었다. 특히 전후 일본은 원자폭탄과 미나마타 병을 비롯한 각종 문제들로 인해 환경운동의 중요성이 인식되던 시기였다. 때문에 그의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미 청년시절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에서 그는 주인공 나우시카 외에 ‘오무’‘부해’라는 존재를 등장시킨다. 애니메이션 상에서 오무는 정체의 기원이 알려지지 않은 자연 그 자체를 상징하며, 부해는 오무가 퍼트리는 유독성 포자를 의미한다. 작품 줄거리에서 오무가 부해를 퍼트린 최초의 원인은 ‘불의 7일’이라는 기간 동안 인류가 탐욕으로 자연을 송두리째 파괴시킨 것에서 비롯됐다고 언급한다. 오무는 자연이 파괴된 곳에 부해를 보내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작중에서 언급되는 불의 7일이 굉장한 스케일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오무가 해당 범위만큼의 자연정화를 부해로써 해결해야함을 의미하는데, 그 범위는 여러 왕국의 존폐가 걸린 정도의 심각한 수준인 것이 영화 속에서 언급된다. 그리고 영화에서 나우시카가 활약하는 시기는 불의 7일로부터 무려 1000년이 지난 시점이다. 인간의 탐욕이 부른 참사가 결국 부해와의 1000년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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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오무의 모습(왼쪽), 블리자드의 게임 [스타크래프트] 리버의 모습(오른쪽). [스타크래프트]의 리버는 블리자드 측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오무를 보고 영감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부해를 그냥 방치하면 인간이 죽기 때문에 부해를 발견하는 족족 태워야하는 조치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오무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있다. 아예 오무떼가 마을을 직접 공격해서 초토화시키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오무는 자연을 파괴시킨 인류를 공격하고, 인류는 자신들을 공격하는 오무를 미워하게 되는 악순환이 영화 속에서 반복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탐욕은 1000년 후에도 사라지지 않아 왕국간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서방의 토르메키아 왕국이 나우시카가 살고 있는 바람계곡을 점령한 것은 그런 차원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크샤나를 위시한 토르메키아 왕국은 자신들의 기술력을 이용해 바람계곡을 비롯한 나라들을 통일하고 오무를 제거해서 평화를 되찾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또한 토르메키아 왕국의 제후국으로 있는 페지테라는 나라도 토르메키아와 전쟁 중에 있었지만 오무를 제거해야 된다는 생각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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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메키아의 크샤나

나우시카는 토르메키아와 페지테의 평화를 되찾기 위한 방법론이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을 확인하고 큰 실망을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페지테가 새끼 오무를 이용해 토르메키아가 점령하고 있는 바람계곡을 멸망시킬 작전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끼 오무를 상처 입히고 비행선에 태운 뒤 바람계곡 쪽으로 유인하면, 오무 떼들이 신호를 감지하고 새끼 오무가 있는 바람계곡으로 돌격할 것이라는 작전이었다. 나우시카는 작전을 수행하려는 페지테 사람들에게 새끼 오무를 원래 있는 곳으로 데려다 놓으라고 말하지만, 당연히 묵살되고 만다. 그리고 영화는 이제 결말을 향해 달리게 된다.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즈키 토시오를 비롯한 나우시카 팀 동료들은 결말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작품 속의 오무를 죽이고 싶지 않았고, 그의 동료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화의 결말이 명확히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새끼 오무를 대신해 분노한 오무떼 앞에서 나우시카가 희생하는 결말이었다. 물론 극적인 연출을 위해 오무떼가 뒤늦게 이성을 되찾고 나우시카를 되살린 뒤, 바람계곡도 파괴시키지 않는 조건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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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는 대박까지는 아니지만, 차기작을 충분히 만들어 볼 수 있을 만큼의 양호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엔딩 씬의 문제로 인해 일본의 진보인사들에게 군국주의식 결말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된다. 주인공이 큰 뜻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며 희생하는 행위 그 자체가 당시 일본 진보문화계에서는 가미카제를 비롯한 군국주의 사상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중요인물의 희생이라는 극적 장치는 세계 어느 작품에서든 나타나는 경향이지만, 이때 당시에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듯하다. 중요한 건 주체였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 비판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판을 따로 만들어 다른 결말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나중에 들려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본인 스스로가 그런 결말을 그려낸 것에 굉장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영화판 나우시카는 불태워버리고 싶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반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또 다른 한계점을 갖고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환경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였다.

작품 속에서 인간과 자연은 서로 대립하는 존재일 뿐, 그 어느쪽도 타협점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결국 이 역할은 오로지 주인공 한 명에게만 과중되어 종국엔 극단적 결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나우시카를 기점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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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고민에 대한 자신의 해답을 기어코 다음 영화를 통해 밝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지브리 매니아들이 오늘날까지 극찬하는 작품 중 하나인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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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오무 보고 악몽꿨던 기억이 나네요... 덜덜

오무가 좀 괴이한 캐릭터죠 ㅎㅎ 지브리에는 꼭 그런 캐릭터가 하나씩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은 별로 끌리지 않아 잘 안보는데,
미야자키 하야오는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이 달라 보이게 만들었죠^^
좋은 설명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넘 좋아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ㅠㅠ-
아마 이 다음 편부터 제게 익숙한 작품들이 다뤄지겠네요+_+

오 신농님도 미야자키 하야오 좋아하시는군요 ㅎㅎ 이 다음부턴 슬슬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해서 익숙한 작품이 많죠

애니는 자주보진않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유명해서 아네요 ㅋ
좋은글 보팅하고 뉴비라 팔로 남겨요 ㅎ

보팅과 팔로우 감사합니다~

늘 감사한 마음에 기다리고 있는데
저는 왜 늘 선생님의 글을 놓치고 있을까요 ㅠㅠ
저도 일본에니메이션 참 좋아합니다
오늘 알지 못했던 것들을 글을 읽고 배우고 갑니다
다음엔 꼭 글을 올리자마자 제가 봤으면 좋겠습니다^^
늘 조용하고 뜨거운 응원 감사합니다1516600691807.jpg

헉 선생님이라니요! ㅋㅋ ; 좋은 글이라서 보팅했을 뿐인데 마음 속에 계속 담아두고 계시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ㅎㅎ

당연한건데
저도 잊어버릴때가 있답니다^^
돌머리라 ... ㅠ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하나의 문학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또다른 문학 만화(?)인 기생수와 더불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 만화이기도 하죠. 훌륭한 리뷰 항상 감사합니다.

덧붙여 리버가 오무에서 영감을 받았다니 신박하군요 ㅎㅎㅎ

사실 이외에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 파생된 캐릭터들이 많습니다 ㅎㅎ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가운 작품이 보여서 주저없이 들어왔는데 이런 영화 뒷편의 이야기를 잘 모르는 저로서는 무척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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