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불구

in #kr5 years ago (edited)

나쁜 남자들만 만나는 여자들이 있다.

친하게 된 친구들이 알고보니 다 같은 이혼 가정에서 자랐다는 걸 알고 놀란 적도 있다.

뭐, 우연일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사람에게는 어떤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어떤 같은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더 친근함을 느끼고 왠지 끌리는 것.

이것은 우리가 서로 공감을 느끼고 연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항상 비슷한 사람들, 인생이 항상 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룸’이라는 영화에서는 여주인공이 어릴 때 납치를 당해 납치범의 아이를 낳고 감금을 당해 살다가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인데, 그 영화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탈출한 후의 여주인공의 태도이다.

탈출만 하면 행복해지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그렇지가 않았다.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아이에게 화를 내고 지나간 과거를 끊임없이 곱씹으며 과거의 불행을 다시금 재현하려 했다. 꼭 다시 불행해지길 원하는 사람처럼.

불행하고 싶어서 불행하려고 하는데 그걸 어떡하냐는 법륜 스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는데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지..’ 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이제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의식적으로는 이 불행이 끔찍하고 지겹고 나도 이제는 어엿하게 남들처럼 소확행을 이루며 살아가고 싶지만 그게 안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행복도 어색하고 기쁨도 이상하다. 나에게는 말이다. 안 해봤으니까. 싫다 싫다 하면서도 어제와 같은 내가 나인 것 같다. 이 느낌이 편하다.

‘감정도 습관이다’라는 정신과 의사가 쓴 좋은 책이 있다. 불행이라는 감정을 반복하려는 이상한 자신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 하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감정도 습관이며, 우리가 가장 많이 느껴온 감정을 더 잘 느끼고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과 장소를 무의식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나고 보면 또 나쁜 남자고, 어제 한 불평 또 하게 되고, 누군가 더 나은 길을 제시해도 너는 내 마음 모른다며 마다한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보면 ‘추락’의 욕구에 대해 나오는데 나도 그와 같은 감정을 경험한 적이 있다.

가장 행복하고 내 평생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떨어지고 싶은,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참 이상한 느낌... 내가 마치 ‘행복의 불구’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절망적인 느낌...

불행했던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우선 자신도 모르게 불행이란 감정을 익숙해하며 또 다른 불행을 찾아다니는 것을 인식하고 이제 어제와는 다른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첫번째이다.

두번째로는 그 환경이 만들어졌는데도 불구하고도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방황을 하며 생각한다.

‘내가 가진 이건 행복이 아닌가봐.. 더 나은 무언가가 있을거야..’ 하이에나처럼 자신을 만족시켜줄 행복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은 실패한다. 가슴은 공허로 뻥 뚫린 채.

두번째 유형인 이미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트라우마를 곱씹으며 불행이란 감정을 반복하고 있는 ‘룸’의 여주인공과 같은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방법이 있다.

우선 불행을 경험해 트라우마가 있었던 사람들은 이미 불행이라는 강력한 감정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는 행복의 가장 큰 특징인 ‘소소함’에 익숙하지 않다. 술을 마셔도 꼭 취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운동을 해도 꼭 땀을 뻘뻘 흘려야 뭔가 한 거 같다.

너무 강력한 감정을 오랫동안 겪은 탓에 소소한 것으로는 도무지 만족이 안 된다. 이를테면 감정의 폭이 너무 작아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뭘 느껴야 행복한건데 차라리 불행은 느끼기 쉽다. 괴롭든 어떻든 어쨌든 크니까.

이런 사람들은 평생 이 문제를 안고 가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가 조금씩 작아지긴 하겠지만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의 불구’가 되어버리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평소에는 일상의 소소함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에 오그라들지만 ‘감사’의 마음을 느끼고 또 느껴보는 것이다. 그래서 소소함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행이라는 감정을 자꾸 반복하고 싶어하는 자신을 이해해주자는 것이다. 반평생을 불행이랑 친구였는데 갑자기 오랜 친구가 못생겼다고 내쳐버리고 행복이라는 예쁜 친구랑만 어울리려고 하면 불행도 불행해진다. 불행이 자꾸 우리를 찾아오려는 마음도 이해해줘야 한다.

