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록] 09202018
오늘 하루를 마치며 스쳐 지나간 크고 작은 몇 일 중에서 가장 의미를 둘 키워드를 뽑자면 바로 ‘바란스’, 일명 Balance 이다. 이 바란스는 내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적용되는데, 스트레칭도 그렇고 작업할 때, 노래를 할 때, 호흡 연습을 할 때, 글을 쓸 때, 음식을 먹을 때 등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셀 수 없는 일들에 해당하는 것. 이 발란스란, 어떤 물질의 질량과 그것과 같은 체적의 표준 질량과의 비율만이 아닌 대게 심리적인 요소들의 균형이다.
첫째. 한 곡을 작업할 땐 여러 과정과 등차의 스케치가 있기에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바란스가 깨져 결국 녹음 단계까지 당도하지 못하고 노트 속에서 영원히 잠들게 된다. 여태까지 여러 장르의 곡을 (고의로든 타의로든) 써왔지만, 아직도 효율적으로 곡을 쓰는 단계까진 이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궁둥이를 붙인 자리에서 쓰기 시작한 곡을 한나절 안에 수채화 풀어내듯이 스케치하고 바로 녹음까지 일사천리로 끝내면 좋겠지만,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곡을 쓰는 것도 글을 쓰는 것처럼, 수차례 퇴고하고 여러번 고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 보통 저녁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그사이에 작업을 하는 편인데, 자고 일어난 아침에 다시 보면 숫제 다른 느낌의 결과물로 느껴질 때도 종종 있다.
음식으로 얘기하자면 밥을 늘 같이 먹는 몇 지인들이 처음에는 좀 의아해했던 부분인데, 나는 음식을 섭취하는 과정에 있어서 식감과 맛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긴다. 예를 들어 반찬에 슈마이가 있다면, 이 쫀득하고 담백한 찜 종류의 음식의 반대되는 식감인 오독오독 씹히는 아리꼬(콩줄기볶음)을 간장과 후추에 살짝 볶아 같이 먹는다든지. 맵고 자극적인 김치볶음밥을 조리했다면 부드럽고 담백한 달걀부침을 살포시 얹어준다든지 하는 식이다. 이 미세한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식사를 하지 않는다면 배부르게 먹고 나서도 왠지 찝찝함을 다음 식사까지 안고 가야 한다. 꽤 까다로운 것 같이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소박하게 보자면 별것 아니다. 소박한 밥 한 공기에도 간장과 깨, 후추 마지막으로 참기름 한 방울까지, 적절한 조합으로 균형을 맞춰준다면 아주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으니까.
최근에 소꼬리 곰탕을 끓여 먹고있는데 역시 음식도 마찬가지로 거진 어려운 게 아니고 정성과 노력의 싸움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핏물을 빼는 첫 번째 과정부터 쉬지 않고 며칠간 주의를 기울이며 물을 붓고, 기름을 걷어내는 일들은 오랫동안 이 귀찮은 일을 기꺼이 가족을 위해 해오신 엄마를 생각나게 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부모님께 따듯한 꼬리곰탕 한 그릇씩 끓여드려야지.
보상심리도 이 바란스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고되고 어려운 일을 겪은 나에게, 다독이며 보상이 될만한 조그만 일을 허락해주는 것, 그로 인해 힘들었던 내 마음의 작용과 의식이 다시 기운을 차리고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그 보상을 기약으로 현재에서 좀 더 기운을 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흔한 예로는 종일 레슨을 하고 돌아온 나에게는 평소 저녁을 잘 먹지 않음에도, 찬장안에 아껴두었던 불닭볶음면을 꺼내 끓여주고 마무리는 작은 디저트까지 허락하는 것이지. 비록 먹은 후에는 어차피 아는 맛일걸 괜히 먹었다 하는 자책감에 괴로워할 테지만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순간만큼은 하루의 고단함이 보상되니까. 먹는 것도 나고 자책하는 것도 나다. 그러니 적당히 균형을 잘 유지해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포인트. 날 너무 사랑하기만 하면 또 한없이 게을러지는 자신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매일 채찍으로 달리게 하면서 당근도 가끔 던져주는 것이다. 지금 하는 몇 작업을 끝내기만 하면 며칠 전 포스팅한 중국식 만둣집에 가서 두 접시에 천엽까지 시켜 먹을 예정이다. 지금 그날만 기대하며 조금씩 일을 해내는 중.
대부분의 유학생은 한국에서 지원을 받거나 조금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의 빈틈을 채우는 경우가 많다. 좌우간 풍족하게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쓰고 싶은 것 다 쓰며 경제적인 면을 걱정하지 않고 사는 학생은 내 주위엔 없는 편.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사계절 공부만 하고 살며 단벌로 살 수 있는가.
