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극복일기 - 1

in #kr5 years ago

photo-1533175069760-268143ce2e51.jpeg




잠식 < Part l >


 일주일만에 매트를 펼쳤다. 매트는 나에게 돌봄과 웰빙의 매개체이자 Meditation, 즉 명상의 자리이다. 한동안 매트를 펼칠일이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내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두루룩 펼친 매트 위로 퀘퀘묵은 먼지와 머리카락이 공중에 날리고 창문으로 비친 뿌연 빛들이 위로 쏟아졌다. 하얗게 마른 눈물 자국이 선명한 매트 위. 나는 며칠 전을 떠올려 보았다.

 어느 순간, 지나간 일의 한 장면이 선명해지는 때가 있다. 불현듯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그 생각들은 순간적인 깨달음을 남긴다. 또한 시간만이 해결해 주는 오롯한 일도 존재한다. 절대 타인도 내 자신도 그 어떠한 진수성찬도, 좋은 음악도 영화도 책도 도와줄 수 없는 그런 일. 무겁지만 가볍고 얕지만 넓은 내 마음을 잠식당하는 우울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시간이 찾아오면 선고를 받은 것마냥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아주 다른 일들이 일주일 전, 내게 동시에 불현듯 찾아왔었다.

 무언가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온통 후회와 미련 끝자리만 붙잡고 싶은 조용한 외로움이 이어졌고 그 속에서 나는 끊임없는 자책을 해댔다. 일어나면 타다 남은 재 마냥 으스러지듯이 곧장 다시 누웠고 수면유도제와 우울증 약을 삼켰다. 갑자기 이렇게 우울감에 빠지게 된 것은 어떠한 사건이 발생한 이유였겠지만, 더이상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지켜야 했다.

 며칠만에 눈에 띄게 몸이 가벼워졌지만 동시에 일어서면 현기증이 왔다. 음식을 먹지 못해 물만 마셔대고, 덕분에 화장실만 들락날락 대기도 했다. 며칠만에 본 거울 속 얼굴은 제대로 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퀭한 다크써클이 온통 뒤덮고 있었고 약의 부작용인지 이마에는 두드러기가 올라온 상태였다. 끔찍해라.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초췌하게 망가진 얼굴을 본들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 또한 나의 모습이니까, 하며 덤덤히 받아들인다. 더 큰 문제는 삶에 대한 모든 의지가 사라진 것, 그리고 우울증 약으로 인해 무기력해진 몸을 지탱하지 못하는 것이였다.

 우울증약으로 작년 대표적이고도 장기전으로 복용해야하는 약을 처방 받았고, 현재 7개월째 복용중이다. 물론 일주일 전, 쇼크가 온 후로는 2-3알로 복용 양을 늘렸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얼굴에 울긋불긋 올라온 두드러기들을 보니 참 나도 별짓 다 하는구나 싶었다. 살려고 우울증 약에 기대게 되다니.

 기운을 내보려고 아무 노력을 안한 것은 아니다. 산책도 해보고,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사먹어 보고, 플레이리스트를 온종일 틀어놓기도 하고 영화관도 가보았지만 그때뿐이였다. 사람이 일년 내내 행복하고 밝을 수만은 없겠지만 이번에 찾아온 우울감은 좀 심하긴 했다.





잠식 < Part II >


 우울감이 나를 잠식한지 일주일째.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노래는 당연하고 그냥 누워만 있고 싶었다. 그나마 친구가 해외로 공연을 가며 맡기고 간 강아지를 돌봐주느라 하루에 두번 강제 산책을 나간 것이 내 유일한 외출이였다. 그나마도 마음이 굉장히 힘들어 아침과 저녁 시간이 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생각에 생각을 더해봐도 내 우울감은 도저히 나아질 희망이 보이질 않았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분명 시간이 흐르고 나니 조금은 기력이 생기고 정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밟고 있기에 겨우 가능한 것이리라. 내 상태를 인정하는 첫 걸음이 우울증 극복의 시작이라고 함을 모를리 없었지만 그게 가장 힘든 일이다. 겨우 앉아 허리를 곧추 세우고 타자기를 힘겹게 누르고 있다.

