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이름 지존파

in #kr6 years ago

1994년 9월 19일 지울 수 없는 이름, 지존파

1994년 9월 19일은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려던 사람들은 TV 화면 앞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지존파라는 이름의 조직이 사람들을 납치하여 돈을 뺏고 죽이고 소각로까지 설치하여 불태워 버렸다는 엽기적인 뉴스였다. ‘엽기’라는 말이 신문지상의 단어를 넘어서 구어(口語)로 활용된 것은 이때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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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으로 사람을 죽여 버렸고, 일종의 ‘살인 공장’을 차려두고 그를 실행에 옮겼던 그들의 출현은 온 나라를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른바 ‘사이코패스’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선천적이라기보다는 세상이 낳고 길러낸 살인마들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들을 체포했고 카톨릭 대부가 되었으며, 사형 집행 후 가족이 인도받기를 거부한 시신까지 거두었던 장본인인 경찰관도 그들은 “사이코패스가 절대로 아니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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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너무 가난하여 크레파스조차 챙겨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은 그런 저를 친구들 앞에서 모욕하고, 옷까지 벗긴 채 수업 시간 내내 알몸으로 복도에서 서 있게 했습니다. 수치스러웠습니다. 가난이 저주스러웠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그런 모욕을 주지 않았더라면 제가 오늘 이런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돈을 훔쳐서 준비물을 사 갔더니 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배운 대로 살았을 뿐입니다.”는 주범 김기환의 말은 일견 뻔뻔하지만, 차가운 진실의 창끝을 불쑥 내밀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우등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돈이 없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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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격렬한 분노를 표출했던 김현양이라는 이가 있었다. “나는 인간이 아니야. 더 못 죽인 게 한이다.”라고 느물거려 사람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던 사람. 그는 아버지의 폭력을 못이겨 집을 나온 어머니와 단 둘이 함께 살았다. 살기 위해서였던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였던지 어머니는 수시로 집에 남자를 끌어들였고 어린 시절의 그를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다. 체포 후 조사를 받을 때 형사가 그에게 8천원짜리 잡탕밥을 시켜 주었을 때, 그는 말한다. “이게 제가 세상에서 먹어 본 가장 비싼 밥이로군요.” 그 외에도 일가족이 모여앉아 “같이 죽어버리자”는 말이 나와 공포에 떨었던 어린 시절을 지녔던 이도 있고, “부모님께 효도 한 번 하기 위해” 범죄에 가담했다는 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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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가 세상에 드러난 이후 요란한 인간성 회복 캠페인이 벌어지는 가운데, 김종필은 묘한 소리를 했다. “평준화 교육 때문에 불그죽죽한 물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지존파들이 내보인 부자에 대한 적의까지도 ‘사상’의 눈길을 들이대고 싶었던 것일까. 이외에도 김종필은 지존파의 사회적 의미를 탈각시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한 공무원 교육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아마 지존파가 이 말을 들었더라면 그들은 결코 회개하지 않았을 것이고 탈옥을 감행하여 김종필에게 공기총을 겨눴을 것이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으로 건강하게 태어난 것, 기아와 내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에 태어나지 않았고, 한반도 중에서도 북한이 아닌 남한에 태어났다는 것, 이 세 가지에 고마워할 줄 알아야 건전한 사람이다. "

도무지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더 힘든 삶 속에서도 자신들한테 고분고분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고 살아가는 ‘건전한’ 사람들도 많은데 어떻게 그런 인간 이하의 짓을 저지를 수 있으며 그 책임을 사회에 돌리기까지 하다니! 지존파는 선천적인 악마일 뿐이었고 그래야 했다. 아프리카도 아닌 한반도에, 그것도 남한에 건강하게 태어났으면 됐지 뭘 더 바란단 말인가. 이 면면한 전통은 김길태 사건 때 추억의 보온공 안상수 선생이 한 말로 이어진다. “김길태같은 자가 태어난 것은 좌파교육 탓”이라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하면서 정말로 그 미래가 걱정되는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내 앞에서 가위를 휘두르며 덤볐던 초등학교 6학년 나이의 아이, 동물을 학교에서 사 와서 재미로 목을 부러뜨려 죽이던 아이, 사람을 죽여 보고 싶다고 웃으며 말하던 초등학교 3학년 아이..... 그러나 학교에서도 손 놓고 부모는 힘에 부치거나 나몰라라 하는 이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개입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우리는 언제 그들의 어떤 모습과 조우할지 모른다. 또 어떤 소식이 명절날 둘러앉은 우리 가족들의 얼굴을 창백하게 할 지 모른다.

지존파 김기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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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창끝이 삐죽...........................오우! 오늘도 산하님의 글과 함께 과거를 슬적 돌아봅니다.

감사합니다.... 역사를 돌아보는 건 거창하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은 일입니다 사실 ^^

지존파 ...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내요.

네 오랜만이시죠..... 팩트 하나는 지존파라는 그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경찰에서 붙은 이름이죠. 그들은 다른 이름을 썼다고 하더군요.

명절이 이제 하루 남았는데... 조용히 지나갔으면 하네요.....

어우 ...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죠.... 명절 뿐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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