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역시 오늘도

in #kr7 years ago (edited)


역시 오늘도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일상에서의 죽음은 그 속내를 모르다 항상 마지막에 이빨을 드러낸다. 사람의 생(生)과 사(死)는 동면의 양면과 같아서, 한쪽 면에서 다른 한쪽 면으로 뒤집기는 참 어렵지만, 한번 뒤집히게 되는 임계점을 지나는 순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진다. 이번의 사연은 그러한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야기를 듣고, 나의 경험을 약간 이야기하는 것 뿐이었다. 세상에 서럽지 않은 죽음은 없는 것이다. 모두의 죽음은 소중하다.

최근 도서관에서 노화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빌렸다. 5판의 서문에 아래와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제1판에서 내가 대수롭지 않게 논의했던 노안이나 사람 이름 기억하기의 어려움과 같은 현상들을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다. (중략) '죽음, 임종, 그리고 사별'이라는 새로운 장도 추가했다. (중략) 지금껏 그 주제를 다루는 데 마음의 저항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주제가 노화 과정의 일부분으로 다루어져야하는 것인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노화에 있어,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결국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5판의 개정 방향은 적절한 것이다.

어떠한 분야에 관심이 생길 때, 나는 교양 서적 대신 대학 교재와 같은 책을 본다. 나는 언제나 교양 서적의 과도한 요약으로 인한 비약과 생략을 경계하고, 학자의 양심과 통찰에 따라 서술된 근거 중심의 (evidence-based) 정리된 지식을 엿보는 것을 선호한다. 내가 이번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이제는 서서히 늙어가시는 우리네 부모님을 바라보며, (나는 아직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나보다 더 어른인 분들의 마음을 헤아릴 때가 있었나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개개인의 삶에 대한 역동 뿐만 아니라,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변화에 대한 직면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적으로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죽음에 더 가까울 것이다. 죽음은 나이를 불문하고 불쑥 찾아오는 성질이 있지만, 경향으로만 보면 그렇다. 노화가 삶에 미치는 영향이 존재하듯이, 노화가 죽음에 미치는 영향 - 더 나아가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이해하는 죽음과 어른들이 이해하는 죽음은 그 의미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후자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다.

죽음의 의미를 애써 이해하려고 노력해본다. 하지만 쉬이 되지 않는다. 장례식장은 내가 간접적으로나마 죽음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고, 죽음을 먼저 겪으신 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소중한 이를 잃은 남겨진 사람들의 울음들이 먹먹하게 차오르는 공간이다. 그래서 내가 장례식장을 방문할 때에는 항상 진지하다. 학생 시절, 나는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가야한다는 이유로 필참으로 여겨지던 단체 행사를 불참한 단 1명의 학생이었다. 거대한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력하다. 무력함 앞에서 백마디 피상적인 말이나 점을 찍는 듯한 방문은 사실 있으나 마나다. 무력함을 잠시, 하지만 같이 마주하고 돌아왔다. 나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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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은 안 가도 장례식은 꼭 간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는데,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조금 다른 얘긴데...나이가 많이 든 분들이 동세대 분들의 죽음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자기의 과거를 목격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큰 상실감이라고 하더군요.

아직 동세대 사람들의 일련의 죽음을 마주한 적이 없어, 감히 나이 드신 분들께서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감정은 단지 짐작만 할 뿐입니다. 자신의 과거를 목격한 사람들은 결국 자신 세계의 기둥들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그러한 기둥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 세계가 붕괴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결국 자신의 과거를, 오롯이 자신만이 기억하고 회상하게 된다면, 그 쓸쓸한 느낌은 어찌해야 좋은 것일까요. 앞선 세대를 기억해야하는 사람이 결국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되면 그 중압감 또한 역시 저로서는 짐작만 할 뿐입니다.

의학, 과학이 아무리 진보해도 노화, 죽음을 조금 늦추기만 할 뿐 막긴 힘들어 보입니다. 제 아무리 발버둥쳐도 죽음 앞에서 무력하네요. 죽음이 나에게도 오고 있다는 걸 크게 한번 아프고 나서 알게 됐습니다.

동감합니다. 저도 문턱에 한번 있던 적이 있어서, 항상 잊어버리려 노력합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가끔씩 무력감을 일깨워주곤 하더군요. 특히 건강한 상태로서의 삶 - 이른바 건강 수명 - 의 경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지요.

저희 어머님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많이 우셨는데 그 이유가 다른게 아니라.. 이제 내가 마지막 세대가 되고 있다는 서러움 때문이었다고 넌지시 말해주시더군요.

인생은 늙고 죽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면도 없는건 아닙니다만, 사실 솔직히 늙고 죽는게 싫고 두렵습니다

저도 늙고 죽는 것이 참 두렵습니다. 저는 제가 겪고 왔고 겪고 있는 이삽심대의 나날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의 느낌을 잊어버리지 않고자 노력합니다. '마지막' 세대라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말일까요. 저 역시 부모님 세대들의 상실감을 아직은 짐작만 할 뿐입니다. 짐작이 확신으로 변하게 되는 순간이 무척 무섭고 두렵습니다. 차라리 파우스트가 행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씩 나이 들면서 장례식장 갈 일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사람과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죽음이 삶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생각보다 짙은 것 같습니다. 또 생각보다 옅은 것 같기도 하고요. 토요일 오후에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네요.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죽음을 마주하는 느슨한 연대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림자의 색깔은 명징하게 드러나기 전까지 우리의 마음 먹기에 따라 조절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어진 삶을 걸어나가는 것 뿐이겠지요. 주말 행복한 시간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같이 장례식장에 와서 자신들의 일같이 밤을 지새며 함께 해준 친구들 덕에 힘을 얻은 기억이 있습니다. @qrwerq님의 마음도 잘 전달되었을 겁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더 소중한 것이며 노화를 통해 점차 죽음에 가까워졌음 알고 이에 대비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젊은 그대로 모습으로 어느날 죽는 거라면 죽음을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고 살테니까요. 노화의 심리학이라 대학교재를 읽으시다니 대단한 부지런함입니다. 읽어내야할 책이 점점 쌓여가는 입장에서 엄두도 안나네요. ^^;;

든든한 친구들을 두셨군요. 아마 아버님 가시는 길도 외로우시지는 않으셨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리고 항상 지켜보고 계시고 지켜주신다고 믿습니다.

지금 흘러가는 시간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계속해서 기억하고 기록하려고 노력합니다. 결국 늙겠지만, 그 때까지 후회가 좀 더 덜 남도록 살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읽을 책은 저도 쌓여만 가고 있고, 사실 우리의 우선순위에 따라 어떤 것을 읽을지 '선택'하는 것이겠지요. 누구든 자신이 정말로 관심가는 분야에 대해서는 '대학교재'를 넘어선 노력을 행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제가 하는 활동들 또한 대단한 부지런함까지는 아닌 것 같아서, 좋게 봐주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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