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한테 빨리 OOO 라고 말해!

in #kr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박세계입니다.


(팝콘 뺏어먹는 아빠, 그러던 말던 경치를 보며 사색에 잠겨있는 딸)

제게는 일곱살 딸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흔히 '아이는 부모의 거울' 이라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백번이고 맞는 말이고 부모로써 지켜야할 좋은 말이지만 이면에는 '암튼 아이는 부모보다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니' 부모된 책임으로 가능하면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정신적인 성숙도는 어느정도 사고를 갖춘 나이 이후로는 나이와 무관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걸 다시금 상기시켜준건 다름 아닌 딸아이였습니다.


저와 동갑내기인 아내와는 아직까지 서로 존댓말을 쓰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도 참 좋은 선택이었던거 같습니다. 물론 서로 존댓말을 쓰는게 무조건 더 옳다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은 사실상 말의 방식이 아닌 말의 내용과 진심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굳이 존댓말의 장점을 하나만 꼽자면 말다툼을 할 때 어지간해서는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말과 존댓말을 적당히 섞으면서 지내기는 하지만 어느정도 선을 지키기에는 나쁘지 않은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평범한 부부들 처럼 아주 가끔씩은 심하게 다투는 날이 있습니다.

몇 달 전에 정말 지금까지의 모든 다툼을 통틀어 거의 최악으로 말다툼을 한적이 있습니다. 나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는게 아이 앞에서 만큼은 적어도 '크게' 다투는 모습을 보이지는 말자인데, 그날은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심정적으로 그 선을 도저히 지킬수 없었습니다. 물론 뒤돌아보면 막상 큰일로 다투는 일은 적었고 항상 사소한 일들이 다툼의 시작이었던거 같습니다.

아이가 보통때는 그 나이에 걸맞게 짜증도 많이내고 조금만 속상해도 울먹이고 그러는데 참 놀랍게도 아내와 다툼이 있을때는 어김없이 우리 둘보다도 훨씬 침착해지는걸 보게됩니다. 중간에 아이를 두고 서로가 (주로 제가 ㅜㅜ) 격렬하게 말다툼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 나: 아니 그러니깐 내가 속상해서 어쩌구 ... 저쩌구 ...
  • 딸아이: 아빠! 너무 시끄러워! 이제 그만좀해!!
  • 나: OO아. 좀 가만히 있어봐. 아빠도 너무 기분이 안좋아서 그래. 이걸 나는 오늘 꼭 풀어야겠어.
  • 딸아이: 아니! 너무 시끄럽다구! 나도 기분이 안좋으니 이제 그만좀 싸워!!
  • 나: (계속 싸움...)

아이를 중간에 두고서도 '격렬한' 말다툼을 도저히 멈출수 없는 유일한 날이었던거 같습니다. 그렇게 말은 계속 극단으로 치달았고 도무지 서로 양보할 기색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간에서 말리기도 지쳐보이던 딸아이가 문득 다시금 끼어들었습니다.

  • 딸아이: 잠깐만! 아주 좋은생각이 떠올랐어! 아빠 잠시만 귀좀 대봐.
  • 나: (딸아이에게 귀를 가져다 대며) 아 왜 그러는데.
  • 딸아이: 아빠! 엄마한테 빨리 OOO 라고 말해.

그 한 마디에 그토록 격렬했던 말다툼을 바로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빠! 엄마한테 빨리 미안해 라고 말해.

그리고 바로 그 말을 행할 수 밖에 없는 위력이 있었습니다.

  • 나: (아직 분은 남아있지만) 미안해요 자갸.

그 말을 받아서 어느 정도 풀릴 수 밖에 없었던 아내가 이런저런 말을 좋게 하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는 이 마무리를 더할나위 없이 확실히 했습니다.

엄마! 엄마도 빨리 아빠한테 미안해 라고 말해.

아내도 제게 '미안해요' 라고 할 수 밖에 없었고, 상황은 그 즉시 종료되었습니다. 거기서 더이상 무슨 나쁜말을 할 엄두조차 나질 않았습니다.

심지어 피식 웃으면서까지 위기를 넘긴 저희 부부는 그날의 상처가 그 즉시 풀렸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후로 굳이 같은일로 다시 다투려고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덕분에 언제 그랬냐는듯 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었구요.