 친구들의 문자와 전화, 부모님의 안부 모두 아무일 없는 정상인 처럼 대했고 겉으로는 괜찮은 척을 했지만 속은 영 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자책에 자책을 더하면? 바로 원망이 된다. 나는 왜 이런 사람인가, 나는 왜 이런 선택을 했는가 내 자신을 원망을 하게 된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힘도, 자신도 없고 뭐든지 ‘잘’ 해내는 멋진 여성이 되고 싶다는 욕구를 가졌던 비록 몇달 전의 자신은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그게 누구였지? 내가 그런 욕구를 가지긴 했었나?

 사람이 살다보면 좀 우울할 때도 있지, 나무랄 수도 있다. 자꾸만 땅 밑으로 파고 들어가는 나를 보며 누군가는 답답하다며 혀를 찰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내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그 당연한 사실은 나를 더욱더 끌어내리는 원초적인 힘을 발휘하고, 난 힘없이 잠식당한다. 그래도 사지 멀쩡하고 부모님도 있고 지금 버젓히 살고 있잖아 라며 남들과 의미없는 비교질을 해봐도 그때뿐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나의 못난 점, 부족한 점만 보이기 마련이다.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건가, 누워서 중얼거렸다. 시간, 시간, 시간...사람도 음악도 글도 애완동물도 아닌 시간이 답인가. 일을 저지르는건 나였지만 뒷감당 또한 나라는걸 그때는 몰랐다. 약 며칠 전의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치 내 자신을 소중히 여겨본 적 없는 사람처럼 폭주했다. 하여 주치의 선생님께 연락을 해볼까 잠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럴 힘도 없는 절망과 슬픔의 단계에 머물고 있었기에 간신히 복용하고 있던 우울증 약 몇개를 털어넣었다. 괜찮아, 이까짓걸로 연락하지 말고 이겨내보는 거야. 약의 힘을 잠시만 빌리는거야.

 그런 나를 힘겹게 이끌어 올려 매트위에 다시금 살포시 올려놓는다. 나도, 그도, 우리 모두도 다 겪는 일이리라. 시간이 해결해 줄것이다 라며 마음을 마잡는다. 퀘퀘한 먼지가 피어오르는 마루바닥 위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는가, 얼마나 많은 양의 눈물을 쏟았나. 하루에 세네개의 약속, 미팅을 해내고 동서남북으로 활기차게 뛰어다니면서도 미처 끝내지 못한 일들의 끝을 부여잡고 겨우 잠에 들었던 그때, 나를 스스로 사랑하고 '현재' 에 머물며 치열하게 살아내던 그때. 그때의 시작을 다시 매트위에서 피어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은 약을 하나만 먹고 자야겠다.

Sort:  

매트위에서 만큼은 편안해 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힘이 매트 밖에도 전달되기를 바라고요.

감사합니다 호돌박님 :)

제가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 레일라님 어떤 모습이여도 레일라님은 귀하고 멋진 존재에요. 자책과 원망 안하셔도 되요 다 괜찮아요 다 괜찮습니다.

극복한 후라 지금은 괜찮습니다. 이기는 과정을 에세이로 남기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바라면서요 ^^ 좋아하고 사랑하는 고물님 감사해요.

하핫 그랬구나. 너무 현실감 넘치는 글에 지나친 몰입을 해버렸네요
맞아요 레일라님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 +_+!

늘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지만,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을때 가장 빛이 난다고 하지 않던가요. 읽고 공감에 늘 소통의 손을 내밀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말 정말 오랜만에 들었는데, 덕분에 이젠 다 치유된것 같아요. ^^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5
JST 0.029
BTC 62817.54
ETH 2573.14
USDT 1.00
SBD 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