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의 명리학] 개운이란 낯선욕망의 중심이다.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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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라면서 그것의 침입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기표와 기의를 잇는 인간의 사회화, 또는 상징화가 꼭 단단한 것만은 아닙니다.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틈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말이 어떤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관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옳다고 일종의 세뇌에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한번쯤 자신이 믿고 있던 신념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제겐 프로이트와 니체, 다윈을 만날 때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통찰이 흔들림을 갖기 위해서는 '정서적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기존에 자신이 믿어왔던 것들이 흔들리는 그런 실존적인 체험과 자신의 충동과 방어기제에 대한 통렬한 통과가 있어야 합니다. 이건 이성적 의식판단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그것들이 흔들리면 일단 인식적으로 기표와 기의가 분리됩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언어는 소리와 의미가 분리됩니다. 의미를 당연히 가졌던 소리는 그냥 소리가 됩니다. 그건 꼭 필연적으로 그 의미를 가진 게 아니게 됩니다. 의미라는 것은 그 소리에 붙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흔들릴 때는 멍함을 경험합니다.

이런 멍함은 멍때리고 차원의 멍함이 아닙니다. 정신분열의 경계까기 가는 멍때림이기 때문입니다. 뇌에 단단하게 아교로 붙어 있던 의미와 소리가 분리되는 그런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를 경험하고 나면 사람들이 말하는 의미라는 것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휘둘리다가도 중심이 잡힌다는 뜻입니다. 뇌의 중심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 몸의 중심이 잡히는 그런 중용의 상태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사회는 명리적으로 말하면 식신생재입니다. 자기를 표현하고 말을 통해서, 정보를 통해서 재물을 만들어 내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그 재물을 취하고 그 재물에 중독되길 원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소비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시대.

그러나 명리학은 식신생재에서 관인상생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합니다. 관은 밖으로 향했던 눈이 안으로 들어오길 손짓하는 것입니다. 때론 회초리가 될 수 있습니다. 관이라고 하는 조직, 규율에 맞지 않는 욕심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관을 쓰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그것을 외부 조직의 위계로 잡지 말고 자기 규율로 잡길 바랍니다. 그럼 그것이 체득되고 깊어져서, 즉 관이 인(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중용이라는 중심이 몸에 생깁니다.

개운이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상징계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편향이기 때문입니다. 중용이란 익숙한 상징계의 욕망에서 낯선 욕망을 받아들이고 중심을 잡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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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표와 기의가 피차 흔들리는 존재들 끼리
너의 의를 수용하려 노력하는 열린자세로 내 욕망과 내 의를 함께 세워가야 겠다 생각하게 됩니다. 식신생재는 처음 듣는 말이라 찾아봤는데도 잘 모르겠네요 ㅎㅎ

네~ 의라는 게 관을 뜻하기도 하는데, 다른 이의 의를 이해하는 게 중요해 보입니다.

중용이라는 단어, 평소에 종종 곱씹던 녀석인데 새롭게 다가오네요

새롭게 다가오신다니, 다행입니다.

글을 깊이 있게 읽기 위해 단어들을 한자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아예 명리학을 공부 해봐야하는 것이지도요.) 기표와 기의가 분리되어 느끼는 멍함 그리고 자신 만의 중용 상태를 만들어 가는 것, 글을 몇번 읽다보니 이게 사춘기와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기존 자신이 알던 신념이 흔들리고 이에 대해 방어기제가 일어나고 자신의 충동이 들끓는 것 말이지요. 이런 시기에 어떻게 중심을 잡아가냐가 앞으로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요. 중학교 이후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부쩍 자라남을 볼 수 있는데 다들 나름의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중용을 찾아 낸 결과이겠지요. 생각은 제가 아는 선에서 그 앞으로 잘 나아가지 못 하는 듯 합니다. 글을 읽으며 받아들이는 것이 위와 같을 뿐입니다. 좀 더 배워야 더 깊이 이해가 되겠지요.^^;;

네~ 사춘기와 같습니다. 그래서 제2사춘기 40이면 불혹이라 한 것입니다. 혼란을 겪어야 불혹의 중용이 되니깐요.

무술년을 기점으로 화로 팽창했던 에너지가 다시 관인상생쪽으로 수축되겠군요.

개운이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상징계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편향이기 때문입니다. 중용이란 익숙한 상징계의 욕망에서 낯선 욕망을 받아들이고 중심을 잡는 것입니다.

이 말이 귀에 쏙 들어오네요. 감사합니다.

수일간 이신가 봅니다. ^ 그럴 거 같았습니다. 물 같이 유연하셔서.

절 수일간으로 보셨군요. 물이 인성인 목일간입니다^^

ㅎㅎㅎ 아~ 목일간을 제가 좋아라 합니다. ^ 목일간은 암호화폐에 잘 맞는 거 같더군요. ^

편향되지 않는 중용이라는 단어가 좋은말이고 쉬워 보이지만
낯선 욕망앞에선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

네~ 흔들려야 중심을 더 크게, 더 기우뚱하게 잡으니깐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통관이되려면 상관/식신에서 시작되는 것이지요. 중용을 체득한 실천! ㅎㅎ 표현 멋져요!

네~~ 어느 하나 소홀할 순 없습니다. 관인만 되는 경우, 자아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 관념론에 빠지게 되니깐요.

관인상생..제게 필요한 말인 것 같아요. 특기 자기 규율~ 느러지는 봄날 내 공부는 어쩔꺼냐고 혼자서 부르짖어봅니다.
갑자기 @seoinseock 님께서 뭔가 해답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 웃어봅니다. 히히

또 어흥하시는군요. ^^ 졸리실 때는 비脾기능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어요. 비장이 맑은 기운을 위로 올려야 하는데, 아무래도 봄이 오면 그 기능이 떨어져요. 대도혈이 도움이 될 거예요~~

download (3).jpg

글보다 그림을 보고 사오정이네 했습니다. 하하~
짬을 내서 발을 조물거려봐야 겠습니다. 역시나예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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