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룸 14. <범죄도시>, 흥행으로 보는 대중의 '크라임 포비아'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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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room.14(film)


<범죄도시>, 흥행으로 보는 대중의 '크라임 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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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한계를 뛰어넘은 강력범죄들이 점차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사진 : 다음 영화 <범죄도시>(2017)


1. 뜻밖의 흥행과 대중의 크라임 포비아


나쁜 놈들은 때리든 죽이든 잡아 처넣어야한다. 간단명료한 표제 아래 깡패보다 더 깡패 같은 형사가 사상 최악의 ‘질 나쁜 놈들’을 상대한다. 이처럼 영화는 예상했던 대로 단순했다. 그러나 대중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 만큼 필자도 어떤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왜일까? 그건 이 사회에 대한 대중의 시선과 그 시선 속에 내재된 ‘크라임 포비아’ 때문일 것이다.

때로 우리는 신문과 뉴스에서 중범죄자들의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범죄는 잔혹해지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법의 심판은 준엄하지 않다. 사형을 내려도 시원찮을 판국에 범죄자들은 징역형을 살고, 심지어 출소를 앞두기도 한다.

국내 범죄도 이러할진대, 외국인 범죄에 대한 처벌은 더더욱 미약하다. 그도 그럴 것이 범죄인 인도절차에 따라 범죄자를 해당 국가에 넘겨줘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범죄인이 불법체류자라면, 추방이 원칙이다. <범죄도시>에 묘사되었듯이 형벌이 비인간적인 국가에서는 오히려 이런 추방이 큰 형벌을 주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국내 범죄를 국내에서 소명하지 못하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떠나는 외국인 범죄자들을 기분 좋게 보내줄 피해자들은 없다.

어쨌든 이렇게 사회가 진화할수록 범죄는 기상천외해지는 반면에, 법은 범죄의 정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아니, 따라갈 수 없다. 천륜을 어긴 범죄자라고 해서 천륜을 어길 형벌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민주주의적 가치와 자유가 중시되는 사회일수록 형법은 인권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이를 이용한 교활한 범죄도 증가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개가 사람을 문다고 해서 사람이
개를 물 수는 없으니까.

대중들도 이러한 사실은 자각하고 있다. 범죄자의 목을 광화문에 걸기 위해 야만의 통치를 불러 올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불안감은 지울 수 없다. 법이 완벽하게 방어하지 못하는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있다는 점.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해 극악무도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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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배들을 폭력으로 응징하는 석두의 모습은 시원함을 안겨준다. *사진 : 다음 영화 <범죄도시>(2017)


이런 와중에 개봉한 <범죄도시>는 크라임 포비아에 젖어든 대중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법을 대변하는 ‘형사’가 우리가 불안해하던 요소들, 극악한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거나 그런 범죄를 일으키고도 적절한 처벌을 받지 못할 대상들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쏟는다.

석도는 범죄자를 소탕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심지어 지역 조폭에게 상납 받은 돈을 검거 작전의 비용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법의 테두리에서 진행했다면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오직 ‘영화니까’ 가능한 ‘방식’에 대해 관객들은 환호한다.

나쁜 놈은 때려죽여도 시원찮다. 그러니까 나쁜 놈에게 나쁜 짓좀 하는 것, 대수가 아니다. 나는 나쁜 놈들을 때릴 것이고, 놈들을 뿌리 뽑을 것이다. 이처럼 <범죄도시>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나쁜 놈’들에게까지 인격적인 예우를 갖출 수밖에 없는 법의 무기력함에 지친 대중들에게 시원한 ‘한 방’이 된다. 그리고 관객들이 이 작품에 환호하는 만큼, 그것은 우리나라에 내재된 크라임 포비아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단지 관객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기만 하는 것일까? 아니다. 물론 해답도 있다. 그런데 그 해답도 <범죄도시>의 방식대로 간단명료하고 시원하게 보여준다. 그건 바로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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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봐도 열악한 <범죄도시> 속 강력반 형사들의 보금자리. *사진 : 다음 영화 <범죄도시>(2017)


2. 강한 의지는 강한 ‘지원’에서 나온다.


<범죄도시>의 동력은 사실상 ‘돈’에서 비롯된다. 장첸(윤계상)은 돈 때문에 살인도 마다않고, 이런 장첸을 잡기 위해 석두(마동석)도 돈 받고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영화를 유심히 봤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소위 ‘정보과’ 경찰들은 번듯한 경찰서 콘크리트 건물에서 안락하게 일하지만, 석두의 팀은 조잡한 컨테이너 사무실 안에서 활약한다. 관리해야할 폭력조직은 지역 내에 3개나 있으나, 담당 형사는 고작 5명에 그나마도 하나는 신입이다.

영화의 런타임 동안 석두의 팀은 밤낮주야로 일하고 쉬는 시간도 거의 없다. 다들 ‘칼 맞은 경험’쯤은 있을 정도로 위험하기 짝이 없다. 조폭 관리에 불법적인 일이 동원되지만, 이런 일에 상부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다. 그렇기에 석두는 지역 조폭인 ‘황사장’에게 지원을 받고, 그 돈과 인력을 다시 범죄 수사에 쓴다.

