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황혼 VI] 공교육은 정말로 필요할까.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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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rothbardianism 입니다. 오늘 스팀이랑 스팀달러가 많이 올라주었네요. 뭐, 물론 ATH(All Time High)때 가격보다야 여전히 엄~~~청 낮은 가격이지만, 저는 스팀이 $1까지 가도 상관 없다는 주의 입니다! 이건 최소한 글을 쓰면 그에 따른 보상을 조금이라도 주니까 그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물론 오르면 더 좋겠죠?

자 오늘 주제는 역시 또 민감한 주제이긴 합니다만(어떻게 우상의 황혼을 다루는데, 민감하지 않겠냐마는..), 꼭 다뤄야할, 그리고 생각해 봐야할 주제여서 이렇게 가지고 나왔습니다.

바로 공교육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교육이라는 것은 21세기 들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교육학자 코리든 아일랜드(Corydon Ireland)에 의하면, 교육이야말로 부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도구라고 이야기 했고요. 플라톤 역시 교육은 '이상적인 & 성숙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the republic). 이 때문에 미국에선 1918년에 의무교육을 정책화 시키게 됩니다. (Altenbaugh, Richard J. Historical Dictionary of American Education pp.96) 그런데도 많은 학자들(Richard Coley and Bruce Baker외 다수)은 공교육이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기회를 부여한다라는 사실은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는 미국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문제입니다. 10대 학생들을 학교에 가둬두고 열시간이 넘게 그들에게 막대한 양의 정보를 집어넣는 행위는, 절대로 성공적인 교육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필자는 이런 교육의 문제를 시장에 맡겨두면 어떨까 합니다.

교육을 받을 권리?

사실 많은 공교육 옹호론자들은, 모두가 교육을 받을 권리(Right to be educated)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퓰리처 상에 빛나는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도 교육이 성폭행, 조기임신, 가난을 해결하는 아주 중요한 도구라고 주장했고, 이 때문에 교육은 반드시 권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해서, 꼭 정부가 그 교육이라는 것을 해줘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 글에 자주 나옵니다만, 라스바드는 교육이라는 것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중산층의 학교 숭배에는 중대한 오류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학교 교육과 일반 교육을 혼동하는 것이다. 교육은 평생에 걸친 배움의 과정이며, 배움은 학교에서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어린이들이 놀 때나, 부모나 친구들의 말을 들을 때, 그리고 신문을 읽을 때나 직장에서 일할 때 등 어느 때나 교육이 이루어진다. 학교 교육은 전체 교육 과정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고급 수준의 체계적인 내용을 가르칠 때에나 적합하다(새로운 자유를 찾아서, 머레이 라스바드 pp.193).

사실 배움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그 권리를 공교육을 옹호할 때 쓸 수 없다는 것이죠. 교육이라는 것은 권리로 정의하는 것 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 정도라고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불구하고 만약에 모든 인류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의무교육(Compulsory education)과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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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신-좌파의 비평가 폴 굿먼 입니다)

만약 모든 아이들이 자신이 배우고자 하는 것, 관심이 있는 것을 배울 권리가 있다면, 의무교육은 그 권리를 보호해주거나 보장해준다는 개념보다는 오히려 침해(aggression)의 개념으로 봐야 더 합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무교육은 다양한 것들을 선호하고 좋아하는 개인들을 강제적으로 묶어서 정해진 커리큘럼대로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시장주의자들만의 의견이 아닙니다. 미국의 저명한 신-좌파(New Left)인 존 맥더모트(John McDemott)나 폴 굿먼(Paul Goodman)등은 공교육을 학교 교육에 관심이 없는 이들을 강제로 몰아넣는 감옥과 같은 것으로 묘사했습니다(Goodman, Paul, and Taylor Stoehr. The Paul Goodman Reader. pp.41)