물욕이란 나중에 얘기하고 싶은 또 다른 주제이긴 하지만, 나에게 이 물욕은 시시때때로 갑자기 훅하고 찾아온다. 그런데 이게 평소에 천천히 필요한 것들을 채워가는 ‘적당한’ 수준이 아니라, 카테고리별로 사고 싶은 품목의 리스트가 늘 넘쳐나는 것이 문제. 과연 무소유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 같은 줏대 없이 트렌드에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걸까. ’Solde:세일’ 이란 문구를 보게 되면 나 자신이 얼마나 자신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하게 되는걸... 충동 구매는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 나에게 필요한 그 무엇의 용도와 쓰임새를 구상하고 있기 때문에, 길을 가다 그 이미지와 딱 맞는 아이템이 내 눈앞에 출현했을 때 망설이지 않는 것. 이라고 합리화
마지막으로 바란스가 적용되는 부분은 언어이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유럽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는 나는 늘 여러 언어의 깊은 벽에 부딪힌다. 마지막으로 영어 시험을 본 때가 GRE를 친 2015년인데 현재는불어를 더 많이 쓰고 있고, 또 공부는 영어로 된 화성과 주법을 사용하며 글은 또 한국어로 풀어내니 머릿속이 가끔 질서를 잃고 혼돈에 빠질 때가 많다. 대학 시절에 부전공으로 라틴어를 들었는데 지속해서 나와 스페인어로 대화해주는 상대가 없으니 현재 절반도 기억나질 않는다. 밤을 새가며 호르헤 보르헤스를 그렇게 읽었는데… 역시 언어는 계속 써주지 않으면 금방 초기화 상태가 되는 것 같다.
영어와 불어는 비슷한 단어들도 많기 때문에, 유학 초기 프랑스어 원서를 읽기 시작했을 때 내용을 반은 이해하고 반을 버렸다. 다행인 점은 포네틱은 아예 다르고 (똑같은 건 L,M,N,O,S 정도) 프랑스어엔 악센트도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쉬운데 가끔은 영어가 프랑스어처럼 읽히고 프랑스어가 스페인어처럼 읽히기도... 실제 프랑스 친구들에게 불어 단어 하나를 설명을 못 해 영어가 튀어나오며 한국 친구들과 페이스타임으로 통화를 하다가도 불어가 툭 삐져 나온다. 그때 친구들이 뭐라고? 물어보면 응 아니야 하고 얼버무리곤 함. 주위에서 Trilingual이라며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몇 있는데 알고 보면 0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사실…
굳이 정리해 보자면 지금은 Speaking 말하기는 영어가 제일 편하고, Reading and writing 읽고 쓰는 건 한글을 많이 쓰고, 듣는건 불어를 제일 많이 듣는다. 스팀잇에 글을 올리기 전 맞춤법 검사를 따로 하곤 하는데 가끔 이 긴 이야기를 끝까지 정독해주시고 조언을 해주는 고마운 분들이 있다. 틀린 부분이 있다면 지적을 받고 고치는 것이 좋은 글쓰기의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부족한 글을 읽고 생각을 나눠주시는 친절함에 말로는 표현을 못할 정도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균형을 잘 유지하는 데에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수단과 방식이 존재하겠지. 한때 유행하던 Well-Being 이란 최근의 바쁜 일상과 인스턴트식품,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행복한 삶을 지탱하는 심리적, 육체적인 현명한 방법을 내 안과 밖으로 배워가는 중이다. 아직도 끓고 있는 따듯한 곰탕을 한그릇 더 먹고 자야지. 며칠만 더 고생하고 이번 주말엔 꼭 만둣집에 갈 수 있기를...
저도 가끔씩 찾아오는 물욕은... 참 버리기가 힘들었는데 올 해 들어서 많이 참아지네요. 뇌욕을 어떻게든 채워보려 노력하다보니 조금은 참아지더라는...ㅎㅎㅎ 긴글 썼을 때 읽어주는 사람과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참 많이 동감합니다.^^
ㅎㅎ 한 몇년간 단벌로 지내봤는데 물욕이 아예 사라지는건 아니고 억눌려서 결국 조금씩은 소비하게 되더라구요. 올려주시는 글도 잘 읽고 있어요.
일상의 모든 일에 적절한 균형점이 있고 자기만의 바란스를 찾는 게 중요하겠군요ㅎ 저는 하루에서 책읽기/글쓰기 세트가 다른 활동과 바란스를 이루었을 때 만족감을 느끼는데 늘 시간의 바란스가 한쪽으로 치우쳐져 아쉽지요. 일상의 일들이 넘 많아서요. 바란스 잘 맞는 날 보내세요^^
시간의 바란스를 맞추는것이 제일 어렵죠.. 언젠간 시간의 지배자가 될수 있기를😉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ㅋㅋ.. 만두집.... 감동이었군....
이상한 아이 때문에 신경쓰여 댓글도 못달겠당....ㅎㅎ
즐거운 하루 보내라 시스터...😎
보상심리는 중요한 부분인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틀리지만, 저는 물건사는걸 좋아합니다.ㅎㅎ
뭔가 나에게 주는 선물같은거랄까 ㅎ
내가 필요한 물건이 딱 생길땐 기분 좋죠. ^^