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자의 Simple Story (첫 미팅의 추억 = 부제: 오래전 그날...)

in #kr7 years ago (edited)

고등학생이 된 나는 마치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2차 성징은 이미 중학교때 끝나긴 했지만 기분 탓인지 키도 조금 커 진것 같고

가슴도 더 봉긋해진것 같은 느낌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학교 가기전 나의 아침은 분주했다.

긴머리를 정성스레 감고 말리고 긴생머리를 휘날리며 등교하는 일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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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학교가 보이기 100m전 골목에 숨어 머리를 양갈래로 따고

한껏 접어올렸던 스커트는 다시 월남치마처럼 내려 입어야했지만... 그일 조차 신났다.

그때쯤 되니 자연스레 이성에 대한 관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점심 시간이 되면 남자친구가 있다는 아이들이 필두가 되어

삼삼오오 모여 연애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그시절 우리의 연애 이야기래봤자 만나서 영화보고 노래방 가고 했던게 다인데 왜 그리 재미있던지...

그런 평화로운 날들속에 나에게도 드디어 가슴 떨리는 첫 미팅 제안이 들어왔다.

어찌나 가슴이 두근거리던지...

5:5 미팅으로 약속을 정하고 토요일 하교 후에 만나기로 했다.

만남의 장소는 다소 어색한 한강 ㅋㅋㅋ (장소보시며 느끼셨겠지만 정말 순박하고 순진한 고딩들이었답니다. ㅎㅎ)

머리에 젤로 잔뜩 멋을 낸 남자녀석 5명과

베이비 파우더를 얼마나 쳐발쳐발 했는지 밀가루떡으로 변신한 여학생 5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들 집이 가까워 사복을 챙겨 입고 나왔지만

당시 이사로 인해 집이 멀었던 나는 교복 스커트에 상의만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70년대도 아니고 밀리니엄 시대를 사는 청소년들이

왜 한강 잔디밭에 둥그렇게 둘러앉을 생각을 했을까...

조금만 더 그대로 있다간 수건돌리기라도 해야 할때쯤 한 친구가 파트너를 정하자고 했다.

그렇게 여학생들은 각자 가지고 있던 소지품을 내놓고 파트너가 정해지기 기다렸다.

내 생애 첫 미팅에서 첫 파트너 선정...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 해대기 시작했다.

부끄러움에 제대로 얼굴도 들지 못하고 힐끗거리며 탐색전에 들어갔을때

아빠 시계를 차고 나왔는지 유난히 번쩍번쩍 거리던 금시계가 영 거슬렸던 한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스타일 하고는....'

제발 저 녀석만 안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때쯤

그 녀석은 다섯가지 물건중 소중한 나의 챕스틱을 집어들었다.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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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가을에 문턱에 넘어설때라 아직 채 식지않은 여름의 열기와

번쩍번쩍 금시계의 충격으로 인해 나는 녹초가 되어갔다.

일단 커플끼리 두어시간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만나기로 했다.

대체 한강에서 어디서 두어시간 시간을 보낸단 말인가....

그렇게 다들 흩어져 우리 둘이 남게 되었고 그 남학생이 나에게 처음으로 한말은 '뭐할까?' 였다.

딱히 하고 싶은것도 없었고 더위에 지친 나는 말도 없이 눈앞에 보이는 63빌딩을 손으로 가르켰다.

다행히 그녀석은 내 의견을 수렴해 주었고 우리는 63빌딩으로 향했다.

쭈빗쭈빗 뭘할까 살피던 그 녀석은 아이맥스 영화를 보자며 재빨리 티켓을 사러갔다.

다행히도 센스는 있는 녀석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3D 영화정도 되려나 일반 영화와는 달리 30분정도 상영했던것 같다.

그렇게 둘은 또 말없이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는 동안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돼서 친구들의 연락이 빗발쳤고

다시 모인 아이들은 비싼 아이멕스 영화를 봤냐며 부르조아 라며 놀려대기 시작했다.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대학로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당시 돈가스도 팔고 맥주도 파는 뭐 그런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호기 좋게 들어갔지만 입구에 들어가자 마자 흔히 말하는 뺀찌를 당했다.

처음엔 우리가 너무 어려보여서 그런가보다 하고 다른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뒤로 2,3번째도 모두 뺀찌를 당했다.

4번째 식당에 들어섰을때 술 먹을건도 아닌데 왜 안되냐고 했더니 종업원이 나를 보며

교복 입고 출입할수 없다고 대학로 어딜 가도 마찬가지일거라고 했다.

그제서야 우리가 왜 이유 모를 뺀찌를 당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8명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고 금시계 그녀석만이 나를 위로 했다.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어찌나 창피하고 눈물이 나던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결국은 분식점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우리는 헤어졌고

그렇게 내 생애 첫 미팅은 나에게 깊은 쪽팔림을 남기고 끝이났다.

