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자기 통제의 승부사, 사마의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6 years ago

어린 시절 삼국지를 읽을 때, 유비, 관우, 장비, 조운, 조조, 원소, 손권 등등 영웅들의 이야기를 흠미진진하게 쭉 따라가다가,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 맥이 쭉 빠졌습니다. 응? 제갈량 발끝에도 못 미쳐서 오장원에서 도망 나온 사마의가 강대한 위나라 권력을 꿀꺽하더니 사마소가 촉나라를 멸하고 황제가 되어 천하를 통일한다고? 이게 말이 되는 거야? 그 화려하고 씩씩하던 영웅들은 다 어디로 가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결말을 차차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영웅이 죽어도 우리는 세상을 살아야 하고, 남은 사람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법이지요. 또 겉으로 보이는 군사력과 강대함 뒤에는 늘 우리가 모르는 정치판이 벌어지기 마련이고요. 사마의 역시 제갈량에게 번번이 패하긴 했지만 아주 뛰어난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자기 통제의 승부사 사마의 - 자신을 이기는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책을 읽고, 사마의에 대해 몰랐던 부분이 정말 많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마의는 정말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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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자인 자오위핑은 우리가 흔히 사마의를 비웃을 때 예를 드는 장면, 제갈량이 군사도 얼마 없이 고립되어 사마의에게 포위당하자 성문을 열고 거문고를 튕겨 사마의를 물리친 장면을 보여줍니다. 저는 제갈량의 신출귀몰한 지혜에만 탄복했지요.

하지만 지오위핑은 군사를 물린 사마의를 칭찬합니다. 제갈량에게 군사가 거의 없었다는 건 이미 모든 사건이 끝난 다음인 삼국지의 독자들만 아는 정보입니다. 이미 사마의는 제갈량을 고립시키고 공격의 맥을 끊은 것 만으로도 자신의 임무를 다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공을 다투어 제갈량을 공격했다가 혹시 모르는 매복을 당하면 쌓은 공을 잃어버리게 되지요.

사마의는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최선보다, 이미 이뤄놓은 차선에 만족하고 군사를 물립니다.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우리는 그를 비웃지만, 사마의는 어쨌든 제갈량의 위나라 침략을 잘 막았습니다. 지오위핑은 이 점을 크게 칭찬합니다. 화룡점정을 얻으려고 무리하다가 무너지느니, 차선을 얻고 롱런하는게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마의가 제갈량에게 번번이 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진짜 패한 것은 제갈량입니다. 제갈량은 수많은 전투에서 이겼지만, 결국 위나라를 정벌하는 전쟁에서는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마의의 가장 큰 목적은 위나라를 보호하는 것이었지 제갈량을 이겨 삼국지 제 1의 모사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오위핑은 이 점을 높이 산 것입니다. 이 책 제목에도 보이듯이 이 책은 사마의로부터 처세술에 대해 배우는 책입니다.

사마의가 보스로 모셨던 사람들을 봅시다. 일단 조조, 그 아들 조비, 그리고 조예, 조모까지 위나라 4명의 왕/황제를 보스로 모십니다. 조예, 조모야 그렇다 치더라도 일단 조조를 직장상상로 모셨다는 것부터가 클래스가 남다르지요.

그런데 사마의는 한편으로는 조조보다도 더한 악질(?)이었습니다. 사마의는 조조가 함께 일하라고 부르자 우선 사태를 관망하기 위해 거절합니다. 그리고는 병이 있다고 핑계를 대고는 중풍 환자로 연기를 합니다. 침상에 누워서 밥도 흘리면서 먹는 연기를 했다고 하네요. 혹시나 조조가 자기를 살펴보고 죽일까 봐 그랬다고 하는데, 설마 그 정도로 조조가 악독할까 싶지만 조조는 진짜 자객을 보내서 사마의의 상태를 확인했다고 합니다.

조조나 사마의나 정말 기가 막히는 인물들입니다. 이렇게 몸가짐을 삼가면서 자기를 숙이고, 참고 참고 또 참으며 사마의는 위나라 최고의 재상 자리에 오릅니다. 그런데 그 과정도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조조는 물론 조비나 다른 황제들도 끊임없이 사마의를 의심하고 시험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마의는 진짜 결정적인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결코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지 않고 아무리 부당한 대접을 받아도 참고 자신을 숙입니다. 그러다 왕실의 친인척 조상이 사마의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조상은 사마의를 무시하고 자신의 권세를 키워가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마의는 이 역시 참고 견디며 남몰래 결사대를 마련해 기회를 엿보다가 조상이 성 밖을 나서자 그 길로 결사대를 모아서 위나라 조정을 장악하고 성문을 걸어잠급니다. 한마디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죠. 조상은 사마의가 이런 일을 꾸미고 결행할 동안 전혀 낌새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로 사마의는 용의주도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읽는 내내 이런 사마의의 용의주도함과 인내심을 보면서, 정말 천하를 얻는 일이라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으면서, 한편으로는 저렇게 살아야 할 바에는 천하를 얻지 말고 그냥 편하게 사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하를 삼키겠다는 야심을 마음에 품고도 그걸 마지막 결정적 순간까지 드러내지 않고 참았다니.

저자 자오위핑은 사마의의 여러 가지 사례를 들면서 직장인과 경영진들이 어떤 점을 배워야 하는지 일러줍니다. 상당히 조직 중심적이고, 충성을 지향하는 관점이어서 오늘날의 직장생활과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삼국지를 읽으며 무시했던 사마의에 대해 새로운 모습과 관점을 제시해 준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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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가 확실히 너무 촉의 관점으로 쓰여진거 같긴합니다..
저도 삼국지 어렸을 때부터 너무 좋아하고 많이 읽었었는데,
유비, 관우, 제갈량은 착한 내 편. 나머지는 못된 적군들이었거든요ㅎㅎ
그래서 저도 결말이 너무 맘에 안들었고 제갈량이 사마의 따위한테 진다는걸 인정하기 싫었었습니다.
근데 글을 읽다보니, 제가 너무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사마의였죠.. 온갖 음모와 꼼수가 가득한 조정에서 살아남는거 자체도 대단한데 그 위에 올라서다니!!
진짜 아무나 못하는 일 같습니다.. 제가 저 시대에 살았으면... 뭐가됬을까 싶네요ㅜㅜ

네, 애초에 촉이 한나라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진정한 왕조라는 관점에서 쓰여졌으니 어쩔 수 없는 듯 합니다. 한나라는 중국에서도 문화로 숭상받던 시대니 아마 흥행을 위해서도 그런 관점을 택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냥 재밌게 소설로 보면 상관없지만 삼국지를 진지하게 접근하려면 역시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재미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사마의가 다르게 보이더라구요. 최후의 승자에게는 역시 자기만의 비법과 무기가 있는 듯 합니다. 근데 알아도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거 같아요 ㅎㅎㅎㅎ

대부분 사람들이 나관중이나 이문열의 삼국지만을 읽다보니 위,촉,오의
균형잡힌 시각에서 바라보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관점에서 삼국지를 생각해보게 되네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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