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인 척]수습기간 수습기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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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수습기자 생활 중 '사쓰마와리', 혹은 '하리꼬미'라 불리는 기간을 가장 궁금해 한다. 드라마나 영화, 다큐 등에서 가끔 소개가 되는데 엄청나게 힘들어 보이기 때문일 거다. 나는 편집부로 입사해서 동기들보다 조금 많이 짧게 마와리를 돌았다. 회사가 원래 '짧고 굵게' 돌리는 때였기 때문에 타사 동기들에 비하면 아주 많이 짧게 돌았다.

용어 해설을 다시 하자면 '사쓰마와리'는 일본어로 '(경찰)서를 돌다'는 뜻이며, '하리꼬미'는 '잠복'이라는 뜻이다. 사실 하리꼬미는 칩거 중인 취재원이나 조사를 받고 있는 피조사자들이 나올 때까지 길목에서 버티는 '뻗치기'를 뜻하지만, 그냥 다들 수습 기간에 사쓰마와리 하는 것을 하리꼬미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쓰마와리는 단어 뜻처럼 경찰서를 도는 것이다. 정해진 구역 내의 경찰서를 순회하며 형사 당직실에 들어가 형(사)님들에게 자잘한 사건에 관한 정보를 구걸한다. 이건 구걸이다. 구걸 이상으로 정확한 표현은 떠오르지 않는다. 밤이 늦도록, 그리고 새벽 일찍부터 해당 형사당직실에서 처리한 사건들 중 한 두개 정도의 정보를 육하원칙에 입각해서 알아내, 1~2시간 간격으로 선배에게 보고하는 게 주요 업무다.

마와리의 가장 힘든 점은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갈 수 있다는 것. 여자친구 얼굴도 엄마도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못 본다. 빡센 군기와 함께, 군대에 다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요소다. 집에 안 가고 잠은 경찰서에서 잔다. 각 구역마다 몇개의 경찰서에 수습기자들이 눈을 붙일 수 있도록 만든 기자실이 있다. 해당 기간 마와리를 돌리는 각 사 기자들이 이 기자실에서 남녀 구분없이 잠을 잔다.

그나마 그런 잠도 충분히 자지 못하는 점도 제일 힘든 것 중 하나다. 나의 경우 마지막 보고가 새벽 1시, 첫 보고가 아침 7시였다. 전날 마지막 보고와 다음날 첫 보고 사이의 시간이 단 6시간. 그 시간 중 마지막 보고 뒤 작성해야 하는 일일보고서가 한시간 쯤 걸리고 아침 7시 보고를 하려면 2시간 쯤은 마와리를 돌아야 하니.. 남은 건 3시간 쯤?

이렇게 되면 수습들은 조금이라도 더 눈을 붙이기 위해 생략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생략한다. 먼저 아침식사를 생략한다. 보통 인간적인 선배라면 7시 보고에 별 문제가 없으면 "아침 꼭 챙겨 먹고 조간보고 보내고 9시에 전화하라"고 한다. 조간보고는 꼭 해야 하는 것이지만 아침은 먹지 않아도 혼나지 않는다. 그래서 패스하고 잔다.
씻는 것도 줄어든다. 씻을 시간에 한 숨이라도 더 자야 한다. 나는 그랬다. 하지만 매일 씻는 기자들도 있었다. 나는 4일 동안 청바지를 벗지 않아서 허벅지에 뭐가 막 났는데 그 흔적이 아직도 있다.
이렇게 최대한 잘 시간을 끌어모으면 하루에 3시간 반쯤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낮에 쉬는 것도 아니고 하루종일 뺑뺑이를 돌고 월, 목요일은 회식까지 있으니 체력이 남아도는 사람도 죽어날 수밖에.

