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아닌 척]경주 맛집 2-반도식당

in #kr7 years ago (edited)

나는 국내 여행지에서 맛집을 찾을 때 '맛집'이 아닌 '노포'(老鋪)라는 단어로 검색한다. 수많은 광고성 포스팅 속에 숨은 진짜 맛집을 찾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다. 수십년을 한 자리에서 한 가지 음식을 만들어 다양한 세대의 입맛을 만족시켰던 집에 가면 웬만해선 실망할 일이 없다. 또 '맛집'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노포'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적으며, 그 중에 미식가가 많다.

블로그에서 아무나 맛집이라고 부르는 집들은 어느 지역에 무슨 음식이 뜬다 하면 죄다 그걸 한다. 바닷가에 가면 맛집이라는 곳들이 다 횟집 아니면 조개구이다. 어느 섬에 해물을 먹은 짜장면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 몇 년 뒤 그 섬은 사라지고 짜장면집들만 남는다.

그런 맛집들은 유행이 지나가거나 어떤 사건이라도 생기는 날엔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노포는 그렇지 않다. 유행을 타지 않으며, 적어도 한 사람이 평생을 바친 음식이라 작은 풍파로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보령의 황해원도 그렇다. 너도나도 조개구이를 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식 초창기 형태의 짬뽕을 수십년 간 고집해 왔다. 창업주가 사정이 생겨 가게 문을 닫게 됐을 때 이웃 주민이 비법을 전수받아 명맥을 이었다.

소개할 집을 설명하다 서론이 길어서 하마터면 삼천포로 빠져 보령에서 짬뽕을 먹을 뻔 했지만 본론으로 돌아가자.

  • 반도식당 : 경북 경주시 화랑로 83

'소고기인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노' 하던 시절은 갔다. 이제 소고기도 싼 것부터 비싼 것까지 맛도 원산지도 다양해졌다. 소고기라고 다 같은 소고기가 아니요, 소고기라고 다 맛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경주엔 소고기면 말이 필요없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옛날 식을 고수하며 40여년을 버텨 온 노포가 있다. 이름은 반도식당.

사실 김밥을 먹은 지 3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었다. 자전거를 타긴 했지만 허기가 미각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걷다 보니 경주의 법조타운 옆에 정말 옛날 간판이 붙어있었다. '반도불갈비식당'... 줄은 없었다. 이것 또한 노포의 매력. 인터넷을 보고 찾아온 구름같은 손님보다, 수십년 동안 찾아 온 손님 몇몇이 자녀, 손자를 데리고 와서 먹는다.

들어서는데 옛날 중국집 문에나 걸려있던 발이 세로로 치렁치렁 늘어져 얼굴에 닿았다. 발 너머엔 연탄 연기가 자욱했다. 고작 두 테이블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지난 여름 제주도 유명한 맛집에 연탄불 연기가 가득했는데, "연탄불이라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릴 해서 그냥 돌아나온 기억이 있다. 이 집, 환풍기도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불쾌했던 것이 사실이다.

동그란 옛날 깡통 테이블에 등받이 없는 나무의자. 메뉴는 한우갈비, 한우불고기갈비살, 소금구이갈비살이 각각 1인분 1만 8000원. 뭘 먹겠냐기에 뭘 먹어야 하냐고 반문했더니 갈비살이 주력이니 그걸 먹으라 했는데 우리가 먹은 게 한우갈비인지 소금구이갈비살인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둘인데 3인분이 기본이래서 두 번째로 언짢았다. 그래도 기왕 왔으니 먹어나 보기로 했다. 불 붙은 연탄 한개, 그 위에 가느다란 철사로 만들어진 석쇠 하나가 올라갔다. 파무침과 무 물김치, 좁다란 상춧잎, 마늘과 쌈장이 기본반찬으로 나왔다. 단출했다. 그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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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가 고기를 툭 놓고 갔다. 사실 고기를 본 순간 눈 따가운 연기도, 기본 3인분도 문제가 안 됐다. 깔끔하지 못한 걸 싫어하는 아내도 '이건 진짜다' 싶었던 모양이다. 정말 이건, 진짜다.

