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9월 9일 하이텔이라는 이름

in #kr2 months ago

1991년 9월 9일 하이텔이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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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신의 하이텔 서비스팀이 9일 과천전화국에서 정식 개통됐다...... 정보통신의 가정화와 대중화를 위해 보급되고 있는 하이텔 서비스는 매일경제신문사의 MEET가 제공하는 경제 정보를 비롯해 문화정보 학습정보 114 안내 등 다양한 내용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매일경제 1991년 9월 10일자) 1991년 9월 9일 하이텔 서비스 정식 출범을 알리는 기사다. 한국통신 사장 이하 1백명이 참석하여 이 ‘개통’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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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하이텔이 우리가 익히 알고 쓰던 하이텔이라고 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1991년 9월 9일 개시한 하이텔은 ‘개인용 컴퓨터를 통해 안방에서 각종 생활정보를 영상으로 꺼내보는’ (중앙일보 1991년 9월 10일) 비디오텍스 서비스였고 게시판과 동호회가 활약하는 PC통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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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PC통신의 원조라면 역시 한국경제신문사에서 구축했던 KETEL(케텔, 개털이라고도 읽는다)이었다. 전자게시판(큰마을), 전자우편, 채팅, 동호회(현재의 카페), 온라인 바둑 등 서비스를 제공했던 이 서비스에 선구자같은 ‘통신인’들이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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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공로(?) 가운데 하나라면 우리 말에 ‘님’이라는 호칭을 부활시킨 것이 있겠다.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하는 시조나 ‘님 계신 밤에 씨 뿌렸네’하는 노래 가사에 그치던 이 단어를 ‘씨’나 ‘군’, ‘양’처럼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호칭이 아닌 뭉뚱그렸지만 정중한 호칭으로서의 ‘님’ 말이다. 그런데 그 속사정은 조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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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통신의 초창기 소규모 비비에스(BBS) 서비스에서 활약했던 한국 피시통신의 선구자(?)들 간에 큰 싸움이 일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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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은 중년이었고 한명은 어렸지만 통신상이니 서로의 연배를 알 수 없었다. 결국 유서 깊은 대한민국만의 싸움 종목, "너 몇 살이야?"로 비화되는 것을 본 회원들이 온라인상에서는 서로를 '선생님'으로 부르자고 했다가 그건 좀 아니라는 의견을 거쳐 다시 '님'으로 조정된 것이 그 시초였다. 한 소규모 집단 내부의 약속이, 통신하는 사람들의 일반적 호칭으로 퍼져 나간 것이다. 은행이나 기타 영업장에서 아무개‘님’이라고 불리면 그 생각이 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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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사가 장한 일을 하긴 했으나 KETEL은 들어가는 돈은 많지만 들어오는 돈은 없는 신문사 입장에선 개털 되기 딱 좋은 서비스였다. 회원 수는 10만이 넘었는데 무료 서비스였으니 당연할 밖에. 유료화를 검토했지만 단일민간기업으로는 버거운 일이었다. 여기서 한국통신과 한국경제신문이 20억씩 투자하고 고려합섬 등 민간기업 12개가 60억을 투자해 ‘한국PC통신’을 설립한다. (1992년 4월 4일 한겨레 ) 한국PC통신은 통신 서비스의 이름을 기존의 케텔에서 ‘코텔’ (코리아 텔리서비스의 준말)로 바꾸고자 했는데 대주주 한국통신이 발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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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비스 중인 하이텔 단말기 3백만대를 무료 또는 임대로 전국에 뿌릴 계획이에요. 우리는 하이텔이라는 이름이 너무 좋아. 개털이라는 말 듣더니 이번엔 코털이오? 코텔이 뭐야 코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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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머니’를 장악한 집단의 의지를 꺾을 방법이 있나. 코텔의 수명은 단 두 달, 다시 이름이하이텔로 바뀐다. 케텔보다 훨씬 늦게 나왔고 PC통신 서비스도 아니었던 ‘하이텔’이 우리 PC통신의 한 장에 굵은 궁서체로 쓰여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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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이텔에 발을 디딘 것은 1993년 봄 어간이었다. 당시 또 하나의 PC통신 경로 천리안도 기웃거렸는데 거기는 종량제, 즉 쓰는 만큼 돈을 내야 한다는 바람에 범접하지도 못했고 정액제를 실시하던 하이텔에 엉덩이를 들이밀었던 것이다. 파란 바탕의 접속화면, atdt 157 (뒤에는 01410)을 수십 번 두들긴 뒤 (처음에는 정말 접속이 어려웠다) 별안간 띠 디 디..... 그리고 우주선에서 들려나오는 듯한 치이이이이익 소리를 들으며 오밤중에 환호했던 기억은 다시 톺아 보아도 우습고도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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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입문은 다소 빨랐으나 컴맹은 타고나는 것이라 모든 것이 서툴렀고 하나 하나 물어 봐야 했다. 