이런 생활을 짧게는 몇주, 길게는 몇달을 해야 하니 힘들어서 중도이탈하는 기자들이 나오기도 한다. 자잘한 '사고'도 자주 일어난다.
2010년 초 수습이었던 나는 회식을 하다 중간에 나와바리로 복귀해 종로, 혜화 지역을 돌고 있었는데, 나를 담당하는 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A가 지금 연락도 안 되고 행방불명이니 그 쪽으로 가 보라"는 것이었다. 여성 동기 A를 택시에 태워 보낸 건 나였다. 술도 약한데 좀 많이 마신 것 같았고, 어디서 헤매다 길거리에 쓰러져 잠들기라도 했으면 큰일이었다.
다행히 택시 번호를 적어뒀던 터라 다산콜센터에 전화를 해서 기사와 통화할 수 있었다. 동기가 서대문경찰서에 무사히 내렸다는 얘길 들었다. 택시를 타고 서둘러 서대문경찰서에 달려갔다. 기자실에 도착해 문을 열었는데 동기는 이불까지 덮고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손을 가슴에 모은 채, 왕자님의 키스를 기다리듯 곱게 잠들어 있었다. 누가 봐도 이건 적극적으로 잠을 청한 자세였다.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얄미웠지만 선배에게 보고는 "경찰서 로비에 엎어져 있는 것 들쳐업고 기자실에 내려 놨다"고 했다.

마와리 기간엔, 내생각에 기자직에 관해 가졌던 환상이 50%는 깨진다. 그래도 기자입네 하면 어어 해줄 줄 알았는데, 문도 잘 열어주지 않는 형사당직실에 비비고 들어가, 나를 상대할 필요도 없고 그러기도 싫어하는 험상궂은 형(사)님에게 박대를 당해 보면 '아 18 기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맨 처음 마와리에 투입됐을 때 '강남 경찰서 형사 당직실을 찾아 가서 사건을 알아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경찰서 정문에서 의경에게 기자라고 말하니 들여보내 줬다. 형사당직실이라고 쓴 곳에 가니 자동문인데 열리지 않았다. 안에서 누가 나오면서 문이 열리기에 들어갔더니 진짜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형(사)님이 동굴 목소리로 "당신 누구야?"라고 물었다. 그래서 "XX신문 수습 시호 기자"라고 했더니 엄청 짜증을 내며 "나가요. 여기 기자 들어오는 데 아니예요"라고 했다. 쫓겨난 나는 경찰서 벤치에 앉아 선배한테 전화를 해 그대로 보고했다. 그랬더니 "야!!!!! 그럼 누가 어서옵쇼 할 줄 알았냐?? 당장 다시 튀어가서 사건 알아와! 사건 알아낼 때까지 전화하지마!" 라고 소리를 빽빽 질렀다. 나는 벤치에서 담배를 피웠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마와리 생활도 하다 보니 꼼수와 요령이 생겼다. 집 근처 경찰서가 마지막 순서가 되도록 동선을 짜서 집에 가서 잠만 자고 나오기도 했다. 타사 기자 동향보고 하길 잘 하는 모 석간 기자가 자꾸 "시호씨 어젯밤에 왜 (경찰서에) 안 들어왔냐"고 취재하곤 했다. 그러다 가만히 누워서, 혹은 수습끼리 술을 마시면서도 때 맞춰 딱딱 선배에게 사건 보고를 하는 경지에 이르더니 마와리가 금방 끝이 나 버렸다.

(추가) 처음 경찰서에 다닐 땐 피의자나 민원인 취급을 받았다. 갈 곳이 없어 1층 로비의 민원인 대기석에서 일을 하며 오가는 경찰들과 민원인들의 눈치밥을 먹었다. 마와리가 끝나가던 어느날엔 서대문 경찰서에 들어가는데 의경이 나를 형사로 착각하고 경례를 했다. 기분이 묘했다. 마와리가 끝나고 아버지께 빌린 카드 명세서엔 택시비만 200만원쯤이 찍혀 있었다. 몇 달 간 월급에서 일정 부분씩 떼서 갚았다.

세월이 흘러 이런 수습들을 관리하는 기자들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아서 서울 전역에 돌려 놓은 수습들의 상황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수습은 내가 있는 경찰청에 불려들어와 벽을 보고 서 있었다. 다른 수습은 예전 나처럼 집에서 자다가 어느날 늦잠을 자 버려서 꼼수를 들키기도 했다. 또다른 수습에겐 경찰팀 캡틴이 사직서 양식을 주면서 "다음번에 부르면 이거 채워서 오라"고 했다.

