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남북정상회담 1면 다시보기 下 : 4월 28일자

in #kr6 years ago (edited)

아마도 시작은 여기였다.

벌써 20년 가까이 지나가 버린 2000년 6월 14일 분단 뒤 첫 남북정상회담이었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의 만남. 15일자를 만드는 신문 1면 편집기자들은 그날 다들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을 거다. 어떻게 이 감동의 면을 짜야 할까. 그날 승자가 경향신문이었다는 데는 별로 이견이 없다. 그날 지면이 두고두고 회자되니 말이다. 1면 상단 제호만 남기고 모든 걸 버렸다. 이 한장의 사진으로 전체를 채웠다. 기사는 물론, 제목은 커녕, 심지어 사진설명도 없다. 이날 중앙일보도 지면 대부분을 생략하고 사진을 한바닥 통으로 실었지만, 제목과 사진설명 등이 사진 위에 얹혔다. 명백한 패배.

18년 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이 만나 손을 잡은 날 사진은 어떻게 들어갔을까. 1면 편집은 어떻게들 했을까. 알아보자. 총평을 먼저 내리자면 2000년과 같은 감동은 다시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 때는 처음이었고 이번은 세번째였다. 사건 자체의 감동 크기를 굳이 비교하자면 2000년이 더 클 것이다. 1면 편집도 딱 그정도였다. 물론 당일에 TV를 보며 울먹였던 1인이지만, 크게 감동을 받은 1면은 없었다. 1면 보기 포스팅이 늘 그렇지만 오늘은 더더욱 주관적인 평가라는 점을 명심하시길. 역시 순서는 가나다. 토요일자를 따로 발행하지 않는 문화일보와 중앙일보는 이날 과감히 쉰 것 같다. 이용하는 PDF 서비스에서 찾아볼 수 없다.


경향신문_기사 제목을 입력하세요_2018-04-28.jpg

경향신문

이번엔 2000년처럼 하지 않았다. 맞다. 또 그렇게 하면 2000년 편집의 가치를 건드리는 게 된다. 제목질 굳이 1등을 뽑자면 여기다. 왜냐면 비핵화 명문화가 가장 중요한 팩트였고 다들 그걸 문자 그대로 박아 넣었지만 경향은 한 번 읊어 줬다. 의미를 담아서.
사진은 대부분 신문이 이 사진을 썼다. 다른 사진을 쓴 신문들이 눈에 띄는데 순서대로 살펴보자.


국민일보_기사 제목을 입력하세요_2018-04-28.jpg

국민일보

제목에 종전 관련 이야기가 들어있다. 나쁘지 않은 선택. 개인적으로 밑에 파란 배경 안에 있는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손 잡고 분단 70년의 선을 넘다. 국민 대부분이 전날 TV로 모든 걸 지켜보고 선언 내용도 대략 다 알고 있는데 굳이 팩트를 위로 올릴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생각. 단지 내 생각.
사진을 바짝 당겨서 썼다. 개인적으로 경향 정도의 트리밍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마주보고 있으면 바짝 당기고 둘이 한 곳을 보고 있으면 주변 배경을 좀 넣어주는 게 좋을 듯.


동아일보_기사 제목을 입력하세요_2018-04-28.jpg

동아일보

역시 완전한 비핵화를 앞세웠다. '문을 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같이 보수지를 자처하는 조선일보와 다른 스탠스. 조선일보 기대하시라.
특히 사진 선택이 독특하다. 판문점 선언에 서명한 뒤 한번 포옹을 했는데 그 사진을 썼다. 그림은 이게 훨씬 좋은 게 맞는 듯. 하지만 의미는 둘이 손 잡고 걸어오는 사진이 더 크다고 생각.
밑에 광고가 깬다. 이런 날은 통면 잡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


서울신문_기사 제목을 입력하세요_2018-04-28.jpg

서울신문

제목에 팩트팩트팩트를 욱여 넣었다. 별로다. 길고 건조하다. 사진 트리밍은 국민처럼 알맹이를 키웠다. 완전 주관적인 평가지만, 방어에 치중한 지면이었다고 생각. 선배 왜 그러셨어욧.


