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메모

지나간 메모처럼 허무한 게 또 없다.

난 종종 페이스북을 메모용으로 사용 하곤 한다. ‘나만 보기’설정으로 글을 쓰는 것 말이다. 페이스북에서 스크롤을 내리다가 지난 1년간 내가 무슨 메모를 했는지 한번 돌아봤다. 비트코인과 관련된 정보 스크랩, 건강과 관련된 정보, 3D 프린터와 관련된 정보, KTX 기차역 시간표, 봤던 만화책 리스트, 보고 싶은 영화제목, 근 시일 내에 해야 될 것들 등 단 한번이라도 컴퓨터를 하고 있을 때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던 잡다한 것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그 오래된 기록(메모)들 중에서는 지금 봐도 유익한 정보가 있는 반면, 불과 2달 전인데 내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 매여 살았나 싶은 그런 메모도 존재했다.

그런 메모를 지우며 든 감정이 바로 허무함 이었다. 지워진 메모 중에서는 그 당시에는 새로운 개념 혹은 정보를 학습해야 되서 나를 괴롭히던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이미 내 머릿속에 완벽히 숙달되어 버려 너무나 당연한 정보(예를 들면 ‘물은 100 °C에서 끓는다’ 와 같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자질구레한 것을 싫어하는 나는 ‘그것’들을 그곳에서 지워버렸다.
가장 최근에 메모를 해둔 것은 하루 전의 것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시간이 지나면 ‘내게 무의미한 것’이 되어 지워짐 당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이 주는 의미자체가 공허함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그래서 일까. 내 인생에 스쳐 ‘지나간’ 사람들 또한 내게 지나간 메모처럼 한 때는 필요했고, 내가 배워야 했고, 나를 괴롭혔지만 지금에서는 ‘익숙한 정보’가 되어 중요치 않게 되어버렸다.

당연히 내가 어떻게 그들을 생각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입 밖으로 내어지지 않은 내 생각은 ‘나만 보기’ 설정으로 쓴 페이스북 메모와 같은 것이다. 그러다 기억 먼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익숙한 정보가 된 메모 자체는 삭제되어도 내 머릿속에 지식으로 항상 상주하고 있다가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불러올 수 있다. 반면에 지나간 그들은 내가 원치 않아도 아주 가끔씩 불현 듯이 내 기억 속에 나타나 공허함 이란 것을 줄 것이다.

나이가 들면 안 좋은 것 하나는, 지나간 것에 대해 후회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 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물리적’으로 나는 그렇게 나이 들지 않았는데, 내 인생에 공허함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메모정리를 하다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기분이 울적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