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룸 26. <서치>, 영화 속 현실의 진화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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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room.26(film)


*본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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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거의 대부분은 '컴퓨터 화면' 내에서 진행된다. *사진 : 다음 영화, <서치>(2018)

1. 영화 속 현실의 진화


영화가 현실의 복제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훌륭한 영화들은 과연 현실을 포착하는데 탁월함을 보여줬다. 여기서 현실이라 함은 날것 그대로의 현실 이미지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감각까지 표현한 걸 말한다. 대개 기존의 영화들은 충분히 고증한 현실 위에 훌륭한 배우들의 미세표정과 감정 연기를 덧씌워 이를 재현해내곤 했다. 마치 <그래비티>(2013) 속 소유즈 우주선에 올라탄 산드라 블록처럼 말이다.

하지만 <서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재현한다. 아니, 다른 방식이라기보다 ‘더 현실적’으로 현실을 고증한다. 당장 어제 일을 생각해보자. 분명 우리는 밥을 먹거나 일을 하는 등 어떤 사건들을 기억하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대부분의 시간을 ‘화면’ 속에서 보냈을 것이다. 모니터, 스마트폰 액정 등에서 쏟아지는 정보들과 그 정보들을 취합하며 얻는 생각들의 파편, 그런 감각들이 우리의 하루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을 거다. 그러다보니 또, 키보드 위나 터치 패드 위에서도 우리의 인격이나 성격 같은 부분도 드러나게 된다. 메신져로 대화할 때 ‘ㅋ’을 몇 개 쓰는 지 혹은 어떤 말을 쓸지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어떤 사이트를 주로 방문하고 어떤 앱을 이용하는 지, 이런 일련의 사이버 상의 습관들은 이제 우리 삶의 일부분이나 다름없다.

<서치>는 이처럼 일상이 되어버린 ‘화면 속의 현대인’들을 소름끼치도록 잘 묘사해낸다. 이 작품은 서사적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웹캠을 이용해 배우들의 연기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배우들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웹상의 ‘서치 신’이다. 마우스의 움직임과 쏟아지는 인터넷 사진들 속에서 어떤 부분에 시야를 집중하는지 까지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영화를 보다가 이 영화 내용을 검색하고 있는 건가 미묘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관객에게 새로운 형식의 체험을 선사한다. 앞서 예로 들었던 <그래비티>가 영화관의 특질을 이용해 우주의 심연을 체험하게 해줬다면, <서치>는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스마트폰이나 랩탑을 들여다보는 현대인들을 안방에 앉은 그대로 객석에 앉혀놓는다.

그래서 이제 영화적 체험은 <서치> 덕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됐다. 가상공간에서의 인간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또 이를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서치>는 탁월한 묘사를 통해 우리에게 영화적 체험의 새로운 장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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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의 실종 이후 드러나는 가상 세계속의 어둠들. *사진 : 다음 영화, <서치>(2018)

2. SNS 시대의 모럴해저드


<서치>가 단순히 ‘화면 속의 현대인’ 묘사에 집중하는 건 아니다. 이 작품의 주된 동력은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의 이야기지만, 아무래도 웹을 탐색(서치)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다 보니, 이 작품 속엔 웹 공간의 인간들이 등장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SNS 공간상에 만연한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다.

사건 처리가 지지부진해지자 데이빗(존 조)은 적극적으로 마고(미셀 라)의 흔적을 탐색하며 사건에 개입한다. 그 과정에서 데이빗은 웹상에서 충격적인 인간들의 행태를 목격하게 되는데, 우리가 현재도 웹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 이를 함께 체험하는 관객들에게도 똑같은 충격을 준다.

먼저 볼 것은 확실한 근거도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억측을 내뱉는 ‘찌라시’의 세계다. 마고 사건이 늘어지자 일부 네티즌들은 데이빗을 살인범이라 지적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순하다. ‘대개 그렇잖아요?’라고. 요즘도 뉴스를 맹신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의 특정 부분에만 주목해 진리인 양 떠들어 대는 네티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게 차라리 선동에 속아 넘어간 것이면 모르겠지만, 악의를 동반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여론은 때로 입법에 영향을 주고 실제 현실을 바꾸기도 하니까. <서치> 속에서 이 부분은 인터넷 창을 여닫는 가벼움처럼 가볍게 흘러가지만, 그 속의 숨겨진 내용은 사실 중요하듯,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그런가하면 이 작품은 여과장치 없는 웹상의 폭력성과 위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이 문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진부한 문제지만, <서치>는 ‘왜 그렇게 하는가?’를 주목한다. 현대인들은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 반응에 목말라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탈출구를 찾는다. 허나 그것은 진심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반드시 왜곡을 거치게 된다. 문제는 이 왜곡이 자기 자신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타인까지 끌어들이게 됐을 때다.

