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사랑했던 그를 망연히 떠나보내며

in kr •  5 months ago

이 글은 객관성이 결여된 오롯이 저의 글입니다. 어떤 이는 말할 것입니다. 결국 사천만 원 받은 것 아니냐고. 맞습니다. 그는 가는 길에 본인이 (제 입에 담기도 싫은 무리로부터) 사천만 원을 받았다고 실토했고 그것을 이유로 자신을 죽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그를 사랑한 이의 글입니다. 그러니 엄정하고 객관적인 글을 기대한 분이라면 이 글을 읽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반박 댓글은 붙이지 않기를 부탁합니다. 자료를 뒤적이지 않고 기억에 의존하여 쓴 글이므로 사실관계가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내가 노회찬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은 2003~2004년 무렵인 듯하다. 당시 노회찬은 민주노동당의 가장이라도 되는 양 종횡무애 토론 프로그램을 누볐다. 그때 그를 만났다. 갈색 빛깔을 입힌 안경(렌즈)을 쓰고 있던 그는 요즘에 견주어 언어가 더 벼려 있었다. 당장 기억하기로 정몽준 대선 캠프에 합류했던 김민석에게, 그 당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정강정책이 18페이지밖에 안 된다며 그 당은 18페이지 정당이라고 말했다. 평소 말이 없다는 그가 그처럼 세게 발언한 것은 원외 정당의 존재감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려는 방편이었던 듯싶다. 16대 국회의원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헌법재판소에 물었을 때 노회찬은 말했다. 길 가다가 어깨를 부딪쳤는데 흉기로 찌른 꼴이라고. 당시 민심은 요동쳤고 열린우리당은 이른바 탄돌이들을 대거 국회에 입성시켰다. 민주노동당 역시 원내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는데 내 보기에 그 공 중 상당 부분은 노회찬에게 있다. 그의 어록 중 가장 널리 회자됐던 것은 이 말이다. 삼겹살 구울 때 불판을 갈지 않으면 고기가 시커메진다고. 50년 동안 갈지 않았던 판을 이제 갈아야 한다고.

여행을 가는 중이었다. 친구에게 온 메시지. 나의 반응은 욕설이었다. 욕이 아니라면 그 놀란 감정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넋 나간 이처럼 나는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었다. 붕 뜬 마음으로 바다를 보았다. 뒹숭숭하다, 어수선하다, 심란하다. 나는 이 형용사들의 실체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내가 제일 좋아한 정치인. 가족, 지인 제쳐둔다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한 사람. 그에 대한 기억을 그야말로 두서없이 손가락 가는 대로 옮겨 보련다.

많은 분이 아는 바대로 노회찬은 음악에도 재능이 있었다. 첼로를 켤 줄 알았는데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여 음악을 깊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작곡을 가르치기를 추천한다고.

그는 책을 참 많이 읽었다. 독서는 그의 일상이었다. 국회의원 중 '82년생 김지영'을 추천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문재인 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는 김지영들을 안아 달라며 대통령께 그 책을, 영부인께는 황현산의 '밤은 선생이다'를 선물했다. 매년 여성의 날마다 그는 주위 여성들에게 장미를 건넸다. 그가 반복해 읽은 책 중 하나는 박경리의 '토지'인데 열 번이 넘게 읽었고 캐릭터 중 주갑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활자를 탐닉한 결과였을까. 그는 박학다식했다. 어느 것을 주제로 던져도 그에 관한 근원을 이야기했다.

그는 오랫동안 수배당했고 끝내 옥고를 치렀다. 전과가 생겨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고, 부인 역시 노동 운동을 하다 고초를 겪었다. 그 영향인지 몰라도 둘 사이엔 자식이 없다. 노회찬은 노동자들의 벗이었다. 아니 그 자신이 용접자격증을 갖춘 노동자였다. 그와 생각을 달리하는 정치인들은 있지만 그의 인품이나 공부의 강도를 두고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는 미식가였다. 본인이 인정하는 맛집을 SNS로 추천할 때가 가끔 있었다. 그는 냉면을 좋아했다. 평양에 방문했을 때엔 평양냉면을 여러 그릇 비워 냈단다. 직접 요리를 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아내를 위해 요리하는 남편이었고, 그가 자신의 인생에서 한 일 중 가장 잘한 것은 결혼이라고 했다.

