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의 어려움
면접장에는 세 명씩 들어갔는데, 김지영 씨와 함께 면접을 본 두 사람도 또래의 여성들이었다. 세 사람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귀를 살짝 덮는 길이의 단발머리를 하고, 핑크빛이 도는 립스틱을 바르고, 짙은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중략) 마지막으로 가장 끝자리에 말없이 앉아 고개만 끄덕이던 중년의 남자가 물었다.
"여러분이 거래처 미팅을 나갔단 말입니다. 그런데 거래처 상사가 자꾸 좀, 그런, 신체 접촉을 하는 겁니다. 괜히 어깨도 주물주물하고, 허벅지도 슬쩍슬쩍 만지고, 엉? 그런 거? 알죠?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김지영 씨부터."
김지영 씨는 바보같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도 안 될 것 같고, 너무 정색하는 것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 같아 그 중간 정도로 답했다.
"화장실 다녀오거나 자료를 가지고 오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하겠습니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2017, 101-102쪽)
한국일보의 장정일 칼럼 면접장에서는 생육신이 돼라를 읽었다. 요즘 신입사원 채용 면접장에서는 미투 운동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는 모양이다. 장정일이 권하는 대처 방법은 이러하다. "일단 합격하고 나서, 훗날 그 상사가 성희롱을 하면 보기 좋게 고소하라. 더는 저런 검증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질문 자체를 낙후시키라. 면접관이 이중적이면 면접자는 삼중적이 되어야 하고, 권력자가 삼중적이면 피권력자는 사중적이 되어야 한다." 그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면접장에서의 사상 검증에 대해 쓰려는 것은 아니다. 저 칼럼을 읽으며 나는 자기소개自己紹介를 생각했다. 국어사전은 이 단어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명사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기의 이름, 경력, 직업 따위를 말하여 알림.
자기소개의 형식은 다종다양하다.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것이나 면접장에서 정적을 깨고 입을 떼게 하는 것이나 학교(등 각종 단체)에서 자신을 알리기 위한 것이나.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자기소개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며 밥을 버는 사람이 있다는 현실은 그만큼 우리가 자기소개에 관심을 둔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연한 말이지만 형식과 목적은 상이하겠으나 옛 사람들도 자기소개를 했다. 다음은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의 자기소개 글이다.
나는 여덟 살에 작위를 받았으니 이 해는 경진년(庚辰年)(1700)이다. 계미(癸未)(1703)에 관례(冠禮)를 행하고, 갑신(甲申)(1704)에 길례(吉禮)를 행하고, 신축(辛丑)(1721)에 왕세제로 책봉되었으며, 임인(壬寅)(1722)에 성균관에 입학하였고, 갑진(甲辰)(1724)에 왕위를 이었다. 처음에는 연잉군(延礽君)으로 봉해지고 아울러 종친부(宗親府)의 당상(堂上), 사옹원(司饔院)의 도제조(都提調), 종부시(宗簿寺)의 도제거(都提擧),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의 도총관(都摠管)을 겸임하였다. 잠저(潛邸)에 있을 때의 호는 양성주인(養性主人) 또는 육오거사(六吾居士)였다. 51세에 기사(耆社)에 들어갔다. 64세에 쓰다.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영조야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저러한 기록을 남기진 않았으리라. 아니다. 그도 동시대 사람들뿐 아니라 후대를 의식했겠지. 그래서 자신의 이력을 아랫사람들에게 시켜 돌덩이에 아로새겼을 것이다. 저자 소개를 직접 쓰는 작가도 있다. 다음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유시민, 도서출판 아름다운사람들[생각의길], 2015)의 저자 소개 내용이다.
유시민이 소개하는 유시민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렇지만 사는 것은 전공과 별 상관이 없었다. 출판사 편집사원, 신문사 해외 통신원, 공공기관 직원, 신문 칼럼니스트, 방송 토론 진행자, 국회의원, 장관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지금은 역사와 문화 관련 에세이를 쓰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예전에는 5년 넘게 같은 일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작가 말고 다른 직업은 가지지 않을 것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유시민의 글쓰기 고민 상담소(도메인 쓰여 있으나 해당 주소로 접속 불가)'에 누군가 글쓰기와 관련한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그런 분들에게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저서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 《청춘의 독서》 《후불제 민주주의》 《국가란 무엇인가》 《나의 한국 현대사》 등이 있다.
기업이 지원자에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이유가 뭘까. 지원자의 성격·가치관·철학 등을 파악하기 위함일 테다. 책에 저자 소개를 넣는 이유는 또 뭘까. 그딴 거 넣기 싫은 작가도 있겠지만 작가를 소개하고 알려야 한다는 작가와 출판사의 요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 아닐까.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 말은 맞는 말일까? 나는 일정 부분만 유효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제 글보다 빼어난 사람을 본 적 있는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만큼 어려운 일이겠으나 물색하면 있기야 있을 것이다.
인간은 텍스트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내가 이야기하는 나'가 바로 '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아이덴티티identity, 즉 자기 정체성이라고 정의한다. 내가 이야기하는 나를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identify하는 과정에서 자아가 구성된다는 거다. 앞서 내가 쓴 저자 소개를 분석하듯, 누구나 자신에 관한 서술을 분석해보면 내가 어떤 존재인지 분명해진다.