불행을 저리 멀리 떨어뜨려 보내고 내동댕이 치기 보다는, 불행이라는 감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다 ‘건전한’ 방법으로 느낄 필요가 있다.

평소에는 일상의 소소함에 ‘감사’를 느끼며 행복의 근육을 키우되, 징글징글한 친구인 불행의 감정이 서운하지 않게 지속적으로 느껴줘야 한다. 하지만 한번뿐인 우리의 인생을 걸고 불행해져서 진짜 불행의 감정을 느끼면 큰일 난다.

우리가 건전한 방법으로 불행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예술 작품’을 통해 불행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인간의 불행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영화든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자신이 너무 갑자기 내쳐져서 서운해하는 ‘불행’이란 친구를 건전한 방식으로 느껴줘야 한다.

건전한 방식으로 불행을 느끼면서 균형적으로 일상의 소소함에 감사를 느끼며 행복도 느껴줘야 한다.

그러면 한쪽에만 치우쳤던 우리의 감정은 균형을 찾게 되고 우리는 비로소 인간적인 모습을 띄게 될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인간적인 감정을 모두 느끼는 것을 허용한다는 말이 아닐까.

불행했던 우리들도 이제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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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했던 사람은 행복한 순간이 와도 불안해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참 씁쓸한 일 같아요.

정말 그렇더라고요~~~ 불행했던 사람이 행복해지는게 참 힘들지만(마땅히 행복해야 할 상황이 드디어 오더라도..)프로이트는 불행했던 사람이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ㅜㅜ)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했다고 하네요... 우리의 시도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에 가치를 두고 늘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겠죠...>< 솔나무님, 좋은 댓글 너무 감사드립니다~~

너무 강력한 감정을 오랫동안 겪은 탓에 소소한 것으로는 도무지 만족이 안 된다.

공감되는 글귀가 많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경험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처음에 느낀 그 강렬함이 나중에 오는 것들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요.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닌가 봐요..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더니.... ^^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큰 힘인 듯 합니다.
그런 거 보면 무엇이든 많이 가진 사람보다 부족한 사람이 더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네요.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이니까요 ^^

부족한 사람이 더 행복하다...

이런 면도 분명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계속 ‘부족’의 힘에만 기대서는 안되겠지만..ㅎㅎ

불행했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의 ‘힘’ 혹은 ‘깨달음’이라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ㅎㅎ

네네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
누군가 힘들어 하고 불행에 빠져 있는데 그 사람에게 공감해 줄 수 있으니까요~
공감만 해줘도 그 사람은 그것을 이겨내거나 혹은 안정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한 그걸 이겨낸 솔루션이 있다면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나의 고난과 불행이 다른 사람에게 치료제가 될 수 있기에 우리에게 오는 불행도 반드시 그 쓰임이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

와~~~~ 너무나 멋진 댓글이에요!!!!!!

행복이란 선물을 쫒진 말아야 겠지만, 그렇다고 밀어내지도 말아야 겠어요. 많은 경우 익숙하지 않아서 밀어내는 경우가 있더군요.

왜 행복을 밀어내~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좋은 거지만 익숙치 않아서 무의식적으로 밀어내는 경우도 있는거 같아요~~~ 행복도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한 거 같아요~~^^

네~ 동감입니다.

균형.... 그래서 솔로몬은 반지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는 문구를 넣도록 조언했던 것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리스팀^^

잘 읽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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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노래도 큰 힘이 되는 거 같아요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되는

감정이 습관이라는 말이 와닿네요.
전 행복한 습관을 만들려고 '전전긍긍'하는 습관이 있습니다.ㅋㅋ

행복하기 위해 전전긍긍 하시는군요 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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