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놔도 될까요

1
유리상자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조심스럽게 얘기할래요 용기내볼래요 나 지금부터 그대를 내려놔도 될까요

4개월 아기를 들고 있다가 자는 거 같아 보일때 거쳐가는 과정이다.
안고 있을 때 잘 자던데 내려놔도 안 깨어나고 잠을 자 주겠니? 하는 질문이 담긴 노래다.

인생도 불확실하고
순간도 불확실하다.

승부를 건다.
한쪽무릎을 꿇고
오른손이 받친 머리와 어깨부분
왼손이 받친 엉덩이 부분
제발 제발 질끈 감으며
깨지 않길 빌며 부드럽게 천천히 내려간다.
평정심을 유지했다면 분명 자연스레 내려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라는 것이 간절한만큼 평정심은 이미 없고 쉬운 동작에 삑사리를 낸다.
아이는 깨어나서 울기 시작하고
그걸 들으며 마음은 불편하나 잠시 아픈 팔을 쉬며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들어올린다.
이번엔 깊은잠에 들 때 까지 계속 안고있어야지 다짐을 한다.

2
취침시간.
가족들은 잠자리에 들고 나는 방에 들어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한다.
스트레스는 풀어야 한다. 고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거나 넷플릭스를 볼 때도 있다.
그러다가 헬프를 요청하는 와이프의 목소리를 못듣는 적이 반복되면서
이어폰을 스스로 금지하게 되었다.
언제 나를 부를까 초조해서 집중도 잘 되지 않는다.
나만의 시간이 없는 채로 시간이 흘러갔다.
나라에서도 허가한다는 유명한 마약, 음악...
내 집에선 온전히 즐기도록 허가되지 않았다.

3
작은 비난이라도 비난을 받기 싫다는 집착 증세가 있다.
오늘은 슈퍼에 가서 요거트를 바구니에 담다가
옆에 쌓인 다른 요거트를 떨어트렸는데 보니까 하자가 생겨버렸다. 껍데기가 튿어져서 내용물이 조금 흘러나온 것이다.
누군가 보고 이거 물어내야 한다느니 그런 상황이 머리에 스쳐지나가면서 상상만으로 극혐일거같아서 바로 장바구니에 그 튿어진 요거트를 담았다.
'제발 그냥 무심히 바코드를 찍고 저 코코넛맛 요거트를 나에게 넘겨주길...'
계산대에 바코드 찍는 사람의 무심함이 절실했다. 튿어진거 안사도 된다느니 그런 대화를 시도해오면 나는 더욱 짜증이 날 것이다. 요즘 피로가 쌓였고 스트레스도 쌓여서 사소한 집착이 중요했다.
평소같으면 먹지 않을 코코넛 맛이다.
나는 코코넛도 싫고 코코넛 향도 싫고 코코넛 향이 첨가된 어떤 식품도 싫어한다.
그러나 이건 그대로 안먹은채로 쓰레기통에 버리기가 싫었다. 음식을 버리는 기분은 견디기 힘든 찝찝함이 있다.
그래서 계산 후 바로 차에 와서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틀고 앉아서 빠른 속도로 먹어 치웠다.
비록 난관에 빠졌었지만 다행히 모든게 주어진 상황 하에서는 이상적으로 수습된 것이다.

4
다시 취침시간.
나는 일하러 컴 앞에 앉았고 느낌이 조용해서 얼굴들을 살펴보니 모두들 깊이 잠들었다.
지금이라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어도 된다는 확신이 왔다.
오늘의 선곡은 화요비가 부른 그대의 향기.

이것이 깡패다. 음색깡패.
수동으로 무한반복 시키면서 일을 하다가
계속 들어도 지루해지지 않고 마음이 안정되지도 않고 감수성이 자극되고 밤도 늦어서.
술을 따라 마시며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쓰다 만 글을 오늘 완성해서 이제 올리려는 순간이다.
최근의 스트레스는 모두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