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김치수제비 여름엔 콩국수
이렇게 화가 나 본적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고소하고 시원한 콩국수가 자꾸만 떠오르던 참에, 집 근처 김밥 집을 찾았다. 콩국수가 여름 계절 신메뉴에 버젓이 있었던걸 기억하고 있어서였다.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콩국수는 꽤나 그럴 듯해 보였다. 눅진한 크림색의 고운 자태 위에 올려진 채썬 오이 뭉텅이. 여기까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한 숟갈 콩물을 떠 맛을 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태껏 먹어본 콩국수 중 최악이었다. 이렇게 밍밍하고 심지어 덜 갈린 콩물은 처음이다. 찌푸려진 미간을 다스리다가, 그래도 몇 입은 더 먹어봐야겠다 싶어 숟가락으로 국물을 들이켰다. 몇 번을 더 마셔봤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질 않았다. 이런말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한마디로 빡이 쳤다. 이걸 콩국수라고 내놓을 수 있는건가? 같이 나온 김밥을 겨우 입에 쑤셔넣고선 김밥집을 나왔다. 얼마나 화가 났냐면 나오자마자 메모장에 분노의 타자속도로 ‘콩국수가 맛이없어 빡친다.’고 썼을까.
콩국수란 일반적으로 자작하게 갈린 고소한 콩물에 적당히 물을 섞어, 목으로 넘어가는 농도가 걸리적거리지 않아야 한다. 면도 칼국수보다는 얇고 그러나 잔치국수 면보다는 두꺼워야 한다. 대중 소금으로 간을 하고, 취향껏 설탕을 넣기도 한다. 위에 고명으로 채썬 오이나 방울 토마토를 올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여름에 먹는 시원하게 갈린 고소한 콩국수는 나에게 있어 여름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존재이자 어머니의 땀흘린 노동이 들어간,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이었다. (콩을 불리고 삶고 갈고 면 반죽하고... 콩국수를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이 수고스러움을 알곳이다) 그래서인지 화가 그렇게 났나. 아직도 난 콩국수앓이 중이다.
하루는 부모님과 점심을 먹는데, 가게 한 구석에선 뻥튀기 기계가 한참 돌려지고 있었다. 대략 30초마나다 뻥! 소리가 났고, 가게 구석구석 노릇노릇하고 구수한 냄새가 퍼졌다. 뻥튀기를 한아름 안고 차를 타고 집에 오는 길, 마침 비가 쏟아졌다. 동그랗고 납작한 뻥튀기는 딱 모자 사이즈 였다. 우산도 없는데 이 뻥튀기를 우산대신 쓰면 어떻겠냐 농담을 했다. 머리에 썼다 벗었다 장난을 치는데 어머니가 뒷자석에서 먹는거 가지고 장난 치는거 아니야~ 하고 타이른다. 입을 빼쭉거리며 운전하는 아버지 머리에 그럼 아버지 씌워드려야지 하고 머리에 씌워드렸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빠 머리 안감은지 이틀이나 됐다고 고발을 하는게 아닌가.
이를 들은 난 당연히 멈칫, 했고 내 행동을 본 아버지는 억울한듯 항변하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이사람아, 나 어제 퇴근하고 와서 샤워 했어!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와 나는 이미 이 주제에 대해 흥미를 잃은 상태였다. 당신 엊그제 감은거 아니였어? 어머니가 무심히 묻자, 아버지는 더욱 적극적이고 큰 소리로 말한다. 아니 나 어제 찬물로 샤워했다니까 왜그래, 요새 퇴근하고 나면 매일 씻잖아 낮에 땀이 나고 하니까. 구구절절 이야기 하는데 둘 사이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자니 얼마나 웃기던지. 이게 이렇게 싸울 일인가. 청결도를 의심(이라기 보단 지레짐작)하고, 누군가는 격렬히 항변하는 모습 그러나 결국 시초에 말을 꺼낸 자는 1도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 오랜만에 뵌 다정한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콩국수로 빡친 마음 부모님 덕에 풀어지셨나봐요~^^
두 분 모습 상상이 되서 미소 짓게 됩니다 ㅎㅎㅎ
특히나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요새 그렇게 화가 나네요. ㅎㅎ epitt 님은 맛있는 저녁 하시기를 ^^
라일라님도 화를 내면 무섭군요!!!
아무래도 프랜차이즈 집이라 기대가 낮기도 했지만, 좀 너무하더군요 ㅎㅎ 저도 사람이랍니다. 당연히 화를 내면 무섭겠죠(?) 안 무서우려나요..
김밥집 콩국수는 보통 맛이 없더라구요 ㅠ 콩국수에 진심인 레일라님 ㅎ
주변에 맛있는 콩국수집 찾으면 같이 먹으러 가요 :D
두분이 맛난 콩국수 드시면서 이야기 나누시다 저녁까지 같이 드실 거에요. 나눌 이야기가 어디 한두가지겠어요? ㅎㅎ
찐 진심이라 직접 콩 갈아서 먹고 한껏 누그러워진 마음으로 내일 글 쓰려구요 ㅎㅎ 데이트는 언제든 콜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