만약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가정을 해봐도, 공교육은 학교 교육을 택하지 않고 다른 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개인들의 선택권을 강제로 빼앗은 침해행위(Aggression)로 간주되게 됩니다. 즉,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공교육은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교육을 담당하는 관료들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예를 들어 전통적 교육을 택할 것인가, 진보적 교육을 택할 것인가? 자유 기업적 교육을 택할 것인가, 평등교육을 택할 것인가? 인문 교육을 택할 것인가, 직업 교육을 택할 것인가?[...]중요한 것은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그리고 그 결정이 다수의 뜻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언제나 상당수 부모와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통적 교육을 택하게 된면, 진보적 성향의 학부모들은 낭패를 보게 될 것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머레이 라스바드, 새로운 자유를 찾아서 pp.203-204).

대안은 없을까, 바우쳐 제도 그러나.

이런 강제적인 공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20세기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시카고 학파의 대부인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dman)은, 바우쳐 제도를 제안했습니다. 정부는 이 제도 속에서 학부모에게 바우쳐(쿠폰)를 제공하고, 그 바우쳐를 학교에 지불하는 방식으로 자기 자식이 교육받을 기관을 선택할 자유를 보장해 준다면, 최소한 강제로 원하지 않는 것들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Friedman, Milton. Capitalism and Freedom. Chicago: U of Chicago, 1962.pp85-107).

그렇지만 바우쳐 제도 아래에서도 모든 사람들이(납세자들)교육에 대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점이 걸리게 되는데요. 루 락웰(Lew Rockwell)은 그의 에세이 "What If Public Schools Were Abolished?" 에서 사교육과 공교육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시사했습니다:

공교육은 그 비용을 전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걷어서 마련한다. 반면에 사교육은 그 기관에 자녀를 보내려 하는 학부모의 돈 만으로 운영된다.

즉, 아이들을 사교육 기관에 보내고자 하는 학부모의 경우는 이중 지불의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죠. 자신들의 세금을 공교육에 사용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사교육 기관에 돈을 추가적으로 투자하게 됩니다. 우리는 절대로 남의돈을 강제로 걷어서 내 교육비가 더 싸진다고 믿는것을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프리드먼의 바우쳐 제도도 온전한 대안책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 사교육이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을 제공합니까?

우리는 여태까지 공교육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부도덕한 것인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겁니다. 만약 시장이 교육이라는 용역을 제공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교육을 못 받는다는 겁니다.하지만 이런 문제는 "어떻게 시장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을 제공합니까?" 같은 종류의 질문과 일맥상통 합니다. 수십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전화기는 이제 모든 사람들이 갖는 재화가 되었습니다. 정부의 정책이나, 정부가 유통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경쟁을 했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려는 노력 때문에 우리는 비로소 저렴한 가격에 스마트폰을 얻게 된 것이죠.

그러면 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시죠. 그런데 이코노미스트지에서 흥미로운 기사가 나왔습니다. 정부가 실패한 교육 분야에서 사기업이 진출하기 시작했고, 지금 나이지리아나 인도같은 제 3세계에서 사교육이 흥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단 돈 $10달러에 제공을 하고있어, 화제가 되었죠(The Economist. "Learning Unleashed." The Economist. The Economist Newspaper).

그럼 왜 한국에선 사교육이 비싸죠?

아주 훌륭한 질문입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기업가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교육이란 용역을 제공할 동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학교는 사교육 기관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무기가 있습니다: 세금으로 지원받고, 적자가 나더라도 도산되지 않는다는 사실. 이러한 불공평한 경쟁(Unfair Competition)을 진행하니 기업가들이 아무리 저렴한 가격으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표면상 공짜 교육처럼 보이는 공교육이랑 경쟁이 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데이비드 보아즈(David Boaz)가 지적했듯, 세금으로 이미 공교육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 가정이 사교육으로 또 비용을 지불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 사교육을 원한다 할지라도 이미 강제로 지불해버린 공교육에 자기의 자녀들을 보낼 확률이 높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Boaz, David. Libertarianism: A Primer. pp24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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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지 그리고 내 이야기.