요즘엔 비인권적인 수습 교육이 줄어드는 추세다. 우리 회사 수습들도 밤 11시쯤 마지막 보고를 하고 집에 가서 잠을 잔다고 한다. 세상 참 좋아졌다. 세상은 계속 더 좋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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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많은 사람들이 이 포스팅에 관심을 갖고 있나봐요!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인턴이 힘들다는 말 들었진만
수습기자 이렇게까지 힘들줄 몰랐습니다.
모두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기사끝에 조금 진한 글씨로 이름 나오는군요.
기자를 무관의 제왕이라고 하던 말
괜히 나온게 아니었네요.
왕관은 없어도 무게는 이겨야 하는 건가요?
화이팅하세요.
감사합니다.

수습 기간엔 급여도 60~70%... 택시비는 한달에 100만원 이상... 왕관 없어도 되니 주머니라도 두둑했음 좋겠네요.

참 힘든 과정을 거치셨군요. 뭐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때는 다 힘든 법이겠지만요.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좋아지고 있으니 다행이겠네요.ㅎㅎ (근데 11시..ㅠㅠ)

예전엔 가끔 수습들 회사 들어오면 처음 신입사원 인사 때 얼굴들이 다 사라지고 어디서 웬 오크떼가 들어왔었는데 요즘은 그나마 인간답게 하고 다닙니다. ㅋㅋ

아 그런말들이 있군요 ㅎㅎ 정말 요즘은 예전에 비해 어찌보면 편해졌다 해야하나요? 최근 과로사 등 근로시간에 대한 말이 많아져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좀 자제하는 분위기인 듯 합니다. 말씀대로 더 세상은 좋아져야 할 듯 하네요^^

특히 기자들 돌연사가 많아요.. 최근에도 1등신문에서 젊은 기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 오래전부터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내려오는 관행들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나보네요.. 세상이 변하는데.. 변하지 않은것은 있나 봅니다. 슬픈 현실이네요..

허허 정말 엄청 힘든 과정이군요 ㅠㅠ 괜히 잘못한 것도 없이 형사님들 눈치도 많이
봐야했을 것 같습니다. 전 못할 것 같네요 ㅋㅋㅋㅋ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니 다행이네요 ㅎㅎ

말도 못해요. 피의자 취급 당함... 저 첨엔 경찰들이 피의자인줄 알더니 수습 끝낼 때쯤엔 경찰서 드가는데 의경이 경례를...

TV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빡센 것.. 같아요ㅠㅠ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좀 우스워요...

너무 재밌습니다. 기자란 직업은 볼수록 매력적인 직업인것같아요 ㅎㅎ

매력적인 직업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ㅋㅋ 다른 직장인과 다른 점이 많지요.

궁금한점.... 그런데 왜 일본어를 사용하는 건가요? 그냥 궁금해서^^
@shiho님도 고생 많이하셨죠? 세상은 더 많이 좋아져야죠~ 모든 면에서...

저도 그게 불만이긴 합니다. 우리나라에 신문 문화가 일본을 통해서 들어왔기 때문으로 알고 있어요 ㅋ

바꿔 주세요~ 바꿀때도 됐잖아요...ㅋㅋㅋ 언젠가 우리말로 바뀔 그날을 기대합니다!

바꾸기 운동을 제안해야겠어요. 미디어오늘 같은 데다가..

다른 나라 기자들은 수습 때 어떤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내가 수습 때는 이것보다 더했어!"라고 소리치는 꼰대도 있을 텐데, 세상은 더 좋아져야 한다니 시호님 좀 멋있는 거 아닙니까? :)

아직 그정도 꼰대는 아닌 것 같아요. 속으로 그런 생각도 들지만 입밖에 내지는 않습니다. ㅋㅋㅋ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 언론 문화는 일본에서 전해졌기 때문에 일본이 아마 '도제식' 수습교육의 원조가 아닐까 해요. 미국은 인턴 형식으로 지역언론에서 실무로 경력을 쌓고, 자신의 기사를 써서 그 기사를 포트폴리오 삼아 큰 언론사에 정규 기자로 입사하더라구요.

몰랐던 기자이야기 너무 재미있습니다. ㅋㅋㅋㅋ
전혀 접하지 못한 이야기라 더 신선하듯 합니다. `~~
기자님들 수습이야기 들이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정말 기자라는 직업을 사랑해야 도전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은 더좋아져야 한다는 시호님의 이야기 들으니 좋은 선배님 이신듯 합니다 ^^
기자인척 잘읽고 갑니다. ``~~~

ㅋㅋ 즐겁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정말 기자라는 직업을 사랑했지만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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