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기관차 멈추다

in #kr6 years ago

2000년 11월 22일 인간기관차 자토펙 멈추다.

“.... 이제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민주화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나 많은 이들이 이제야 언로(言路)가 열렸다고 믿는 데에 수개월이 걸렸고 지금도 이를 도저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 일단 우리가 입을 열고 민주화의 발걸음을 시작한 이상, 민주화를 관철하기 위하여 싸울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구세력의 잔인한 보복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방관해 온 이들에게 호소한다. 지금은 전국민이 장래를 결정할 중요한 시기이다. 바야흐로 여름 휴가가 시작된다. 여느 때 같으면 일손을 놓고 잠시 쉴 수 있겠으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우리의 경애하는 적대자들이 휴가를 팽개치고 반격해 올 것이기 때문이다.어떻게 그들에게 뒤질 수 있겠는가....... (중략)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의 현실에 알맞은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할 것인다. 겨울이 되면 그 성과를 알게 되리라. 노동자 농민 월급쟁이 예술가 학자 기술자 그 외 모든 사람에 대하여 우리는 선언한다.“

1968년 6월 27일 체코슬로바키아 작가 동맹에서 70여명의 진보적 인사의 서명을 받아 발표한 ‘2천어 선언’이다. 이는 “당에 의해 행해진 부정과 과오를 시정하고 사회주의의 민주화를 원하는”, 즉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호소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용감한 지식인들의 함성이었다. 프라하의 봄의 절정이요, 그 프라하의 봄을 짓밟을 소련군과 바르샤바 조약기구 군대의 탱크 소리 바로 앞에 울려 퍼진 감동의 메아리였다. 이 2천어 선언의 주창자 가운데에는 아주 유명한 이름 하나가 끼어 있었다. 에밀 자토펙.

나찌 독일의 군홧발이 오래된 역사의 신생 독립국 체코슬로바키아의 간판을 짓밟은 것은 그의 나이 열 여덟 살 때였다. 그에 무척 분노하긴 했지만 가난한 구두공장 직공이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이 그의 운명을 바꾸는 제안을 한다. “어이 에밀. 내가 육상 대회 후원하는 거 알지. 자네 한 번 나가 봐.” 별 이유는 없었다고 한다. 사장은 자신이 이름을 내민 대회에서 자기 공장 직원 하나쯤 출전하길 바랬고 에밀 자토펙은 그 가운데 가장 젊은 축에 들었던 것이다. 기뜩이나 일이 힘들어 죽겠던 자토펙은 꾀병을 부려 그 형극을 모면하려 했는데 검진 결과는 "육상에 가장 적합한 신체 상태“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대회에 출전한 자토펙은 뜻밖의 성과를 거두어 사장 이하 주변을 놀라게 한다. 처음 뛴 육상대회에서 당당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가장 놀란 것은 에밀 자신이었다. 어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던가. 이후 에밀 자토펙은 체코 육상의 떠오르는 별로 명성을 얻는다. 2차 대전 이후 재개된 런던 올림픽에서 그는 5천미터에서 은메달, 1만미터에서 금메달을 딴다. 특히 1만미터에서 그의 역주는 관중들과 선수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경기 초반에는 형편없는 하위권에 처져 있던 그가 별안간 영화 <벤허>의 전차경주 장면처럼 다른 선수들을 하나 하나 젖히며 1위로 골인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프롤로그에 불과했다. 그의 인생의 절정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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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대회에서 5천미터와 1만미터, 그리고 마라톤까지 제패하여 육상 장거리 3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다. 이때 5천미터에서 우승하는 모습은 전 관중을 열광시킨다. 죽을 것 같은 얼굴의 한 선수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듯 했다. 점차 다른 선수들이 그를 제쳤고 그는 후순위로 처졌다. 그런데 거의 경기 막판, 목을 잔뜩 움츠리고 혀를 내밀고 마치 금방이라도 숨 넘어갈 듯한 고통이 아로새겨진 얼굴에 팔을 크게 휘젓는 다소 희한하다고 할 포즈로, 마치 100미터 달리기하는 펭귄같은 안간힘으로 자토펙이 다시 스퍼트를 시작한 것이다.


관중들은 일제히 그의 이름을 부른다. 자토펙 자토펙 자토펙..... 무거운 추를 달고 가스 마스크를 쓰고 훈련하고 숨 안쉬고 뛰기를 하다가 졸도해 버린 경력까지 있었던 이 희한한 노력파 자토펙은 은퇴할 때까지 1만미터 기록을 몇 번이나 갈아치우며 체코의 영웅이 된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인간기관차라는 별명을 얻은 자토펙의 명언이었다.

그는 체코 붉은 군대의 장교였고 대령으로까지 승진한 공산당원이었다. 하지만 나찌를 혐오하던 구두 공장 직공은 동시에 인민을 배신한 공산당에 항거하여 2천어 선언에 이름을 올린다. 또한 거리에서 마이크를 들고 인민들에게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외치며 인민을 배반한 사회주의를 성토한다. 프라하의 봄이 산산히 부서졌을 때 그 역시 대령 계급장과 공산당원증이 찢겨 나갔고 그로부터 20여년 간 그는 유배와 같은 나날을 보냈다. 심할 경우는 탄광에서 석탄을 캐기도 했다고 한다.

현실 사회주의의 동구권이 몰락한 뒤에야 그는 정상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그의 수명은 길지 못했다. 오랜 유폐의 괴로움은 그의 튼튼한 몸을 좀먹고 있었던 것이다. 2000년 11월 22일 자토펙은 세상을 뜬다. 그의 장례는 체코 국장으로 치러졌고 사마란치 전 아이오시 위원장을 비롯하여 기라성같은 인사들과 수만 체코 국민들의 애도 속에 인간기관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위대한 육상 선수였지만 동시에 인간의 존엄의 하한선을 지켜내고자 노력했던 민주주의자였고, 사회주의의 배신에 분노한 사회주의자였다.

수단 민간인 학살 항의 시위 중 체포된 미국의 영화 배우 조지 클루니의 말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사회적 주목도와 돈이 따르는 영화배우로서의 내 직업은 우리 사회를 더 진전시키는 사안에 대해서도 말해야 하는 책임까지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 자토펙이 클루니의 말을 들었다면 박수를 치며 이렇게 맞장구쳤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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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그리고 하나 더. 인간은 존엄하고 자유로운 존재이며 그로부터 벗어날 때 인간은 날개 잃은 새가 되고 뭍으로 나온 물고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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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나 연예인이 사회적 발언을 할라치면 바로 건방지다든가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든가 폴리테이너라든가 하면서 매장의 삽을 뜨거나 밥줄을 끊으려드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나는 저 영웅들이 부럽고 그들을 길러낸 사회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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