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원의 탄생

in #kr4 years ago

창경원의 탄생

사극을 많이 본 분들이라면 아 그 장면! 하고 아는 체 할만한 장면 두 개를 얘기해 보자. 하나는 복위한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해 흉물을 묻었다가 발각된 장희빈의 표독한 표정, 그리고 아바마마 살려 주시옵소서 뒤주를 두들기다가 죽어가는 사도세자. 이 두 장면에는 곧통점이 있다. 그 일들이 벌어진 무대가 창경궁이라는 것이다. 원래 태종을 모시려고 세종이 지은 수강궁이었다가 성종 때 창경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던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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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짓긴 했지만 위와 같은 비극이 일어날만큼 터가 센 탓인지 몇 번의 화마를 겪으면서 구한말에 이른다. 그리고 1909년 11월 1일 창경궁은 또 다른 기구한 변신에 직면하게 된다.

1909년 11월 1일 잘 차린 모닝코트에 모자까지 멋지게 쓴 땅딸막한 청년이 창경궁 앞에 나타난다. 어딘지 모르게 힘이 없어 뵈는 그 청년은 대한제국의 황제 순종이었다. 그는 그의 궁궐 중 하나였던 창경원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들이고 그 개장 기념식에 참석한 것이었다. 그에게 "국왕의 은혜를 백성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니 궁전의 조영과 동식물원을 신설하시오."라고 권했던 외국인은 유감스럽게도 함께 자리하지 못했다. 바로 6일 전 하얼삔에서 그 일본 노인은 한국 청년의 총에 사살당했던 것이다. 그 이름은 이토 히로부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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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의 동식물원 건립 공사는 1908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는데 창경궁 명정전과 남북 행랑 및 주요 전각을 박물관으로 하고 남쪽의 보루각(報漏閣) 일대에 동물원을, 북쪽 춘당대(春塘臺)에는 식물원을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공사가 날로 거세지면서 창경궁 안이 말도 아니게 훼손된다는 것이 알려지자 대한매일신보는 '동물원을 수축할 차로 동궐(창경궁) 선인문 안에 있는 전각을 몰수히 허는데 그 중에 천여 년 된 옛 전각도 또한 훼절한다더라' (1908.3.6)고 안타까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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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사는 완공되었고 호랑이와 곰, 토끼 제주 말 등이 어울린 최초의 '동물원'이 탄생했다. 이날 이후 창경궁은 대중에게 개방되는데 순종 황제는 지엄한 궁궐에 웬 상것들이냐고 펄쩍 뛰는 사람들에게 "군주는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달래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고 한다. 군주 자신이 즐거워했을지는 의문이지만. 어쨌건 구중궁궐에서 나들이 장소로 둔갑한 창경원에 출입이 제한된 사람은 다음과 같았다. "술 취한 사람 , 의복이 남루한 사람' 그리고 또 하나 더 있는 기준은 좀 애매하다. '미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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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와 창경궁을 잇는 곳에 길을 내 버리고 창경궁의 전각들을 무시로 헐어버린 일제가 '창경원'의 뜰에 들여놓은 것은 수천 그루의 벚나무였다. 서울에서 자란 이들 대부분은 "창경원 벚꽃 놀이"를 희미하게 기억하거니와 창경원이 상춘의 벚꽃놀이터가 된 것은 1924년부터였다. 참 속없는 조선 백성들은 그 벚꽃 놀이 아래서 봄을 즐기고 놀았다. 그로부터 60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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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황제가 살아 생전 목요일은 창경원이 문을 닫았다. 순종이 창경원을 산책하는 날이었고 그 기분을 맞춰 주겠다는 배려(?)였다. 과연 순종은 어제 신민들이 떼거리로 들어와 벚꽃 놀이를 질탕하게 즐겼던 그 길에서 무슨 느낌이었을까? 망국의 군주로서의 미안함? 철없는 백성들에 대한 진노?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목숨 건 권력 투쟁을 벌이는 와중에 어머니가 죽었다고 장례식을 치르려 했던 콩가루 집안에 자신의 어머니가 제 지척에서 살해되고 담요에 돌돌 말려 화장되는 동안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던 순종. 그가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선물이 창경원이었다. (물론 일본의 강요도 있었지만)

창경원 벚꽃놀이가 한창일 무렵, 1926년 순종은 죽는다.그의 유조 중 일부라는 내용을 옮겨본다. "지난날의 병합 인준은 강린(强隣.일본을 가리킴)이 역신의 무리와 더불어 제멋대로 해서 선포한 것으로 나를 유폐하고 협박하여 한 것" "이라고 그는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원통함은 이미 창경원 벚꽃놀이에 묻혀 있었다. 동물원의 가장 큰 비극은 전쟁 때 찾아왔다. 피난을 가야 했던 관계자들에게 정부는 창경원 동물 모두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실제로 베를린에서 동물원이 폭격을 맞아 사자가 도심을 슬렁거리는 류의 사례도 곳곳에 있었으니까. 사육사들은 울면서 사료에 독을 타 줬고 이를 먹은 짐승들은 밤새 고통스런 울음을 울다가 죽어갔다.

그렇게 수만 인파가 몰려들어 벚꽃 놀이를 한 지 60여 년..... 창경궁을 복원한다는 이유로 또 왜색이라는 이유로 수천 그루의 벚나무는 또 간단하게 잘려 나간다. 창경원에 있던 동물은 과천 대공원으로 일대 이사를 했다. 평양 다녀 온 부하가 북한 동물원에 감탄하는 얘기를 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무조건 우리가 더 큰 곳에 동물원을 지으라고 했고 그것이 오늘의 서울 어린이 대공원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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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써 창경원은 다시 대중의 소음으로부터 분리되어 번듯한 조용한 궁궐로 돌아갔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 일찌기 창경원이 입장을 불허했던 한 '미친놈'의 방문을 받는다. 자기 집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가족들은 그런 것도 아니라고 얘기했지만) 한 노인이 창경궁 정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지른 것이다. 이 일은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국보 1호 남대문은 끝내 그 불같은 악마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타오르고 말았다. 이래저래 기구한 운명의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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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의 야경이 좋을 계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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