진짜 갈비살이다. 뼈에 붙은 고기를 칼로 발라 넓게 펴면 살의 무늬가 연속된 좌우 대칭 형으로 나온다. 고기 바깥 쪽은 새빨갛지만 속은 검붉다. 마블링 같은 건 없다. 살이 위주고 하얀 기름은 살짝살짝 들어가 있다. 보나마나 숙성을 좀 했다는 얘기다. 40년 내공은 좋은 고기를 보는 안목, 그리고 숙성이었을 것이다. 고기에 소금을 조금 던져 놓은 것 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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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불 위에 고기를 한 점 올려 놓자 치이익 소리를 내며 익기 시작했다. 너무 익기 전에 한 번 뒤집고 또 금방 집개로 뼈를 잡아 들어올려 아내의 접시에 대고 붉은 기가 남은 두 점을 잘라 줬다. 잘라내고 남은 뼈대는 마저 익으라고 불가에 놓았다. 고기를 입에 넣은 아내가 할 말을 잃었다. 나도 한 번 입에 넣어 봤다. 입안에 육향이 확 퍼진다. 한 번 씹었더니 육즙이 줄줄 나온다. 입에서 침샘이 폭발한다. 기름 덩어리나 다름없는 1++등급 소고기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마블링을 소고기 맛의 척도로 알고 오랜 시간을 살아 왔다면 이 맛을 봐야 한다. 기름 맛이 고소하다고? 이 고소함을 맛봐야 한다.

고기가 반쯤 사라졌을 때 밥 생각이 났다. 두 공기를 시키면 된장 뚝배기를 하나 불 위에 얹어 준다. 꾸미지 않은 된장국 맛이다. 진하다. 혀 끝이 뜨거워 데는 줄도 모르고 부부는 두 마리의 육식동물처럼 소고기 3인분을 먹어치웠다. 갈비뼈에 붙은 부분도 이로 물고 게걸스럽게 떼어 먹었다. 우리는 한 쌍의 하이에나였다.

너무 맛있어서 어이가 없었다. 나오면서 5만 6000원을 계산했다. 3인분이 기본이라고 조금 언짢았지만,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 기름덩어리 소고기 1인분 값이다.

오늘은 1일2포를 하였다. 기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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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thanks for sharing keep it up

노포, 좋은 단어 알았네요. :)
서늘해서 보령에서 짬뽕 먹어도좋았을 날씨네요. 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짬뽕을 먹었을 때는 봄이었죠. 땀을 송송 흘리면서 먹었던 기억이. 개인적으로 맛 본 짬뽕집 중 최고는 송탄 영빈루였습니다. 울었어요.

아니 사실 흠.... 고기 잘은 모르지만 저건 사진 보자마자 진짜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잘 모르지만 딱 나오는데 진짜 갈비뼈에 붙은 고기를 손으로 펴낸 흔적이..

안녕하세요 shiho님, 와 고기가 정말 색깔이 다른 듯 한 느낌입니다.
연탄에 구워먹는 맛 또한 정말 기가막힐 듯 하네요~~
정말 맛있게 드실만 한 것 같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연탄과 콜라보도 무시 못할 요소인 것 같아요. 건강엔 조금 좋지 않겠지만..

아 네 ㅎㅎ 생활 속에서 건강에 안좋은 물질은 너무 차고 넘치는 것 같습니다 ㅋㅋ
그 정도 맛보는 건 괜찮을 듯 하네요~~ 보람찬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진정 기특하시네요~^^ 저는 오늘 일포도 퇴근이 너무 늦었고 특별히 생각나는 소재도 없어서 간신히 했는데..게다가 오늘은 시스템이 이상해서 보팅만 하는데 1시간 이상은 족히 잡아 먹었네요ㅜㅠ

어제 기사가 없어서 ㅋㅋㅋ 오늘은 1포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muksteem 전국 맛지도 등록 알림봇입니다.
본문에 있는 주소 [경북 경주시 화랑로 83 ###]로 본 글이 먹스팀 전국 맛집 지도에 등록되었습니다.
http://muksteem.com/index.php?permlink=@shiho/3je33a-2
(혹시 주소가 틀리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먹스팀 맛집 지도는 http://muksteem.com에서 이용가능하며, 포스팅에 (1) muksteem 태그 (2) 본문에 상세주소(도로명, 지번 모두 가능, 본문 상단에 있을수록 정확히 등록될 확률이 높습니다)가 포함되어 있으면 자동 등록 됩니다.
약소하지만 풀보팅 하고 갑니다.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

마크다운 기호가 주소에 그대로 들어갔어요!

글을 읽다보니..
진정 경주의 반도식당으로 달려가
노포의 내공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눈이 아닌 입으로~~~^^

달려가셔도 후회 없을 듯합니다. 경주 수학여행 이후로 첨 가봤는데 많이 좋아졌더라구요.

제대로 된 고깃집이네요.
사실 인테리어와 홍보로 덧칠된 집보다
음식맛을 살리는 집이 드물지요.
감사합니다.

노포라는 단어가 꿀팁이네요. 시호님은 너무 맛있어서 시간가는줄 모르셨겠지만,
저는 글이 너무 재밌게 써주셔서 시간가는줄 몰랐네요.

ㅋㅋ 재밌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맛있으면 즐거워서 글이 잘 써져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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