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본격 취재원 비망록 : 1. 전문가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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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하다 보면 특정 직업군과의 접촉이 참 잦다. 특별한 경로로 알게 된 특종급 취재원들 말고, 일반적으로 꾸준히 전화를 걸게 되고 필진으로 섭외를 하게 되고 그런 직업군 말이다. 크게 분류하자면 전문가와 공무원, 시민단체, 홍보팀 정도 되겠다. 전문가엔 교수가 제일 많다. 공무원은 경찰이나 검찰, 법원, 국회의원실 관계자, 공공기관의 공보담당 등이 있다. 시민단체와 홍보팀은 말 그대로 시민사회와 기업에 소속된 사람들.

나름 올해로 10년째 이 짓을 하다 보니 저렇게 분류만 했는데도 떠오르는 얼굴과 이름이 상당하다.
오늘은 일하다 접하게 된 전문가들과의 기억을 끄적여보겠다.

세련된 분석이나 전문성은 글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이므로 앞으로 적을 글들을 '비망록'이라 해 두자.


1. "나 잘났다" 형

가장 많이 겪는 유형이다. 퉤.
사회부에서 전화를 걸어봤던 A교수는 일단 질문 자체보다 자신을 취재하는 기자의 소속사를 궁금해 했다. 그 뒤 방송이 아니라서 텔레비젼에 내가나왔으면 정말 좋겠는데 그게 안된다는 것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인터뷰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게 아니고 어떤 사안을 다루는 기사에 따옴표 문장으로 한두 줄 들어갈 뿐이라는 걸 알자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비슷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스스로 생각하는 명성을 기자가 몰라보고 감히 취재를 신청하느냐는 식이다. 사회부 초기에 뭣도 모르고 유명한 교수에게 전화해서 한줄 멘트를 부탁했다가 시원한 비웃음을 당했던 기억이 있다. 내 잘못이었다.
사실 신문사에서 전문가에게 취재를 하거나 칼럼 필자로 섭외할 때 어느 정도 레벨에 맞춰줘야 한다. 전문가 취재는 대체로 1. 한줄 멘트 2. 개념 설명 3. 인터뷰 4. 대담 정도로 정리될 것 같다. 원고청탁은 1. 일회성 칼럼과 2. 고정필진 3. 한바닥 제언 정도로 추려보겠다.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교수나 유명 작가 등은 일회성 칼럼을 청탁하면 화를 낼 수 있다. 취재도 한두줄 멘트로 들어가는 건 응해주지 않으며, 개념 설명은 더더욱 안 해준다. (고액의 강의료를 내야 하나요) 이런 분들을 지면에 모시려면 'XXX의 세상만사' 같은 1년짜리 고정칼럼이나 각 분야에서 짱먹는 분들 몇 분을 모시고 대한민국의 앞날을 진단하는 대담, 한 면을 털어버리는 인터뷰를 해야 한다.
이제 몇 년 해봤더니 대충 감 잡고 전화한다. 근데, 아직 가끔 버럭 화를 내는 분이 있다. 둘 중 하나다. 내가 그 분의 밸류를 판단 못했거나, 그 분이 스스로를 너무 고평가 하고 있거나.

2. "내 말 좀 들어줘" 형

최근에 제조업 관련해서 몇 마디 듣고 개념을 좀 잡을 일이 있었다. 끽해야 전문가 한 명 당 약 15분꼴로 통화하면 되는 거라서 마지막 한 명인 B교수에게 전화를 걸며 슬슬 퇴근하려고 짐을 쌌다. 근데 전화를 안 받더라. 내일 통화해야지 하고 퇴근하고 있는데 콜백이 왔다.
이 사람은 전화를 하며 집에 들어갔다. 듣자하니 퇴근하자마자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이런 경우 나는 추운 밖에 있으면 낭패를 본다. 얼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 통화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제조업의 현황과 전망, 대안, 미래를 짚어본 뒤 정책제안을 했다. 건물 로비 안내원에게 눈치가 보여 얼른 버스를 탔다. 아내는 옆에서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통화시간은 1시간 23분이었던가...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인터뷰로 착각을 한 건지 아니면 정말 취재에 충실하게 응하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약간 공통점이 있다면 그런 분들의 이야기는 설명보다는 홍보가 많다. '이런 방법이 있는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단체에서 처음 도입했다' 정도? 두번째 공통점은 아래에 설명할 꿈이 있는 스타일.

3. "난 꿈이 있어요" 형

전문가 본업보다는 다른 데에 꿈이 있는 스타일이다. 이런 분들은 국회에서 종종 본다. 교수인데 정당의 무슨 비상대책위원이나 무슨 특별위원회 위원 혹은 위원장, 특정 대선후보의 정책특보 등으로 활동한다. 나름 제 분야에서 명성이 어느정도 있어서 정치인들이 끌어들인 경우가 많다. 이들 중 매우 성공한 케이스는 정당 비례대표로 배지를 단 경우다. 밀었던 후보가 당대표급이 돼서 공천에 힘을 행사하면 가능하다. 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면 많은 경우 일회용으로 쓰고 버려진다. 당이 비상에서 탈출하면 그도 정당에서 퇴출된다. 그럼 많은 경우 밖에서 무슨 연구소 같은 걸 차려 놓고 정치부 기자들에게 무슨무슨 세미나를 한다고 이메일을 보낸다.