자기 이야기, 자신에 관한 서술, 자기 서사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내러티브 심리학narrative psychology은 '자신에 관한 텍스트'가 바로 자신의 실체라는 정의에서 출발한다. 자신에 관한 텍스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과거 이야기, 즉 기억으로 구성된다. 나는 '과거 기억의 편집'이다. 문제는 그 기억이란 항상 자의적이고 편파적이라는 사실이다.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김정운, 21세기북스, 2014, 275쪽)
나는 어릴 때부터 자기소개를 시키는 사람이 달갑잖았다. 초등학생 때 담임들은 꼭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자기를 소개하라고 했다.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의 대면 자리에서도 입대하여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도 취업을 위한 면접장에서도 자기소개는 계속됐다. 권력자가 남에게 자기소개를 시키는 까닭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 혹은 단지 제 권력을 확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권력이 없는 사람은 자기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있는 말 없는 말 그러모아 자기를 소개한다. 자기를 소개할 때의 내 언어는 오갈 데 없어 황망해 했다. 지구에서 자기소개를 없애진 못할 것이다. 우리에겐 관심법을 부릴 재간이 없으므로 자기소개는 타자를 들여다보는 퍽 유용한 도구로 굳어졌다.
자기소개를 할 때는 부러 배에 힘을 주고 목청 높여 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오른손에는 리더십을 왼손에는 자신감을 움켜쥔 사람으로 판명될 공산이 크다. 앞서 자기소개의 불가피함을 지적했다. 그러나 (텍스트 형식의 자기소개는 차치하더라도) 뭇사람과 대면한 자기소개는 내향적인 사람을 기죽이고 그들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무대로 활용될 소지가 크다. 한 인간을 다면적으로 보려는 시도가 무산된 사회에서는 이는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다음 주제로 이에 대해 써볼까 하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궁금한 분은 단필인 내 글보다는 『콰이어트Quiet』(수전 케인, 김우열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12)라는 단행본을 참고하시는 게 나을 것이다.
재차 말하지만 나는 자기소개가 싫다. 타인의 가치 평가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글로써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스팀잇이라는 공간이 내겐 소중하다. 그래봤자 내가 당신을 완전히 알 수는, 당신도 나도 완전히는 알 수 없는 나를 완전히 알 수는 없겠지만.
추기(2018.04.17. 저녁). 왜 이 내용을 빠뜨렸는지 모르겠다. 자기를 소개하는 참신한 방법을 하루키에게서 배웠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 하루키의 이 방법을 참고하면, 자네는 소설이나 쓰는 게 어떤가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안녕하세요.
원고지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제 생각에 그건 굳이 따지자면 의미 없는 설문입니다. 다만 자기 자신에 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예를 들어 굴튀김에 관해 원고지 4매 이내로 쓰는 일은 가능하겠죠. 그렇다면 굴튀김에 관해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당신이 굴튀김에 관한 글을 쓰면, 당신과 굴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적으로 표현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끝까지 파고들면 당신 자신에 관해 쓰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이른바 나의 '굴튀김 이론'입니다. 다음에 자기 자신에 관해 쓰라고 하면, 시험 삼아 굴튀김에 관해 써보십시오. 물론 굴튀김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민스 커틀릿이든 새우 크로켓이든 상관없습니다. 도요타 코롤라든 아오야마 거리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든 뭐든 좋습니다. 내가 굴튀김을 좋아해서 일단 그렇게 말한 것뿐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무라카미 하루키, 이영미 옮김, 비채, 2011)
그리고
좋아하는 시가 많진 않은데 몇몇 시는 좋아합니다. 노먼 루이스의 『WORD POWER made easy』(강주헌 옮김, 윌북, 2012, 477쪽)를 읽다가 존 던John Donne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시를 알게 됐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4월 16일을 넘겼네요. 활자로써 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할 듯하여 세월호에 대한 글은 일찌감치 접었습니다. 제겐 존 던의 저 시와 세월호가 한데 포개집니다. 이 시를 옮겨 적으며 희생자를 애도하겠습니다. 또한 고의건 미필적고의건, 자의건 마지못해서건 세월호의 비밀을 꼭곡 숨기기에 급급했던 그들을 똑똑히 기억할 겁니다.
인간은 누구도 그 자체로 완전한 섬이 아니다.
모두가 대륙의 한 부분이고 바다의 일부이다.
한 줌의 흙이 바다에 의해 씻겨 내려가면 유럽의 땅이 그만큼 줄어든다.
한 곶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또 그대 친구의 영지나 그대의 영지가 씻겨 없어진 것처럼.
어떤 인간이든 그의 죽음은 나를 작아지게 한다.
내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기 때문이다.
하나 더
저는 세월호를 생각하면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노래가 떠올라요. 이선희의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The language of Passion, Talent and PERFECTION is UNIVERSAL.
Great performance.
멋진 글이네요 ...
누군가 나를 소개하라고 하면 스팀잇 아이디를 알려주면 될 듯 합니다.
거기에 내가 다 있을거 같아요^^
아,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어요. 스팀잇 아이디를 알려주는 거요. ㅎㅎ 글 읽어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하하하 우리 모두 다 그런거 아닐까요? 스티밋에선 왜인지 다 말하는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
그렇죠. 아니할 말 빼고는 다 할 듯하죠? 하하하. ^^
진심요^^
저도 그래요. ^^
아.. 맞네요. 갑은 자기소개를 하지 않죠. 자기소개는 항상 을의 의무이니까요. 면접장에서 면접관이 자기소개를 하지 않잖아요. 어제 면접을 보고 와서 더욱 와닿네요. 면접장에 들어가니 8명이 세모 눈깔로 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이제와 생각하니 문득 궁금하네요. "그런데 누구세요?" 라고 물을 걸 그랬습니다..
면접 보셨군요. 면접장의 분위기는
아무리 편하게 해줘도어색하고 어렵습니다. 게다가 면접관 8명이 세모 눈을 하고 있었다면 더 그랬을 거 같네요. 잘 보셨길 바라요. 마음은 정말 “누구세요.”라고 말하고 싶죠.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