어떤 이들은 자기 자신을 망가뜨려가면서 관심을 구걸하기도 하지만, 심각한 경우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복제해 자신인 양 행세하는 경우도 있으며, 실제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에도 어떤 사건이나 사안에 동조해 위선적인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긍정적인 반응들이 점점 더 과격한 행동을 부르게 되고, 그걸 지켜보는 이들마저 폭력과 위선의 세계로 이끌게 된다. 마치 마약처럼 말이다.

영화에서 마약의 존재가 그냥 언급되는 게 아니다. 마약은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죽음의 진통제다. 현대인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 현실에서 해결해야하는 일을 마약과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공간에 허비하고 있다. 각성에 이르면 더 많은 양을 투입해야 하듯이, 또 그럴수록 해악은 커지듯이. 고통 없는 행복. 고찰 없는 사유. 과정 없는 결과. 이런 일들이 난무할수록 본래 ‘고통’의 영역에 있던 일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책임도 없이 몸집을 불리며 떠돈다. 모두가 마고를 이용해 자신의 작은 행복을 만끽하는 사이 마고의 실종은 더 오리무중이 되어 가듯이.

요즘 웹 공간의 위태로운 도덕적 수준을 보고 있노라면 <서치>의 일침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기존의 도덕적해이가 권력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묘사된 것과는 달리, 수평적으로 행해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도덕적해이를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밥 먹듯 부정을 저지르는 저 위를 보기보다, 바로 옆 사람을 쳐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가. 사람과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짐승 같은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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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과 마고 부녀가 영화 내내 디지털 이미지로 서로 마주하게 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사진 : 다음 영화, <서치>(2018)

3. 진심을 잃어버린 현대인


데이빗은 마고의 클래스메이트나 옛 친구를 탐문하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 중 아무도 마고를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부모인 데이빗은 그 사실에 경악하고 때로 분노하면서도 정작 자신도 마고에 대해 당최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닫는다. 무심히 양육에 전념하고, 아버지로서 도리만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거다. 데이빗은 그동안 ‘마고는 피아노 레슨도 다니고 학교도 잘 다니고 있군. 별 문제 없는 아이야’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딸과 마주보고 대화할 시간을 얻었다면,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

현대 사회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 것 같다. 살다보면 ‘겉만 번지르르 한’ 관계가 흔해진다는 걸 느낀다. 복잡다단하면서도 편리한 생활 속에서, 무슨 일이든지 우리는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외형에만 주목하게 된다. 심지어 그게 가족이라도 말이다. 게다가 드러낼 수 없는 진심은 대개 아픔을 동반하는 법이다. 지금 세상은 나 하나의 일로도 벅찬 일이 무수히 많다. 그래서 타인의 진심을 들여다보지 않는, 아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게 막상 내 차례가 되면 똑같이 괴로울 텐데도, 다들 마음의 문을 닫은 채, 들어가는 것도 나오는 것도 망설인다.

그러나 모두 다 잘 알고 있듯 피상적인 관계에서 진심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꺼내야만 하는 마음속의 응어리도 이런저런 핑계로 속에서 곪아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썩어버린 마음의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면 이해는커녕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한다. 결국 고통은 소통의 대체품으로 우릴 이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아픔은 그 속에서 상처를 더 키워버리고 만다.

모두의 마음을 살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에게 마음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가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진심을 나눌 시간이 필요하다. 아플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내 키보드 위에서만 진심을 썼다가 지우는 일은, 그런 이야기를 쓸 틈도 없게 하는 건 이제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지나간 리뷰(최근 3편)

필룸 25. <너의 결혼식>, 사랑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필룸 24. <공작>, 한계와 장점이 명확한 영화
필룸 23. <더 랍스터>, 사랑으로 관통하는 문명의 생태학


본 리뷰는 '작가와 소통하는 살아있는 미디어'
마나마인(https://www.manamine.net)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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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조가 이제 아빠 역할을 ㅜㅜ

이 영화를 찍으면서도 너무 동안이라 중년 분장을 따로 했다고 합니다. 크..

글을 참 잘 쓰시네요~
보팅 & 팔로우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테이큰의 온라인 버전느낌이 드는군요~^^

생각해보니 테이큰하고 비교할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데이빗은 키보드워리어일까요... ㅎㅎ

서치 정말정말 재밌게 봤어요 ㅎㅎ
진짜 화면 속 묘사는... 보는 내내 대박이었습니다-

나름 획기적인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맛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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