민망한 실수도 많았다. 동호회에 들어가 채팅을 하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 왔다. ‘귓속말’이었다. 채팅방 속에서 특정인에게만 말을 거는 기능. ‘[귓속말] 형민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이 기능을 몰랐다. 이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다 보이는 가운데 ‘예의상’ 둘이 대화하는 걸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답을 보냈다. 일일이 괄호 열고 귓속말 괄호 닫고 네 아무개님 안녕하세요. 두어 번 그렇게 하자 채팅방의 나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귀.... 귓속말 하는데요.” 그리고 채팅창에는 우꺄갸꺄 우하하하 데굴데굴 등이 한 페이지가 올라왔고 나에게 귓속말을 걸었던 여자는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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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은 나에게 있어 인간관계의 확장이었다. 한국의 3대 인연(?)이라 할 혈연 지연 학연에서 나는 풍성하지 못한 쪽이었다. 원적이 함경도인 피난민의 자식으로 친가쪽은 죄 이민을 떠나서 친가쪽 ‘혈연’은 국내에 거의 없었고 지연이라고 해 봐야 부산을 떠나 서울 와서 동문회에서 좀 안 좋은 경험 겪고는 멀리하게 됐고 부산쪽 친구들과도 거의 연락이 끊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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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차에 하이텔이라는 공간은 그 이전이라면 전혀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과 만나게 해 주었고 상상해 보지 못한 경험들을 하게 해 주었다. 목포를 떠나 본 적 없는 목포 사람들과 목포에 가 본 적 없는 내가 허물없이 어울리고 일면식도 없던 사람의 차를 타고 경포대에 놀러 가는 일이 가능했고 실제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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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몰려들고 통신 공간이 정치적 연대와 홍보, 선동의 공간으로도 활용되며서 웃기는 일도 벌어졌다. 천리안의 현대철학동호회 시삽이었던 이가 누군가 올린 ‘공산당 선언’ 게시물로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갔을 때 고만고만한 성격의 동호회 바른통신모임 ‘문예분과 간사’였던 나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랍쇼. 우리 방에만 해도 시뻘건(?) 게시물들이 꽤 되는데 영한대역으로까지 합법출판돼 있던 ‘공산당 선언’을 잡아가면 나는 어떡하라고. 며칠 뒤 술자리에서 논의(?)를 하는데 한 녀석이 물어 왔다. “너 음식 뭐 좋아하냐?” “왜?” “사식 넣어 주게” “이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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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이 이적단체로 뜬 것은 90년대도 중반, 피시통신 후발업체였던 나우누리에 한총련 CUG(회원 전용 게시판)가 개설됐다. 그런데 경찰이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나우누리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한총련 방이 몇호실이야?” 나우누리 직원은 갑자기 들이닥친 이 기세등등한 컴맹들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다. 도대체 어떻게 설명을 하냔 말이다. 이 컴맹들에게. 그런 형국이었으니 시국 전과자들이 득실거렸던 ‘바른통신모임’ 문화예술분과 ‘간사’라면 조직도에 이름 올리기 얼마나 좋아. 하는 일이라곤 ‘전 성원의 술꾼화’ ‘술값의 외상화’ ‘외상의 백지화’ ‘전 국토의 술자리화’ 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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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통신은 좀 길었던 계절풍처럼, 대략 10년 동안 대한민국에 휘몰아친 뒤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그 추억과 역사의 그림자는 꽤 길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촛불시위’는 케텔 유료화에 반대하는 통신인들의 촛불시위였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허둥대던 언론사들보다 먼저 피해 상황을 집계하고 자원봉사단을 조직한 것도 PC통신의 힘이었다. 고문 피해자 문국진씨가 피해를 호소하고 대중의 분노를 이끌어낸 것도 하이텔 공간이었으며 하이텔의 ‘플라자’ 여론은 언론의 주목을 받을 만큼 치열하고도 풍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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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저러니 해도 하이텔에게 내가 가장 고마운 것은 아내를 만나게 해 주었다는 사실이겠다. 하이텔은 ‘전자메일’을 처음 가르쳐 준 곳이기도 하다. 1994년 동호회 모임이 맹랑하게도 12월 24일경 잡혔다. 연인 있는 사람들은 오지 말라는 얘기냐는 항변이 폭발했지만 당시 솔로였음이 분명한 운영진은 “그러시든가”로 일관했고 그 모임에 가던 길에 그저 선후배로 지내던 아내에게 사귀어 보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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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고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내고 다음 날 아침, 하이텔 메일이 와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던 순간 나는 환호했다. “대답은 Yes , 형 휘파람을 부세요.” 지금도 아내의 핸드폰에는 내가 ‘형’으로 저장돼 있다. 이만하면 하이텔의 공식적 출범일 1991년 9월 9일을 경하할 까닭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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