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카페에서] 1화.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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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카페에서.


 머리 맡에서 휴대폰이 울어댔다. 내버려두면 꺼지겠지. 하지만 벨소리는 끈질기게 이어졌다. 아침부터 대체 누가, 몸을 뒤척이며 손을 뻗었다.

"여보세요?"

 말하기 무섭게 상대방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저희 업체에서 최신 휴대폰을……. 잇새로 욕이 반쯤 비집고 나왔다. 녹음된 목소리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었다면 한마디 해줬을 것이다. 저도 나름 괜찮은 폰 쓰고 있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싸게 주지도 않잖아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앓는 소리를 냈다. 조금 더 자자. 각성하려는 정신을 어루고 달래 잠의 문턱을 한발자국 넘었을 때였다. 밖에서 칼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장난 세탁기, 냉장고, 테레비 삽니다. 이정도면 하늘의 계시였다. 윤주는 천천히 상체를 세웠다. 머리가 몽롱했다. 눈은 침침했다. 어제 몇 시에 잠들었더라. 새벽 4시 까지 유튜브로 먹방을 보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오전 10시. 윤주에게는 새벽이나 다름 없는 시간이었다.

 뻑뻑한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한 번 떠난 잠은 되돌아 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잠은 매정하고 인정머리 없는 놈이니까. 온수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멀뚱히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이마에 뾰루지 하나가 톡 튀어나와 있었다. 짜기 딱 좋을 정도로 익은 뾰루지였다.

"김말이는 이래서 안 좋아."

 튀긴 걸 먹으면 바로 티가 나지만 그렇다고 튀김을 멀리할 수도 없었다. 고난한 삶을 어루만져주는 튀김을 어찌 손에서 놓을까. 달콤쌉싸름한 커피와 상큼한 아이스크림도 마찬가지였다. 치킨은 두말할 것도 없고. 세수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허름하지만 채광 좋고 꽤 큰 방이 두개 달려있는 아파트는 윤주의 밑천이자 보금자리였다. 거실 커튼을 걷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침 해였다. 그래, 아침이란 게 존재하긴 했었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작은방에서 샤샤가 나왔다. 품종을 알 수 없는 고양이는 오늘도 도도한 걸음으로 식탁 위를 걸었다. 밥 내놓으라는 신호였다. 안 주면 널 괴롭힐 거라는 경고이기도 했고. 샤샤 밥을 챙겨주고 바나나를 입에 물었다. 먹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검은 얼룩이 피기 시작한 바나나를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자고로 음식은 먹는 거지 버리는 게 아니니까.

 이케아에서 싸게 주고 산 감각적인 소파에 궁둥이를 붙였다. 살때는 이보다 더 좋은 인테리어 가구는 없을 거라고 자화자찬했지만 정확히 일주일 후에 후회했다. 가구는 보기 좋으라고 사는 게 아님을 알게되는 계기기도 했다. 지금이야 중심이 뒤로 빠져 컵을 들고 절대 않을 수 없는 소파에 익숙해졌지만.

 맞은편 벽지 색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파스텔 블루. 참 멋진 색이야. 윤주는 알고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속 편하게 파란 벽지나 살필 정도로 여유롭지 않았다. 막말로 개처럼 일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이러다가 또 대책없는 긍정적 사고가 머리를 지배하게 되면 오늘 하루도 끝날 것이다. 정신차리고 보면 또 침대에 누워있겠지. 시간은 새벽 4시일 테고.

"안 돼."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샤샤가 깜짝 놀라 귀를 세우는 게 보였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얼른 옷을 챙겨입었다. 집에 있는면 게으름 요정에게 당할 뿐이었다. 어디든 가야했다. 가서 써야 했다. 통장 잔고를 사수하려면 써야 했다. 그게 글로 벌어먹어야 하는 자의 숙명이었다. 윤주는 현관문을 열었다. 일단 카페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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