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룸 24. <공작>, 한계와 장점이 명확한 영화
<공작>, 한계와 장점이 명확한 영화
영화의 내용은 딱히 새로울 게 없다. 당신이 아마 졸고 있다면, 그 때문이다. *사진 : 다음 영화, <공작> (2018)
1. 한계와 장점이 명확한 영화
일단 이 작품을 보고 지루함을 느낀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액션의 부재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 이유는, 굳이 이 작품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리라.
이 작품에 핵심으로 작용하는 두 가지 코드가 있는데, 하나는 ‘권력을 위해 무슨 짓이든 마다않는 권력자들’이고, 그 다음이 ‘그런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는 자들’이다. 그러니 절로 지루할 수밖에 없다. 짬짬이 영화를 보는 사람일지라도 벌써 머릿속에 비슷한 내용의 영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다만 그 작품들 대부분은 한국 내부의 비리를 다루고 있어서 남북문제를 다룬 영화가 잘 기억나지는 않을 텐데, 그럼에도 이 영화는 남북문제에 관해 비교적 최근인 <강철비>(2017)보다 강한 인상을 주진 못한다.
그럼 이 영화는 지리멸렬한 졸작이란 말인가? 그건 아직 섣부른 판단이라고 말하고 싶다. 졸작이 되려면 얻을 것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야하니까. 앞서 언급한 부분은 이 영화가 가진 한계이자 단점이고, 장점도 물론 존재한다.
이 작품은 사진에 등장하는 네 인물에 대한 묘사만 주목하면 된다. *사진 : 다음 영화, <공작> (2018)
이 영화에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점은 ‘리얼리티’다. 남북 고위층 인사들이 접촉하는 방식, 그리고 그 주변 환경에 대한 묘사는 제법 사실적이다. 그런 현실성을 바탕으로 이 영화는 주인공의 목적 전환도 자연스럽게 이어나간다. 흑금성이 국가 안보를 위해 정보원이 되기로 결의한 것에서, 남북협력을 위한 파랑새가 되기까지 그 과정 속에 이질감은 없다. 현실적인 이유들이 오가고, 동기의 전환도 자연스럽다. 첩보 영화라면 거의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액션 신도 없지만, 치열한 심리전을 바탕으로 첩보전의 '현실'을 물 흐르듯 잘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은밀하고도 궁극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외피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흑금성(황정민)과 리명운(이상민)의 모습이다.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탈을 바꾸는 일은 셀 수 없이 많고 쉽지만,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연기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흑금성은 그나마 안기부라는 지시의 주체가 있지만, 리명운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적의 수단이자 죄악의 대상인 김정일(기주봉) 옆에 서있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확실히 누군가가 잠식한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그 잠식한 누군가를 ‘없애고’ 새 세상을 열거나, 아니면 그 잠식한 누군가를 ‘지배해’ 조종하는 것이다. 여기서 긴장감을 주는 쪽은 아무래도 후자다. 쿠데타든 암살 시도든, 자리를 빼앗는 것은 단순하지만, 상대를 살려놓으면서 은밀하게 지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가 자기 뜻대로 행하도록 압도적인 지식으로 교묘히 언술할 수 있어야 하며, 그와 동시에 상대가 뜻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잠자코 따를 수 있도록 고도의 심리전술도 요구된다. 게다가 그 과정에 벌이게 되는 탐탁치 않는 일들을 감당해낼 강한 정신력도 필요하다. 그러니 결말에 등장하는 리명운의 모습은 적임에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면모가 있다.
그런가하면 금방 속내를 드러내 위기에 빠져버리는 주변 인물들과 대비했을 때 흑금성과 리명운의 ‘연기’가 더 빛나기도 한다. 여기서는 서로의 비범함을 알아본 두 사람이 긴장감 속에서 오월동주하는 상황도 흥미롭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이 두 사람이 추구한 대북문제가 우리 현실에서는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연 그들의 신념은 옳은가, 맥이 빠지긴 한다.
그러니 장점과 한계가 뚜렷한 영화다. 내용과 철학은 크게 울림이 없지만, 목적을 위해 진의를 뼛속까지 감추는 두 인물에 대한 깊은 탐구는 확실히 주목할 만하니까.
*지나간 필룸(최근 3편)
필룸 23. <더 랍스터>, 사랑으로 관통하는 문명의 생태학
필룸 22. <신과 함께 : 인과 연> 이름값을 하는 속편
필룸 21. <인크레더블 2>, 변화한 시대 속의 영웅들
본 리뷰는 '작가와 소통하는 살아있는 미디어' 마나마인(https://www.manamine.net)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과연 그들의 신념은 옳은가."
인상 깊은 구절입니다.
역시 작품 속 시나리오와 현실은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결말을 인정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겠네요.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영화와 현실의 차이도 있지만 그 시기만을 담아야하기 때문에 미래의 결과를 반영할 수 없다는 점도 있겠죠!
감사합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리얼리티를 내세우는 영화는 재미를 조금 잃어도 가나봐요
리얼리티에 재미를 얻으려 하면, 산으로 많이 가는 영화가 많았죠.
제가 본 대표작은 군함도 같구요
그 중간을 찾아 만들기가 참 어려울것 같아요.
고증이 잘못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아직 못 봤는데 글 명심하고 보겠습니다.
그 균형 잡기가 참 어렵죠. 저는 요즘 영화들이 너무 힘을 준다고 생각도 합니다. 각색의 힘이 부족하다고나 할까요..?
어쨌거나 볼만한 점들도 있으니 적절한 시선으로 관람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궁금한 영화였는데, 보고 이 리뷰 꼭 다시 챙겨봐야겠어요ㅎ.ㅎ
평양 묘사 같은 볼거리도 있고, 물밑에서 벌어지는 첩보전의 심리싸움도 나름 잘표현해서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볼 만한 영화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