사실 가난한 사람에게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가난한 이웃을, 친구를 돕는 것입니다. 이건 몇 달 전에 있었던 이야기 인데. 저는 오전-오후에는 직장에, 6시에 퇴근하고 나서는 과외를 하고있습니다(투잡이죠). 그런데 저번 달, 제 제자 한 명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더이상 저에게 과외를 받을 수 없다고 저한테 이야기 하더군요. 그래서 그 친구가 고3이기도 하고, 워낙 가능성이 다분한 친구라서 공짜로 과외를 이어나가기로 했고 지금도 계속 매주마다 4시간씩 과외를 해주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제가 그렇게 자발적으로 도와주니까 그 학생도 그 전 보다 더 열심히 따라주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3월 모의고사의 성적이 무려 두 배나 올랐습니다. 선생으로써 기쁜 일이죠. 저는 제 삶도 그렇게 많이 부유하지는 않습니다만, 최대한 제가 배풀 수 있는 것들은 베푸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것이 자유지선주의자(Libertarian)로써 제가 받아들인 삶의 신조이기 때문이죠. 제가 주장하는 삶이기 때문에 주장하는 저 부터 이렇게 살아야 마땅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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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부탁하건데, 무분별한 정부의 복지를 얘기하기 이전에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이웃과 친구에게 내가 베풀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이상입니다.

즐겁게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흥미롭게 읽으셨다면 follow & Upvote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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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tarian란 단어가 생소해서 찾아보았네요. 앞으로 찬찬히 공부해봐야 겠네요.

저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헛점이 '단수결'이고 봅니다.
극단적 비유지만 51%로의 의견을 49%의 의견이 무시된채 마치 100%의 의견처럼 되니까요.
공교육도 그런류의 형태가 아닐까요? 모두가 공교육을 원하지 않지만 다수가 찬성한다거나 그 다수결의 표를 받은 정부가 원하는 방향이란 이유로 나머지는 끌려다녀야 겠지요.
그렇다고 다른 사교육을 찾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사교육이라고 해봐야 공교육이 원하는 성적이라는 걸 잘 받기위한 과외교육 위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더구나 @ rothbardianism 님 말대로 사교육시장은 돈을 벌기위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공할 커리큘럼따위는 만들지 않죠. 물론 진짜 참교육을 위해 경제적인 이익을 버리시고 헌신하시는 소수의 분들에게는 예외되는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학생을 자식을 두고 있는 아빠라 그런지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하게 되는 글이네요. 저도 사실은 공교육이 싫었지만 어쩔수 없이 공교육을 시키고 있으니까요.

팔로우.보팅하고 갑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사교육 시장은 돈을 벌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에게까지 교육을 제공할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여럿이 모이면 큰 고객이 되기 때문이죠. 핸드폰 시장에서 공짜폰, 보급형 핸드폰을 만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단지 지금 사교육이 비싼 이유는 공교육이 세금과 보조금을 뒤에 업고 사교육보다 더 싼 교육을 제공하는 것 처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르네요.
핸드폰은 다수가 갖고 싶은 위시리스트였고 필요에 의해 보급되었지만 한국교육의 풍토가 잘못 자리잡아 수단으로서 이해되는 측면이 많고 배우는 학생 대부분은 공부하는 자체에 거부감을 갖게 만들어버렸으니까요.
다만, 최근 보이는 운동이나 취미로서의 교육쪽은 경제적 사정이 좋아진 탓인지 많이 자발적으로 보급되면서 경쟁이 붙어 저렴해지고 있더군요. 예전 가격이라면 질적으로 향상된 교육을 제공하더군요.
이처럼 교육에 참여 또는 요구하는 자발적인 요인이 없다면 힘들다는게 제 의견입니다.
사견이니 그냥 가볍게 봐주세요.

