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 이데올로기에 침 뱉기

in #kr8 years ago (edited)

프랑스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es의 대표작 『아동의 탄생』은 기가 막히게 훌륭한 책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동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고, 아끼고, 걱정하는 우리의 아이들은 철저하게 문화적인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편집되었다는 이야기다.
일단, 아동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의 표상 자체가 철저하게 근대적 산물이라는 것이 아리에스의 주장이다. 근대 이전의 가내수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 가족이란 '사랑의 공동체'가 아니었다. 가족은 재화의 생산을 위한 '경제단위'일 뿐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목적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부모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사랑의 구체적 내용과 방식은 다르다.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김정운, 21세기북스, 2014, 258쪽)

아동은 없었다는 주장을 받아 '부모는 없었다'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도발적인가? 한국은 너무 오랫동안 효 이데올로기에 오염됐다. 본인이 훌륭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사랑 받았다면 그만큼 부모를 사랑하면 그만이다. 효란 남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각종 매체를 통해 남의 가정사를 엿본다. 부모라는 사슬에 묶여 제 삶을 좀먹는 이들이 허다하다. 자기 부모가 갱생의 여지가 없는 사람이라면 뒤로 돌아 제 갈 길 가야 한다. 삼자三者는 불효라는 흉기로 그들을 위협하지 말아야 한다. 주제넘는 짓이다. 이 새벽에 '효'라는 이념에 침을 뱉는 까닭은 지난해 작고한 마광수 선생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시 <효도에>가 머릿속을 부유했기 때문이다. 이 시는 과거 목수정 작가의 『야성의 사랑학』(웅진씽크빅[웅진지식하우스], 2010, 196쪽)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어머니, 전 효도(孝道)라는 말이 싫어요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왔나요? 어머니가
저를 낳으시고 싶어서 낳으셨나요?
또 기르시고 싶어서 기르셨나요?
'낳아주신 은혜' '길러주신 은혜'
이런 이야기를 전 듣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와 전 어쩌다가 만나게 된 거지요.
그저 무슨 인연으로, 이상한 관계에서
우린 함께 살게 된 거지요. 이건
제가 어머니를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예요.
제 생(生)을 저주하여 당신에게 핑계대겠다는 말이 아니예요.
전 재미있게도, 또 슬프게도 살 수 있어요
다만 제 스스로의 운명으로 하여, 제 목숨 때문으로 하여
전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어요.
전 당신에게 빚은 없어요 은혜도 없어요.
우린 서로가 어쩌다 얽혀 들어간 사이일 뿐,
한쪽이 한쪽을 얽은 건 아니니까요.
아, 어머니, 섭섭히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난 널 기르느라 이렇게 늙었다, 고생했다'
이런 말씀일랑 말아 주세요.
어차피 저도 또 늙어 자식을 낳아
서로가 서로에 얽혀 살아가게 마련일 테니까요
그러나 어머니, 전 어머니를 사랑해요.
모든 동정으로, 연민으로
이 세상 모든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한 애정으로
진정 어머닐 사랑해요, 사랑해요.
어차피 우린
참 야릇한 인연으로 만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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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부모란 , 특히 엄마라는 존재는 그의 몸을 빌려 나온 그 이상의 이하의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생물학적으로 더 끌리게 되어 있는 존재죠. 허나 엄마라는 단어는 우리 인간이 거역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무엇을 내포하고 있죠.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네요^^

저도 보통 부모 자식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잘 압니다. ^^ @tkkorea님도 아시겠지만, 위 글이 그것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일률적이진 않다고 보는 것이죠. 효라는 이념을 휘두를 때의 폐해를 짚고 싶었습니다. 답변 주셔서 고맙습니다. :-)

저두요ㅜ 엄마가 보고싶어지는 글입니다ㅜ

사회가 감당해야 할 몫을 개개인에게 떠넘기면서 더더욱 과장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이를 기를 때 사회의 조력이 필요하듯, @eversloth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부모를 모실 때도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본문에서 그 점은 짚지 못했네요. 댓글 주시고 보팅에 리스팀까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신기한 것은 결혼제도 자체도 사랑의 결합이 아닌 '재산을 물려줄 자손을 낳기 위해서'만든 일종의 사회계약론적 산물이란 것입니다ㅎㅎ 사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집단은 본래 이기적이고 경제적인 동기로 인해서 만들어졌죠

효 이야기로 돌아가서 저 역시 낳아준 은혜 길러준 은혜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ㅋㅋ 자식을 낳는다는 행위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이기적입니다 자기가 좋아서 낳은 자식 사랑해주고 그 자식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로써의 모든 역할이라고 봅니다ㅎㅎ 자식에게는 어떠한 강요도 해서는 안 되고요ㅎㅎ

저는 이 글에 많이 공감합니다

@tizianotiziana님이 주신 답변에 저도 공감합니다. 저는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왕 태어난 김에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죠. ㅎㅎ 그래서 낳아준, 길러준 은혜라는 강제성을 내포한 말에 저 역시 반감을 가집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으로 대하면 저런 것들을 굳이 강조(강요)하지 않아도 자식은 부모를 사랑할 테니까요. 그리고 결혼 제도에 대해서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

지금은 그래도 나아진감이 있지만 예전같았음 우리사회는 의지할 대상이 오로지 가족밖에 없었죠. 남은 그저 남일뿐이니, 동남아시아에선 지금도 가족이 우리보다 더한 효 이데올로기에 빠진것 같습니다. 그네들 사회는 가족말곤 의지할 대상이 없는게 한몫 하는것 같습니다.

지금도 가족은 서로에게 가장 가깝고 의지가 되는 존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서로에게 독이 되어 제 갈 길을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봅니다. 이때 효라는 이데올로기의 폐해가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동남아시아의 상황이 그러하군요. 글 읽어주시고, 댓글도 주셔서 고맙습니다. :-)

사실 '효'라는 것이 '충'과 굉장히 연관된 이데올로기이지요.
부모에게 효를 하듯이 임금에게 충을하고, 그반대도 해당되고요. 임금을 괜히 백성의 아버지라고 했겠어요. 너무 속보이지요.
임금따위가 어찌 부모와 비교되는지..

외국사람들도 후레자식들이 아니고 '효'가 아닌 '부모에 대한 사랑'이라는 건, 우리의 것만이 아닌 인류의 보편적 감정이죠.

효와 충이 상통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개인 의견입니다만, ‘부모에 대한 사랑’에 보편의 지위를 부여하는 데에는 주저하게 됩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 부모를 싫어하는 사람, 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나 효를 의식해 사랑하는 척하는 사람, 효에 속아 부모를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 등 갖가지 경우가 있겠지요. 물론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의 비중이 가장 클 겁니다. 답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 듣고보니 또 그렇네요^^
덕분에 한번 더 '효'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

저도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효라고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ㅜ 해외에 오래 살면서 다 하지 못하는, 가장 죄송한 영역이지요ㅜ 저도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네요ㅜ

(아시겠지만) 위 게시글은 보통의 가정을 대상으로 쓴 글은 아니에요. 외국에 있을 땐 가족에 대한 마음이 간절해지지요. 예전에 배낭여행을 갔을 때 저도 그립더라고요. 2개월 일정이었음에도요. 하물며 장기 체류하셨다면···. @bookkeeper님, 제 글 읽으러 정말 와주셨네요.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깊게 공감합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나 가정사를 주절거릴 수는 없지만, 정말 공감되는 이야기네요.

@yuky님, 안녕하세요.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는 세상에 하나의 기준을 들이대는 폭력성을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화합이나 친화는 그것대로 좋은 것이지만 우리가 독립적으로 행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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