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많이 가는 여자

in #kr3 years ago

“너 참 손이 많이 가는 여자구나…”

결혼하기 전 한국어 강사 양성과정을 들었는데 같은 반 오빠(이제는 어색한 오빠란 말..)와 불닭을 먹다가 들은 말이다.

아마도 뭘 같이 구워도 예의상 뒤적거리는 법이 없고 설사 뒤적거린다 쳐도 굉장히 손이 느리기에 내가 행동을 취하기 전에 다른 이가 취해버리고 말기에 저런 말이 나왔으리라.

대학 선후배들끼리 북경으로 한달 연수를 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꽈즈(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노가리를 까는(?)것이 일상이었다.

꽈즈는 중국 로컬식당에 가면 식전에 주곤 하는데 그냥 심심할 때 하나씩 까먹으면 어느새 수북해지곤 하나 나는 그 까는게 귀찮아서 맛있음에도 불구하고 맛을 포기하고 안 먹곤 했다.

너무나도 착한 나의 룸메이트는 어느날 나한테 “넌 왜 꽈즈 안 먹어?(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묻기에 “응. 맛있긴 한데 까기 귀찮아서 안 먹어.^^”했는데 나의 룸메이트는 그 이후로 나한테 꽈즈를 까서 종이컵에 수북히 담아주곤 했다..

나는 미안하고 왠지 민망한 마음에 “아니, 됐어! 나 안 먹어도 돼!!” 라고 극구 거부했으나 그 친구는 선한 미소를 지으며 “괜찮아. 난 까는게 더 재밌더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친구가 까준 꽈즈가 수북한 종이컵을 들고(스타벅스 종이컵을 들고 당당하게 거니는 아메리칸처럼)귀찮음과 맛있음의 두마리 토끼를 염치도 없이 동시에 잡을 수 있었다..

(훗날 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 친구에게 너가 까준 종이컵 가득 꽈즈를 잊을 수 없다고, 감동이었다고 했더니 자기는 잊어버렸다면서 그걸 기억해준 너가 더 감동이라며 둘만의 감동의 노가리를 깠더랬다..)

연애시절 돈 없는 학생이던 남편이 나에게 (그 당시엔 꽤 비싸게 느껴졌던) DOVE초콜렛을 선물할 때 나 모르게 뒤로 감췄는데 내가 한참을 두리번 두리번대서 나중에 남편이 한다는 말이 “너가 너무 못 찾으니까 내가 더 당황스럽더라..”

미소천사 김재원과 역시나 미소가 아름다운 청순가련의 대명사(국졸 세대에서는..)김하늘이 주연한 드라마 ‘로망스’에서 (“너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이야” 라는 명대사가 있다) 김하늘은 엉뚱하고 귀여운 캐릭터로 꼭 그렇게 잘 넘어진다. 그러한 선생 김하늘을 보며 학생 김재원은 귀여워 어쩔줄을 모른다.

나는 큰 덩치에 걸맞지 않는 체력장 5등급으로서 국민학교 운동회 때부터 총소리가 탕! 나는 순간 미끄러지곤 했는데 (발레화를 신었던 것일까..) 내가 귀여워 어쩔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결국 김하늘이었기에 모든 것이 용서됐던 것이다..)

아무튼 이런 아무도 귀여워해주지 않는 민폐 캐릭터로 불혹에 가까운 인생을 쓸쓸히 살아왔지만 사실 내가 원하는 완소(완전 소중..)캐릭터는 따로 있다.

바로 김혜수 언니 (내가 김혜수보다는 어리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캐릭터!

영화 ‘도둑들’에 나오는 김혜수를 보고 ‘아.. 정말 멋있다.. 다음 생엔 저런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란 생각을 했더랬다.
김혜수 캐릭터가 되기 위해 아이라인도 진하게 그려보고 걸을 때도 일부러 좀 당당히 (팔을 앞뒤로 크게 휘적거리며)걸어보고 말 할 때도 김혜수 필 나게 (조금은 섹시하게)해보려 했으나 그럴수록 ‘쟤 왜 저래..’하는 무표정을 맞닥뜨릴 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가 가까워져오니 이제서야 느끼는 건 ‘사람 잘 안 바뀐다는 것’.