네. 선생님 의견 존중합니다. 전 아마 공교육이 사라지면 모든 사람들이 국영수사과를 다 공부하지 않아도 취업이 가능한 세상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ㅎㅎ

제가 선생님은 아니고요.ㅎㅎ
전 공교육은 고등교육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이후에 더 필요한 사람만 대학교를 가거나 그외 사람은 고등교육이후 대부분이 취업한다고 가정하면 거기서 더 필요한 사람은 필요에의해 즉, 필요성 또는 의지로 더 깊은 교육을 위해 공부를 하겠죠. 스스로하는 공부가 되겠지요. 그게 진정한 교육이고요. 그럴려면 그런 교육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고 그런 시스템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고등교육까지만 공교육이 이루어 지겠죠. 이후는 사교육이 이들의 욕구를 채워주면서 자연스럽게 순기능의 사교육시장이 만들어 지겠죠.
꿈같은 이야기네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지만 이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요즘 애들이 너무 불쌍해요.

네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도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밤까지 진행되는 야자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짱짱맨 호출로 왔습니다!
한주 수고하세요

안녕하세요! 늘 이렇게 후원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항상 새로운 시각을 여는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제 원래 입장은, 교육을 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공교육을 지지하지는 않지만요. 조금 혼란스럽네요.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게 하되 공교육을 벗어나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법대로 원하는 내용을 (사교육이라 할지라도) 배우면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의무교육을 성취했다는 기준은 무엇으로 해야 하는지가 의문이 되네요. 의무교육을 없애자니, 과연 교육이 일어날지도 살짝 두렵기도 하네요. 공교육 없이 한 공동체가 하나로 뭉쳐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의문이 들기도 하네요.
하긴, 공교육이라고 존재했던 교육은 죄다 국가에 이익만을 위했으니 없어져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진보를 위한 사상가는 대부분 사교육에 더 큰 영향을 받지 않았나요?

  • 공교육이 없이 사교육만으로 교육이 이뤄지면, 부유층끼리의 교육장이 열리는 게 더 심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공교육이나 사교육이나 뭘 쓰든지 간에 어차피 존재하는 문제니 신경을 안 써도 될까요?

사실 더 부유한 층들이 더 좋은 지식을 공유하는 것은 공교육이 있는 사회여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것은 공교육,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떠나서 더 높은 계급은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죠. 공교육이 없어지면 대학교마다 기준이 있을 겁니다. 인도계 수학천재 라자누만의 경우 초중고를 나오지 않고도 바로 옥스퍼드 대학교 수학과에 들어갔죠. 모두가 라자누만같이 천재라는 것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학교는 공교육을 마쳤다는 기준으로 인재를 뽑는 것이 아님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공교육을 폐지하여, 객관적인 기준이 사라져도 대학마다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낼 겁니다. 오히려 더 합리적인 기준들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대학교를 굳이 가지 않아도 전문성을 갖추는 사회가 도래하겠죠. 제가 배운 경제학적&철학적 지식들은 대부분 제가 독학한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의무교육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배움을 필요로 하게 된 것도,자발적으로 공부를 하게 된 것도 다 외부적인 요인인 것이 컸습니다.

굳이 공부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공부를 시키지 않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금 더 많은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겠죠 다양한 분야에요.

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좋은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새로운 기준이 만들어지면 좋겠네요. 정말 풍성한 사회가 될 텐데 말이에요. 이렇게 배우고 싶은 사람과 저렇게 배우고 싶은 사람은 물론이고, 이렇게 살고자 하는 사람과 저렇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진대 이게 통용되지 못하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역시, 이상향은 이상향에서 벗어날 수 없나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사람들에게 그 이상향에 대해서 말해주어야 합니다. 이게 옳다고. 이게 정의라고.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야만 한다고 말이죠. 그래야 조금이라도 그 방향으로 갈테니까요..

로스님 글 정말 감탄하면서 읽어요.
그 나이에 이렇게나 많은 배움을 나눌 수 있다니, 존경심을 감추기가 힘드네요 :)

어휴 아닙니다. 제 글이 은주님이 마음을 정리하시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 뿐이죠 :)

쉬는 동안 그림도 그리고 니체랑 아들러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네요.
근데 벌써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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