그날 이후로 '내가 딸아이의 보호자인건 분명하지만, 이 아이는 이미 온전한 인격의 분리체이며, 오히려 내가 진심으로 존중해야 마땅하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 이후로도 막상 아내와 조금이라도 다툼이 있는 중간에 딸아이가 있을때면, 피식 웃을 수 밖에 없게끔, 그리고 때로는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만큼 저를 일깨워 주곤 합니다. 그럴때면 오히려 딸아이가 제 보호자가 되어주는 생각마저 들기도 하구요.

요즘 일적으로 상당히 바쁜시기라 딸아이와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해 미안한 마음인데 문득 예전 생각이 떠올라 그날의 심정과 딸아이의 가르침을 함께 공유하고자 올려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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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아이 말을 귀기울여 들어주신 세계님도 대단하세요. 가끔 부끄럽고 민망할 때 그걸 숨기려고 외려 더 크게 소리치고 화내는 어른들도 있거든요. 부모님이 멋지시니 따님도 잘 크는 거겠죠. :)

아기의 마음이 너무 순수하고 또 다른면으로는 현명하네요^^
좋은 포스팅 잘 읽고 갑니다 ~!

네 참 순수하고 현명하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onghulla 님.

팔로우 했습니다. 앞으로 자주 소통해요 ^^

사랑해, 미안해 는 마법의 단어죠~ 아이들은 우리 인생의 선생님이구요~

정말 '사랑해, 미안해' 두개만 알고 있어도 살면서 닥치는 거의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거 같습니다. 누구나 알면서 막상 가장 꺼내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구요.
저도 @floridasnail님처럼 '살며 사랑하며 배우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항상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너무나 감동하여 풀보팅을 퍼부어드립니다. 따님은 진화된 존재네요.
세상에 모든 자녀들이 그렇듯이...우린 이미 약간은 고물이라(^^;) 자주 버그를 일으키고 호환성에 문제를 일으키죠. 신형에게 배워야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

앗 타타님! 제 블로그에 와주셔서 감동+풀보팅 공격까지 해주시다니 감격감격입니다 ^^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너무나 적절한 표현에 무릎을 탁하고 칠 정도네요 ㅎㅎ 말씀하신데로 우리 아이들은 모두 진화된 존재인거 같습니다. 정신적으로 내가 아직 많이 미숙하구나 하는 느낌을 딸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가장 많이 느끼는거 같습니다.
읽어주시고 큰 공감 해주심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타타님. 남은 주말 항상 그렇듯이 가족분들과 행복하게 보내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

저도 딸이 둘이거든요. 마니에게 요즘도 가끔 조언을 듣습니다.
그저께 혼자 필리핀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내게 슬며시 묻더군요.
"아빠! 이번 엄마생일때 뭘 선물할꺼야?"

아이의 순수함과 현명함에 찡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화를 내려놓고 그렇게 행동하신 세계님도 정말 멋지시구요~
동갑임에도 서로 존대하고 계시다는게 놀라웠습니다.
저도 아주 먼 미래에 부인이 생긴다면 그렇게 할 예정이지만 세계님이 세삼 존경스럽네요~

동갑내기 기리나님 방문 감사드립니다 ^^ 아이들의 순수함과 현명함에는 항상 화를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묘한 힘이 있는거 같습니다.
지금도 따뜻한 마음의 결정체인 기리나님은 저보다도 훨씬 인격적이고 현명하게 대처하실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조만간 있을 밋업도 기대하겠습니다 ^^

완전 저희 부부랑 비슷하네요. 아니 거의 대부분의 부부가 그렇겠죠. 저랑 신랑은 동갑이다 보니 정말 자주 다퉜거든요. 정말 사소한 이유로요. 하지만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는 아이들 앞에서는 되도록 안 싸우려고 하는데 감정이 겪해져서 저 자신도 통제가 힘들 정도가 될때가 있어서 아이들이 엄마아빠 싸우지 마요 소리를 들을 때까지 이성이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어요. 서로 미안하다는 한마디만 하면 바로 풀리는데 왜 그걸 못하는지 모르겠네요~ㅎㅎ

이야기를 보아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군요. 하하

interesting post ..
I really like,
thanks for sharing.

따님께 제가 배우고 가네요~
그 순간 조금 참고 미안하다고 하면 끝날것을 뭘 그렇게도 화를 내고 그러는지.. 앞으로 남편과 다툼이 생긴다면 박세계님의 포스팅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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