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1. 육교에서

in #kr6 years ago

학교에 가기 싫었다. 집에도 가기 싫었다. 그냥 겨울비 내리는 거리를 정처없이 걷고만 싶었다.

살기도 싫었다. 하지만 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죽을 때 많이 아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더 살기도 싫었다. 그래서 난 고통없이 죽을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날도 어떻게 죽어야 아프지 않을까 궁리하며 걷고 있었다. 겨울은 아직 나 살아 있다며 차가운 비를 쏟아붇고 있었고 우산을 든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너무 추워 일단 집으로 가기로 했다. 가기 싫은 집으로.

육교를 건널 때였다. 매일 다니던 육교 중간쯤 갔을 때 번뜩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좀 덜 아프겠다. 그래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비가 쏟아지는데도 차들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그래 여기서 뛰어내리면 차에 치어 죽겠구나. 떨어지는 구간이 짧으니 아파트 옥상보단 낫겠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냥 계속 울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다. 나를 키워주지 않은 엄마, 얼굴도 모르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

손이 시려웠다. 곧 죽을 건데 우산이 무슨 필요람. 그래서 우산을 내려놓고 손을 바지주머니에 넣었다. 얼어버릴 것 같던 손을 달래주었더니 옷이 젖기 시작했다. 내 얼굴을 흐르는 물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이젠 뛰어내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육교 난간을 붙잡고 다리 하나를 올렸다. 그때였다. 학생 여기서 뭐해. 남자의 목소리. 그는 내 팔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니 어디 공사장에서 일하는 아저씨 같아 보였다. 밥은 먹었어? 난 대답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따라와.

아저씨는 내가 놓아버린 우산을 내게 건네주고는 걷기 시작했다. 난 아무생각 없이 그냥 뒤를 따랐다. 골목을 몇 번 돌아 도착한 한 국밥집. 여기 국밥 두 개요. 우리가 올 걸 알았는지 바로 나온 국밥. 어서 먹어. 아저씨는 이 말만 하고는 국밥을 개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몇일은 굶은 사람 같았다. 비를 맞아 춥기도 하고 배도 고픈 나도 똑같이 개걸스럽게 퍼먹었다.

국물 한방울까지 다 마셔버린 후에야 날 한참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씩 웃었다. 세상이 좆같지? 그래도 살아. 세상을 좆같이 만든 놈들에게 복수해야 할 거 아냐. 나 먼저 간다. 일어서더니 계산도 안 하고 나가는 아저씨. 어, 계산은 누가 하지? 나 돈 없는데. 그때서야 난 주위를 둘러봤다. 여긴 식당이 아니라 무료급식소였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울었다. 계속 울었다. 그렇게 난 종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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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살아서 다행이었다 싶으시죠?
저도 그랬던 적이 있었어요. 가끔 너무 지치고 힘들지만 그래도 아이들 보며 웃음이 나올 때 그래도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금요일이네요~ 이제 주말이예요 홧팅!!

아~~~ 팩트일까요 픽션일까요? ^^

적절하게 함께할거라 생각을 해봅니다~ ㅎ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을 읽고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버꼈어요. 나중에 리뷰 올린 거 보시면 아실듯. ^^

힘든 시간을 보내셨나 보네요.. 쓰신 일이 또 워낙 어렸을 때의 일이라 더 마음이 아픕니다. 육교에서 아저씨를 만나게 돼서 다행입니다.
앞으로는 행복한 시간만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 같아요. ^^

잘 살아계셔서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

어허 개똥밭이라도 저승보다 이승이 좋다고 하네요. 아직 세상을 살만합니다. 항상 힘내세요.^^화이팅

맞아요. ㅎㅎㅎ 개똥밭이라도 좋죠. ^^

이런글을 보면 정말 살만한 세상이네요.
지나가던 아저씨도 힘들게 사시는거 같은데 ㅠ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앞으로도 화이팅입니다!

우리모두 오늘도 파이팅~~~ 아자아자!!!

또다시 찾아온 불금!! 힘내세요!!곧 주말이에요!

와우~~~ 불금.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실화인지 픽션인지 궁금해지네요~

섞여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실화인지는 비밀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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