나는 내 스타일이 있고 그는 그 스타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각자의 모습대로 다 아름답다는 것.
이걸 진작에 알았다면 나는 나를 더 사랑해줬을까?

그리고 한가지 알게된 희망찬 사실은 김혜수같은 스타일보다 나같은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꽤 있다는 것이다.

김혜수같은 스타일은 워너비지만 뭔가 다가가기 어렵다. 반면에 나같은 스타일은 딱히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친근하다.(아마 나보단 그래도 본인이 좀 더 낫다는 안도감..?)

나는 평생을 닿을 수 없는 워너비가 되길 꿈꿔왔지만 결국은 워너비가 될 수 없었고 워너비가 되지 못해도 나도 이 모습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디선가 이러한 말을 보았다.

‘인생이란 자신을 떠났다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고 또 다시 자신을 떠나는 여행이다.’

워너비의 모습을 영원히 꿈꾸지만 그렇다고 내가 지금 이 모습으로 머문다고 해서 서글퍼하지는 않는 것.

‘나도 언젠가는 워너비가 될지도 몰라.. ’라는 희망으로 지금의 어설픈 모습도 귀엽게 (김재원이 김하늘을 귀여워 어쩔줄 몰라했듯이) 봐주는 것.

그것이 자신에 대한 사랑, 자존감의 출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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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자신을 떠났다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고 또 다시 자신을 떠나는 여행이다.’

솔직히 메가스포어님 글 다 읽지는 못하는데 매번 읽을 때마다 이런 명언이 하나씩 꼭 있네요. ㅠㅠ

까도 까도 어디서 이렇게 훌륭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시는 겁니까?ㅎㅎㅎ

부럽네요!

우리는 지금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는 중일까요
또 다시 자신을 떠나는 중일까요..

음... 어렵네요. 결국엔 둘 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

돌아오는 것과 떠나는 것을 같이 해야만 하는 걸까요~~^^ 그래야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그 사람이 가진 것보다 그 사람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나이? 시간?이 오는 듯해요. 마지막 문장이 참 좋네요.

그 사람이 가진 것보다 그 사람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시간이 온다는 말씀이 너무 좋아요...!!!!!!

그렇게 보면 4학년 5학년 6학년 학년이 올라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아닌 거네요~^^

메가님은 댓글에 대해 리엑션 요정입니다. ㅋㅋ 문득 튼 덩치라고 고백한 글이 떠오르네요. ㅎㅎ

오~~~ 평생 요정이라는 말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4학년 되서 처음으로 리액션 요정이라는 말씀을 들으니 기분이 괜찮네요 ㅎㅎㅎㅎㅎ

큰덩치라서 빅맨.. 저도 큰덩치라서 메가..^_^
우리는 사이좋은 4,5학년~~(고학년)

ㅋㅋ, 제 이메일도 빅맨인데...외국인들이 실제로 보면 저 처음에 못 찾아요. 애개개.. 190키에 120몸무게 정도 생각했다네요.

190에 120은 되줘야 빅맨 이름값을 하는거군요..ㅋㅋㅋ

엄마 미소 지으면서 봤다고요 광대가 승천했어요.
꽈즈라니 너무 귀엽다.
의외로 메가님 손이 많이 가는 여자셨군요. 후후

제가 외모는 섹시한데 행동은 귀엽다고 하더라구요..ㅎㅎ (누가 이런 얘길..)

그거야말로 모두의 워너비 아닌가요?! ㅋㅋㅋ

저는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는데 남들은 아직 알아채질 못한 것 같아요 ㅋㅋ 이렇게 나이는 들어가고..

“너 참 손이 많이 가는 여자구나…”
뒤에 "내가 그 손이 되어줄게"
라는 말이 숨겨져 있지 않았을까요?ㅎㅎㅎ

손이 되어줄 생각이 없었던지 그후에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래서 더 좋은 배우자분 만나셨으니 다행이에요^^

맞아요 ㅎㅎㅎㅎ 그건 그래요~~~^^
손이 안 되어주길 정말 다행~~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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