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

in #kr3 years ago




 결혼 30주년일을 맞아 아버지는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고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사소하게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올해가 30주년이라니, 대단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프랑스에 살 적, 한국에 머물때 부모님 결혼기념일이 겹치면 함께 나가 저녁 식사를 하곤 했었다. 며칠 전 페이스북에 오랜만에 들어갔는데-전부 다 비공개로 돌려놓거나 지웠지만-몇 년 전 올린 포스팅이 알림으로 떠있었다. ‘Happy anniversary, dining out with my parents.’

 아버지는 어김없이 꽃을 줄까, 선물을 줄까 하다가 일단은 장문의 편지를 썼다고 한다. 내용인즉슨 30년후에도 우리 변함없이 건강히 지내고 사랑하자고, 그때도 편지를 써주겠다고 하는 찐한 이야기... 그래서 나는 (답은 뻔했지만) 어머니께 몸을 돌려 질문했다. 엄마, 이번엔 아빠한테 답장 써주셨겠죠? 그랬더니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야, 엄마가 편지를 읽고나서 나한테 뭐라는줄 아니? “이하동문!” 이란다.

 엄마의 변명을 하자면 이렇다. 엄마는 책도 많이 읽고, 붓글씨도 쓰고, 편지도 자주 쓰는 아빠처럼 글재주가 없기 때문에 글로 구구절절 쓰는것 보단 다른 식으로 사랑(or 의리)을 표현한다고. 그말을 듣고 나니 또 그렇긴 하네 싶었다. 어쨌거나, 두 분처럼 금슬 좋은 파트너는 참 드물단 생각을 해왔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가끔은 의견충돌로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불편해 하는 시간도 분명 있는 평범한 부부지만. 아무리 그래도 늘 엄마의 답장을 기다리는 아빠의 해바라기 마음에 짧게 ‘이하동문!’ 이라고 답하는 건 너무나 쿨내 나는 것..

 어린이 날에-나는 해당이 안되지만-, 어버이 날에, 기념일에... 이벤트가 많은 가정의 달 5월. 이제 5일인데 벌써 참 다양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즐거운 일, 협업, 관계, 배움, 성장이 떠오를까. 소화하기 벅찰정도로 우후죽순 일어나는 일들에 지치지 않고, 마음과 몸을 흐름에 맡기자고 다짐. 스스로 자신이 신이고 우주다. 자기 자신의 행동에 그 결과가 나타난다. 앞으론 좋은 일만 있을거라 아이처럼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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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장문을 어머니는 한단어로 함축해서 표현하셨군요.

우 우와 결혼 30주년에 장문의 편지를 쓰시는 아버님이시라니
너무나 로맨티스트시네요.
앞으로 좋은 일들만 있으실 거에요:D !

ㅎㅎ 감사합니다 고물님. 며칠간 좀 정신이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는데 돌아보니 이마저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저녁이에요. 내일 비가 온다니 감기 조심하시기를!

올해 결혼 15주년엔 뭐했나.... 반성하고 있습니다 ^^;

각 가정마다 다른거겠죠. ㅎㅎ 15주년이라니,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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