4. 설명, 표현 못하는 케이스

진정한 전문가일 수도 있겠다. 머리에 든 게 많을 텐데 말이나 글을 받아보면 도무지 이게 전문가에게서 나온 게 맞는지 의심되는 스타일. 자신의 분야에 상당한 능력이 있지만 불행히도 그 분야가 교육이나 글쓰기가 아니라서 설명을 잘 못하는 경우가 있고, 전문성 자체가 없는데 전문가라고 불려왔던 경우도 있다. 교수 중엔 전형적인 연구형 교수들이 멘트를 풀어보면 말이 안되고, 글을 받아 보면 안타깝다. 취재 중에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땐 기자 역량이 중요하다. 질문을 잘 해서 최대한 기사가 되는 이야기를 많이 끌어내야 한다. 특히 이과 교수들은 정말 입력한 질문에 관한 답만 기계처럼 정확하게 나오기 때문에 질문을 잘 해야 한다.

5. 자판기 형

요즘 종편을 보면 변호사가 나와서 정치얘기도 하고 정치학 교수가 사회문제 얘기도 하고 아조 닥치는대로 한다. 근데 신문용 멘트를 딸 때도 언제든, 무슨 얘기든 답해주는 교수들이 있다. 특히 사회부 기자들은 그들의 전화번호를 비상용으로 다들 갖고 있을 거다. 심리, 범죄심리학과 교수들 ㅋㅋ TV에서도 많이 나오는 분들이다. K모 교수는 사실 그 분께 물어보기가 좀 거시기한 걸 알면서도 너무 절박해서 전화를 건 적이 있는데 정말 자판기처럼 필요한 멘트를 해줬다. 어떤 교수는 "기사 취지가 뭐죠?"라고 먼저 물어보고 질문에 맞춰서 답을 해 주기도 한다. 사실 참 영양가는 없다.

6. 명강의형

이런 분들 때문에 그래도 기자가 전문가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화를 끊고 나면 해당 분야 지식이 +1되는 느낌을 받는다. 정말 알아먹기 쉽게 개념부터 설명을 좍 한 뒤에 "자 그럼 기사로 돌아가서"라며 질문의 답을 명료하게 던져준다. 만나기는 어렵다. 특히 교수들보다는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 공공기관 연구원이나 공사 등에 TF 팀장 등으로 특별채용된 전문가들 중에 이런 경우를 종종 봤다.


개인적으로 전문가 취재를 참 싫어한다. 옛날 언젯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문가의 따옴표 멘트로 끝이 나야만 기사 답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 무슨 일만 생겼다 하면 '전문가 제언' '전문가 대안' 등을 발제에 넣는 것도 사실 아이디어가 없다는 뜻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후배들은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전문가 멘트를 받는다. 형식적인 질문으로 몇 줄 구걸하는 느낌도 있다. 그렇다고 이 일을 하면서 전문가 취재를 안할 수도 없다. 기사를 떠나서 관련 전문가에게 특정 사안 관련해 설명을 차근차근 들으면 생소한 분야라고 해도 대강 개념이 잡히고 기사 얼개가 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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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는 직업이 정말 만만한 직업이 아닌 것 같습니다. 1,2번은 너무 피곤한데 사실 2번이 제일 힘든 유형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4번은 안타깝고요. 6번같은 분들이 많아야 얻는 것도 있고 취재도 즐거우실 것 같은데.. 왠지 많을 것 같은 느낌은 아니네요. ㅎㅎ

이런글 너무 좋습니다... 본인의 경험에서 나오는 통찰...

견문이 넓어지는 느낌입니다!!

좋은 기사 많이 쓰실거 같네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사람마다 취재하기가 어려울때가 많을거같습니다.
"명강의형" 만나기가어렵다..참 아쉽네요 ~~~
요즘은 "나잘났다형"이 참 많은거 같아요
회사를 다니면서도 많이 느끼고있어요

저는 나름 대형 시공사에 근무하는데요, 건축설계 관계자들을 만날때면... 이런 분위기 느껴집니다. 1,2 번 유형이네요.. 딱...

이럴 때 해주고 싶은말 ...
Oh come on... - You can't keep bragging like that. / 아 진짜... 자꾸 자기자랑 하시면 안돼요.
@dailypro 오늘 영어패턴 이였습니다.

퉤.

뭐 이것만 봐도 어떤 부류인지 ... 역시 기자님이라 딱 한 글자로도 표현이 가능 하시네요~ ㅎㅎ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만, 솔직히 일적인 만남은 별로라는~ ㅋㅋ
그래도 기자님이 취재를 싫어하면 안되죠^^

궁금합니다.
번외에는 다들 뭔가 불편한 형이지만, 그 외의 타입을 @shiho님의 기준으로 순서를 매긴다면 어떻게 되는지..

기자라는 직업도 정말 극한직업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문가 제언이 실린 기사를 많이 봤는데
이런 고충을 겪으며 취재하시는 거였다니
기사를 좀더 따뜻한 눈으로 봐야겠어요!!

아 너무재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특히 4번교수랑 여러번 일해봐서 더 와닿네요 크흡

ㅋㅋㅋㅋㅋ 뭔가 형태마다 노래가 생각나는건.. 착각인가요?

6번 형 전문가들이 많아져야 겠군요. :) 그런데 어느 분야나 잘난척 하는 사람도 있고 사짜도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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