같은 공간에서 그를 본 일이 한 번 있다. 그가 노원구에서 국회의원을 하던 시절이다. 지역에서 강연을 열였고 강연자는 배우 박중훈이었다. 그 날 노회찬도 박중훈도 보았다. 박중훈은 노회찬을 회찬이 형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러한(정치인 주최) 강연에 가본 일이 없다. 그곳에 닿게한 동력은 오로지 노회찬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기념촬영도 하지 않고 속히 자리를 떴다. 사진이라도 한 장 찍을 것을.

부산에서 자랐던 그는 경기고에 진학했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고등학생 노회찬은 국회에 직접 가봤단다. 교과서에서 이런 걸 배운 적이 없는데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는 마음에. 고등학생 시절부터 그는 남달랐다. 김상현 의원을 찾아가 대화를 나눴고, 함석헌 선생을 뵈러 간 일도 있다. 회상하기를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고서 김상현 의원에게 당시의 얘기를 하니 김상현 의원은 해당 일화를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촌철살인. 그를 생각하면 곧장 떠오르는 단어다. 그의 언어와 수사는 어렵지 않았다. 대중친화적 언어는 시민의 살갗에 와 닿았다. 그는 유머 섞인 수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유일무이한 정치인이었다(세상에 과거형이라니).

한명숙이 오세훈에게 아깝게 진 날. 노회찬은 평생 먹을 욕을 가불해 먹었다. 그를 물아부친 까닭은 간단했다. 대의를 위해서 왜 물러나지 않았느냐. 당시 유시민은 심상정을 설득했다. 당신이 하차하면 내가 당선될 가능성이 조금은 있다고. 한명숙 측은 일언반구 이야기가 없었다고 한다. 노회찬을 타박하는 대중은 다시금 대의를 강조했다. 알아서 기었어야지. 욕이 나온다. 그러다 진보정당은 언제 소를 키우나. 게다가 당시 여론조사는 오세훈의 압승으로 나왔다. 진보 진영에서조차 노회찬을 욕했다. 나쁜 사람들. 대의를 부르짖는 이들이 반드시 선은 아니다.

떠올리자면 끝이 없다. 노회찬의 변호사가 되어 글을 마무리한다. 노회찬이 앞서 내가 소극적으로 언급한 무리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그가 야인이었을 때이다. 소위 삼성X파일에 연루된 떡검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한 노회찬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정의로운 일을 하다가 직을 잃은 사람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우하는가. 처음엔 존경의 말을 건네며 위로한다. 하지만 그때뿐. 주류로부터 이탈된 사람은 암암리에 배제되고 소외된다. 누구보다도 올곧고 강직한 그이지만 약해졌을 것이다.

세상을 등지며 그는 말했다. 돈을 받았다고. 면목 없다고. 법정형도 당의 처벌도 부족하다고. 그래서 스스로를 죽일 수밖에 없다고. 나는 그가 일신의 안위를 위하여 돈을 받은 것이 아님을 확신한다. 그의 인생 통째가 그것은 아님을 통곡하며 웅변하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에 자리잡으니 더욱이 실감하며 공포를 느낀다. 거짓말 같았는데 그가 정말 죽었다. 이제 다시는 그의 음성을 생방송으로 들을 수 없다. 내 가족도 지인도 아닌데 이렇게 눈물이 날까. 노회찬 의원님. 정치인으로서 자연인으로서도 당신을 무궁히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세상을 사랑했던 당신이 이처럼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다니요. 명복, 영면 저는 이런 거 잘 모르겠습니다(그러나 당연히 당신의 명복을 빕니다). 한동안 구멍 뚫린 상실감에 아파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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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사진이 공개됐을 때 지금 공당의 원내총무들이 저럴 때냐고 비난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제서야 생각하니 이 조차도 노회찬 의원님 특유의 유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인 것이 삶일 텐데, 망인은 그 지독한 생리를 정확하게 꿰고 있었던 게 아니냔 말이다.

그래서 며칠 뒤 당신이 감행할 죽음을 앞두고 저렇게 희극적인 모습으로 점프하듯, 이생에서 저생으로 건너가는 연습을 한 것일 테다.

초연한 자가 남긴 마지막 사진을 유심히 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도언 시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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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 read. I leave an upvote for this article thumbsup

저도... 마음이 그러네요.

에공 페페님...그간 올라온 글 중에서도 가장 큰 슬픔이 담겨 있는 것 같네요. 힘내세요.

정치자금법이 정말..
참 먹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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