세계일보_기사 제목을 입력하세요_2018-04-28.jpg

세계일보

제목도 사진도 뭐 비슷하다. 왼쪽 정은이 옆에 디지털시계... 전날 서울, 세계에서 썼는데 세계가 따라한 듯. 서울은 이날 가판에 넣었다가 종판에서 빼버렸다. 가판 보고 따라했나보다. 수비수들 ㅋㅋㅋ


조선일보_기사 제목을 입력하세요_2018-04-28.jpg

조선일보

전날자에 삐딱한 시선 예고했던 조선, 역시는 역시다. 제목봐라. 어제 그토록 강조했던 비핵화, 운은 뗐다고 한다.
더 재밌는 건 서울판엔 '운은 뗐다'이고 대구 등 지방판은 '운만 뗐다'란다. 지역을 배려한 세심한 제목. 마치 소설가 김훈처럼 조사의 선택도 신중하게. 기사 내용도 부제도 구체적 이행 방안, 시기 빠졌다고 한다. ㅋㅋㅋㅋㅋ 웃자 웃어. 비핵화 구체적 시기와 이행 방안을 만나자마자 어떻게 정하나 이사람들아. 알면서 그랬지? 다 안다.
사진 선택도 왜 이런 사진을 썼는지 도대체 모르겠지만 100% 뇌피셜로 추측하자면 김정은이 가슴을 쫙 펴고 듣는 자세고, 문재인 대통령은 공손히 앉아서 열심히 설명, 설듯하는 듯한 모양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100% 뇌피셜.
오늘의 팔면봉! 1. 북핵 폐기 기대 속 11년 만에 치른 남북 정상회담. 정작 김정은에게선 왜 비핵화 한마디 들을 수 없는지. 2. 남북 정상회담 날, 천안함 연평도 유족 "차마 TV를 볼 수 없었다". 어제 한국에서 그들은 국민이 아니었음. 2번이 정말 압권이다. 이런 건 일기장에나 써라.


한겨레신문_더 이상 전쟁은 없다 판문점 선언_2018-04-28.jpg

한겨레

왜 사진이 누워있을까? 왜냐면 한겨레가 2000년 경향을 넘어서는 파격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한겨레 제호가 들어있는 오른쪽 부분은 1면이고 두 정상의 다리와 제목이 있는 왼쪽 부분은 '백(back)면' 즉 맨 뒷면이다. 신문 백면 전면광고는 상당히 비싼데 이걸 포기하고 앞뒤 전면을 두 정상의 사진으로 발라버렸다. 문 대통령이나 김정은을 정치인 이상으로 좋아하는 독자들은 한겨레를 구해서 이걸 대형 브로마이드로 써도 손색이 없겠다. 디지털 지면이라 이렇게 누운 한 장의 이미지로 볼 수밖에 없지만 종이신문을 받아 보는 독자는 분명 감동을 좀 받았을 것. 제목은 무난하다. 비핵화를 빼고 종전에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일보_기사 제목을 입력하세요_2018-04-28.jpg

한국일보

사진 위에 얇은 제목으로 좀 읊어주고, 아래 메인 제목을 둬서 팩트를 전달했다. '첫'에 의미를 부여한 괜찮은 제목. 사진 선택은 좀 아쉽다. 이유를 잘 모르겠다.


만약 이날 1면을 짜는 영광이 내게 왔다면, 둘이 손을 잡고 잠깐 북측으로 넘어가는 뒷모습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썼을 것 같은데, 아무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신문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편집을 끝까지 못하고 취재로 나온 건가 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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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별로 1면에 대한 내용을 스토리와 함께 보여주시니 색다른 재미가 있네요~신선함과 내용전달의 치열한 경쟁이 눈에 보이는듯 합니다.^^

중국.일본 건설 현장 다 가서 일해 봤거든요....
이제 북한 현장에도 가게 되겠죠....
얼른 가서 북한 냉면집 먹스팀 올리고 싶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네팔에서 평양아리랑 식당에 갔었드랬죠. ㅋㅋ

자료 있으시면 먹스팀 도전해보세요.ㅅ.ㅅ.
시의성도 살아있는 이야기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하구요. ㅎ.ㅎ

오호 고려해보겠습니다

ㅋㅋㅋ 그러고보니 좃X일보가 헤드라인도 영~ ㅋㅋ
그래도 인정안할 수는 없고... "운은 땠다"가 가장 적절한 단어였을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ㅋㅋ

신문사별로 표현한데 이렇게나 다르군요:) 신기하네요~ㅋㅋ저도 shiho님이 편집한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저도 편집을 못하나봐요~ㅋㅋ

한 가지 주재를 가지고 치열 하네요^^
그래도 암울한 주재가 아니라 멋진 날이었답니다!!!!
언론에서 뭐라건 간에 말이죠~

맞습니다. 뭐라건 간에.

이렇게 모아서보니, 같은 내용으로 더 나은 지면을 만들고자하는 언론인 분들의 마음이 와닿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 분명히 그런 고민을 하는 언론인들이 있죠.

한눈에 비교해서 보기좋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정상의 맞잡은 두손이 보기 좋습니다. 우리 교과서에 실릴날이 오겠죠 ㅋㅋ

각신문사마다 1면이 다른느낌이네요
시호님 1면을 모아서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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