이쯤이면 머릿속엔 범죄자를 시원시원하게 패는(?) 석두의 패기만만한 모습도 모습이지만 그 이면에 ‘저 사람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실로 강철 같은 석두도 신입인 홍석(하준)이 강력반을 떠나자 쓸쓸히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니까.

영화 속에서는 끝내 석두가 장첸을 잡으며 막을 내리지만, 현실의 우리 형사들이 과연 제대로 된 지원 속에서 범인들을 쫓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극이 과장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사실 실제로도 현재 우리의 안전을 담당하는 강력계 형사들의 처우가 그리 좋지만은 않다. 게다가 검사의 수사권, 기소권 독점으로 인한 수사의 제약 등 법적인 제약도 따른다. 그래서 이점은 현재 법 개정을 앞두고 있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단지 ‘크라임 포비아’에 젖은 국민들의 우려를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전담하는 조직과 부서에 대한 아쉬운 지원을 지적한다. 안전에 관한한, 국민들은 세금을 아끼지 않기를 원한다. 소방관들이 제대로 된 장비를 지급받지 못해 사비로 이를 충당한 것에 대해 전 국민적인 분노가 있었고 마침내 국가직 전환을 앞두고 있듯이.

어떤 위정자들에겐 교통사고보다도 사망률이 낮은 ‘이러한 일’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교통사고로 인해 죽는 것과 이유도 모른 채 길거리에서 갑자기 죽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국가가 데이터 자료를 바탕으로 ‘이윤’을 내는 집단이 아니라면 ‘국민을 위한 비효율’에 대해 다시금 진지하게 고찰해볼 때는 아닌지, <범죄도시>는 이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지나간 '필룸' (최근 3편)

필룸. 13 <리틀 포레스트> 영혼의 허기를 채우다
필룸. 12 <남한산성>, 평온한 절망 속에 몰아치는 모순의 설전
필룸. 11 <아이 캔 스피크>, 피해자가 입을 닫고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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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돈을 다시 범죄조직을 소탕하는데 쓰는 군요...저는 영화보면서 경찰이 뭔가 범죄조직들 간의 화해와 협력을 통해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서..ㅋㅋ어차피 범죄조직을 소통하더라도 다른 범죄조직이 그 자리를 메꾸게 될 거니까 그런건가 했어요..이건 또 영화 신세계의 논리 같네요..;;

<신세계>적인 발상이 들어있기도 합니다 ㅎㅎ 장첸이 오기전의 석두는 위기관리에만 힘쓰죠. 제가 영화를 봤을 때는, 석두의 이런 모습이 열악한 강력반 형사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장치로 보였습니다 :)

신세계도 좋은 영화인데 무지개님 말씀을 듣고보니 문득 리뷰하고 싶은 기분이 드네요!

옹~ 신세계 리뷰를... 영화적 장치들이나 상징들이 많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애독자가 되어 열심히 읽겠습니다..ㅎㅎ

아직 못본 영화입니다.ㅎㅎ 조선족을 일방적 범죄의 주체로 보는 영화인 것 같아서 꺼려지는 부분이 있지만, '시대정신'을 알기 위해서는 꼭 봐야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ㅎㅎ

그 때문에 말이 많았었지요 ㅎㅎ 저도 '조선족=범죄자' 라는 프레임에 가두려는 시도는 있지 않았나 절로 경계하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 조선족에 대한 묘사가 범죄 뿐만 아니라 평화롭게 생활을 영위하는 지역 상인들에게도 맞춰져 있어 딱히 그런 불편함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

3월의 시작을 아름답게 보내세요^^
@clayop님이 지원하시는 스팀마노에 관심을 가져보세요^^
https://steemit.com/steemmano/@steemmano/5abbhz 안내
https://steemit.com/steemmano/@steemmano/2018-3 신청

감사합니다 오치님 링크도 확인해보겠습니다 ^^

포스터만 보고 처음에, 또 하나의 망작이 나오는 구나 싶었는데.
주변에서 다들 재밌다길래 '왜지?'하는 마음으로 봤습니다. 근데 진짜 재밌었어요 ㅋㅋㅋ 이유는 잘 모르겠고 그냥 조선족 말투도 재미나고
장르적 특성을 잘 살려서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경민님 글을 읽으니까 제 안에도 크라임 포비아가 가득한가봅니다 ㅎㅎ
게다가 영화 볼때는 생각 못했었는데 정말 열약한 형사들의 근무 환경까지 보여주고 있네요. 더 의미 있는 영화로 다가옵니다.

저도 그냥 재밌는 영화가 보고 싶어서 극장엘 갔는데 생각보다 깊은 의미가 있어서 놀랐습니다. (물론 재미도 있었죠!) 정작 영화는 담담하게 풀어냈는데 이후 언론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의미를 훼손하고 희석시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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