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스탠다드를 틀었다.

in #kr3 years ago (edited)




 정념은 인상과 관념으로 구분되는 지각 중 인상에 속하는 정서의 일종이다. 즉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억누르기 어려운 생각인 것이다. 사전적 의미를 찾은 후 단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지만 ‘예술을 통해서 인간의 정념은 고결하게 정화된다’ 같은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같은 문장을 쓸 수 있을리 없었다. 일반적으로 ‘사로잡힌다’ 라는 동사와 같이 쓰이는 모양인데, 아무리 읽어도 어떤 단어들은 내게 다가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단어야 제발 내게 좀 와주라.

 사실 정념이란 단어를 찾게 된 건 바칼로레아에 대한 책을 집필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집필의 기초인 필요한 각종 자료를 리서치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부터 철학과 관련된, 생소한 단어들과 이념 들을 마주하는데 이게 아주 곤욕이다. 물론 덕분에 공부의 의지가 불타고 있긴하지만, 도통 원하는 속도가 나지않아 퇴고는 언제쯤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태. 글 구성과 문장들을 소화하는데 일마저 잦다.

 새로운 것을 배울때면 어김없이 스승이 등장하곤 한다. 그중 (그렇게 섣부른 이상화는 지양했건만) 분명 반스승인 존재도 살면서 만나기 마련이다. 고마운 존재들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관계를 성찰할 법 하다고 생각했던, 착각에 가까웠던 실수에서 마저도 또 배운다. 관계가 내 바람대로, 예상대로만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여유 한켠을 마음에 두게 되었으니까.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모습엔 분명 상처받지 않으려는 애처로운 노력의 일환이 보인다. 한국이 얼마나 좁은데 어찌 다시 안볼사람처럼 행동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마음의 죄만큼 큰 죄는 없으니, 너무 억울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마라던 조언을 떠올리며 참을 인을 새긴다. 상처준 사람은 언젠가 업을 받는다. 나까지 그러면 단지 손해일 뿐이라는 사실... 참 귀신이 무서운게 아니고, 진짜 무서운건 사람이라던 어른들의 말씀에 끄덕.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모습은 분명 상처받지 않으려는 힘겨운 노력일터.

 마무리 짓지 못한 정리와 청소까지 정신을 쏙 빼놓는 일들이 겹쳤다. 청소는 그렇다 치고 한가득 쌓인 쓰레기 처리가 급선무였는데, 도중에 너무 허기져 잠시 일을 멈춰야 했다. 아침부터 연료없는 엔진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였나. 어찌어찌 점심을 차려 먹고선 기운을 냈다. 내긴 냈는데... 머리가 바쁜 육체를 따라가지 못하면 백발백중 편두통이 따라오게 되어있다. 몸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상처난 마음이 다리를 질질 끄는 것 마냥. 어쩔 수 없는 (그닥 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일들의 연속에 지쳤던 마음이 아직은 회복단계를 거치는 중이라, 시간이 필요한 듯 하다. 책속에서 발견한 따듯한 말도, 친구들의 위로도, 예상치 못하게 생긴 복선들에 의연하게 대처하려는 의지력도 회복에 약간씩 도움이 되고 있긴 하다. 물론 동료들의 기운내라는 응원도 한몫하고 있다.

  SNS 계정에 복선에도 불구하고 힘내자 으랏차, 라는 글을 올렸더니 한 동료에게서 바로 카톡이 날라왔다. 복선 뭐야? 나야? 내가 뭐 잘못한거 있어? 요새 힘든거 있지? 라고. 괜스레 나를 위로할 목적으로 연락한것이 틀림없는 제발 저린 동료. 내게 쏟아붓는 큰 마음에 지쳤던 영혼이 녹아내린다.

 나도 모르게 작동된 방어기제에 또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거나, 관계에서 발생되는 일련의 크고 작은 불편함을 일방적으로 쏟아내거나 멋대로 판단하고, 저조한 태도로 상대방을 몰아 세우지는 않았는지 같은 성찰이 바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라면, 미련없이 돌아서도 괜찮다며 나를 토닥거려 주던 이들. 상호이해적이지 못한 말들을 뱉으면서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태도와 적대적 감정선을 드러내는 사람과는 길게 봤을때 결코 성숙한 맺음을 기대할 수 없다고, 또 토닥토닥.

 이처럼 나 대신 지난 일들에 열을 내준 사람들 덕분에 나는 비교적 우아한 태도로 부당함을 삭힐 수 있었고, 결국 타인과 상관없는 장성한 마음가짐을 지향해야 함을 깨닫는 중이다. 살아내야 할 현생 미션들이 우선이다. 모든 존재는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몫만큼 애써 살아가고 있다는 황정은님의 말도 위로가 되고.

 한가지 기록하고 싶은 습관이 있다. 약간은 동물을 연상시키는 행동의 일부인데, 어느 영화에서 본 좀비를 연기하는 사람의 모습이 인상적이여서 따라하는 것으로-누군가 나를 만지려고 하거나 손을 뻗으면 반사적으로 물것 같은 행동을 취하는 것. (물론 진짜 물려는 의도는 없다) 이를 마주치며 딱딱 소리를 내고 크르릉 거린다. 건들이지마. 물어버릴거야. 같은... 당연히 친한 지인들에게만 보여주는 나의 장난어린 면 중 하나인데, 이런 나를 옆에서 봐온 신님은 '음..언제부터 저랬을까...'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여기서 웃긴 포인트는 굉장히 안타까운 눈빛이다. 재미있었던 일화다. 이런 실없는 웃음이 나오는 일들이라도 있으니, 힘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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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하게 되는 딱딱 크르릉!!!
( つ•̀ω•́)つ・・*:・:・゜:==≡≡Σ=͟͟͞͞(꒱)`Д´)

ㅋㅋㅋㅋ 따라하게 되는군요. 중독성 있는 습관이었네요. 그래도 자제해야 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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