세월이 흐른뒤에도 술자리에서 친구들은 늘 그 이야기를 안주삼아 이야기를 하곤했다. 니가 교복만 벗고 나왔더라면...

그러면 어김없이 2차 노래방에 가서 친구들은 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며 나에게 노래 한곡을 선사했다.

바로...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

첫소절

교복을 벗고~ 이 한소절을 부르고 모두들 한마음이 돼서 한바탕 웃었던 그날들...

출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이

잊고 지냈던 나의 소중한 추억을 생각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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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트케~~ 그래도 떨려요
아 .... 언제인가 첫미팅이 해보긴 했나?
으 떨려 ㅎㅎ

ㅎㅎㅎ 처음이라는게 가져다 주는 묘한 매력이 있는것 같아요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도 떨림이 계속 되는걸 보면요 ^^

난독증이 있어 긴글 잘 안읽는데, 재미있게 잘 보고 가요~ 또다른 추억을 듣고 싶네요~ 연재처럼 들려주시길 바래요~~

앗 부끄럽지만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연재를 할수 있는 실력이 안되는데 너무 잘 봐주셨어요 감사합니다~ ^^

한순간의 쪽팔림으로 소중한 추억을
친구분들과 공유하셨네요ㅎㅎ
지금의 운종신님 이미지와는 달리
노래에는 여전히 아련한 기억이 많죠!!
팔로&업봇 드리고 갑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지나고 보니 소중한 추억이 됐더라고요~ ^^ 가끔 이 노래 들으면 자동 추억 소환이에요 ^^
저도 방문 갈게요 감사합니다~ 자주 뵈어요~ ^^

'오래전 그날' 저도 윤종신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 제 베스트 3안에 드는 노래입니다 :) 윤종신 노래를 들으면 왠지모르게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ㅎㅎ 노래에 깃드는 추억이란 이런 것이군요~ 아련아련

ㅎㅎㅎ 전 처음엔 그 노래만 나오면 얼굴이 화끈거리더라고요~ 지금에서야 이렇게 웃지만요 ㅎㅎ

그쵸! 교복 입고는 못들어가죵!!ㅎㅎ
근데 밀레니엄 시대에 역행하는 순수함이 묻어나는 소개팅이었군요
글 재미나게 잘 보고갔습니다. 이런 글 좋네요 ㅎㅎ

ㅎㅎㅎ 그것도 모르고 멍청한건지 순진한건지 단체로 10명이 대학로 길바닥에서 ㅎㅎㅎ 순수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진땀이 나네요 헤헷~ ^^

ㅋㅋㅋ재밌어요. 이런 신변잡기식의 가벼운 경수필 엄청 좋아합니다!! 또 다른 것도 써주세요ㅋㅋ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걱정하며 올렸는데 말이에요~ ㅎㅎ 다른글은 열심히 고민해보겠습다~ ^^

금시계녀석은 로사님이 맘에 들었나본데요 :)
그나저나.저랑 비슷한 시대를 살아오신것같아요
이야기해주신것들이 너무 공감되거든요 ㅋ
저 청소년일때는 별로 갈데가없어서 툭하면 한강이였거든요
컵라면 하나먹고. 뭐하고놀았나모르겠지만ㅋ

아침드라마처럼 그아이랑도 우리 대학가서 만나하고 시작도 하지 않은채 헤어졌어요 ㅎㅎ
지금 생각해도 손발이 없어질것 같아요~~ ㅎㅎ 하지만 즐거운 추억이긴 해요~ :) s292153s님 오늘도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 매일매일 로사님 보러올꺼에요 :)

재미있게 잘 읽구 가요 ^^ 저도 오래전 그날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 많이들 좋아하시는 노래더라고요~ :)

하하하 뺀찌라는말 오랜만에 들어봐요^^ 추억이 새록새록ㅋㅋ 그때가 좋았었던건 좋은 추억이 있어서 그런듯싶어요! 아련아련해지네요 하하

ㅋㅋㅋ 뺀찌라는 말 말고는 맛이 살지 않을듯해요 ㅎㅎ 추억이 있어 오늘이 좋은가봐요~~

라디오 사연 같아요.
옛추억을 떠올리게 하면서.ㅎㅎ
옛날 미팅 시절도 생각나고.
첫사랑도 생각이 나고. 흠흠. 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 지금 생각해도 낯뜨거운 추억이에요~~
첫사랑이랑 결혼하신거죠?? 우리 그렇게 마무리 해요~ ㅎㅎㅎ

Beautiful introductory post. Welcome to Steemit and now following you.

@ros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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